항목 ID | GC05900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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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栗北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호숙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율북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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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5년 -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율북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로 개편 |
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3.84㎢ |
가구수 | 78가구 |
인구[남/여] | 130명[남 70명/여 60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율북리(栗北里)는 풍수적으로 대단한 길지의 땅으로 불린다. 193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구림면 율북리로 개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통안리(通安里)와 율리(栗里) 두 개의 행정리가 있다.
[명칭 유래]
율북리는 조선 후기 이암방(耳巖坊)이 있던 지역으로 행정 구역 개편 때 통안리·주현리(舟峴里)·율리를 합쳐 율북리라 칭하였는데, 율리의 ‘율’ 자를 땄지만 왜 ‘북’ 자를 붙였는지는 기록에 없다. 예부터 벌을 길러 부자가 된 사람이 많았을 정도로 벌통 형상이라 하여 통안(桶內)이라 하였다고 한다. 율리 마을은 밤처럼 생겼기에 밤골이라 하며 밤디라고도 불렀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바우개 서쪽에 있던 마을을 잿동이라고 하며, 진둥은 바우개 동쪽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마을 이름이다. 또한 함박뒤주도 밤디 서쪽에 있었던 마을 터 이름이다. 당산등이란 마을이 밤디 마을 동편 골짜기에 있었다고 전한다.
[형성 및 변천]
1760년(영조 36)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방리(坊里) 신증(新增) 편에 이암방이 존재하며 통안리·주현리·율리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다. 1897년 방(坊)을 면(面)으로 개칭하면서 이암방을 구암면(龜巖面)으로 바꾸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구산리·구암리·성곡리·율북리·안정리·금천리·금창리의 7개 리를 구암면에 병합하면서 통안리·주현리·율리를 합쳐 율북리로 개칭하였다. 1935년 군·면 폐합 때 구암면 7개 리와 무림면 7개 리를 구림면으로 개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구림천과 일중천에 막혀 솟아오른 성미산이 노령의 마지막 산이다. 바로 이 성미산에서 남쪽으로 지드래재를 지나면서 쌍봉[349.9m]이 솟아 있다. 이 봉우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형성된 마을이 통안리다. 더불어 서쪽으로 내려오면서 형성된 마을이 밤디 마을이다. 율북리의 북쪽으로 회문산을 등에 진 안정리가 있으며, 지질개와 인접해 있다. 알치와 서낭당이등을 지나며 인계면과 동쪽 경계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선비등, 바우개등을 지척으로 오룡 마을, 호곡 마을과 경계를 이룬다. 너구리재와 밤디재를 형성하며 성곡리와 인접해 있다.
율북리에는 큰놈산, 한밝산, 쌍봉산, 무직산, 성미산이 있다. 그중 무직산에는 시루봉, 삼형제 바위, 소 바위, 할미 바위, 개X 바위 등이 있다. 꽃두레 바우, 벼락 바우, 자래 바우 등의 바위 이름과 가늠박골, 도독골, 개정들, 성적골, 오소골 등 재미난 골짜기 이름도 있다. 다른 마을과 통하던 고개 이름에는 너구리 굴재, 달롱개재, 지질개, 서낭당이라는 이름이 있다. 율북리의 들로 배댕이들, 바우개들, 불도골, 생적골, 용골, 지산바리, 초동골, 통골 등이 있다. 골짜기들을 흐르는 하천으로 율리천, 저수지천, 마을 앞천 등이 있다. 주현리[바우개]에 있는 보를 주현보라 하며, 통안리 북동쪽에 있는 저수지를 율북제라 부른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율북리의 면적은 3.84㎢이며, 인구는 78가구, 130명으로 남자가 70명, 여자가 60명이다. 특용 작물과 축산, 하우스 농사가 발달되어 있다. 인계면 쌍암리에서 안정리까지를 이어 주는 군도1 9호선과 방축리에서 율북리까지 이어 주는 군도 9호선이 지나간다. 이도 205호선과 이도 204호선도 지나간다. 율북 간이 학교가 통안 마을 앞터에 있었고, 마을 동남 편에서 1930년경부터 요강과 도자기[하얀 사기 그릇]를 생산해서 판매하였으나 1967년 생산이 중단되었다.
예부터 농악 놀이가 활발하였으며 시초[풀 채취]를 위하여 타 지역[인계·유등]에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농악 놀이를 나갔을 만큼 활동이 왕성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성미산에는 율북리 노현성 터가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1670]에 “노령 폐성이라 하고 노령산(蘆嶺山)[508.4m] 위에 있으며, 돌로 쌓았다. 예전에 방어하던 곳인 듯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라북도에서 펴낸 전설지에서는 조선 시대에 군량미를 보관한 곳으로도 추측하며, 성 장군이라고 하는 포악한 도적이 노략질한 물건을 보관하고 생활하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한다.
통안리는 당산제 및 마을 지킴이가 유명하다. 할아버지 당산과 할머니 당산에 제를 지내는데 규율이 특히 엄격했다고 한다. 일주일간은 부부간 잠자리도 철저히 가렸고 화장실만 갔다 와도 목욕재계를 할 만큼 정갈하게 하였다. 또한 당산제에 모실 술은 일주일 전에 빚었는데, 혹시라도 동티가 날까 봐 부부가 항아리 양 옆에서 밤을 새우며 지켰다고 한다. 마을 동서쪽 산 뒤에 당산나무가 한 그루씩 있어서 그런지 마을 이름도 양짓뜸, 음짓뜸으로 나뉘었다. 2월 초하룻날은 오리 모양의 깃대를 만들어서 동군, 서군으로 나누어 싸움을 거창하게 하였다. 농악 놀이와 더불어 막걸리도 내고 줄다리기도 하며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빌었다. 마을 앞길 양편에 돌탑을 세웠으며, 솟대를 2개 세워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았다고 하며, 정월 보름 때는 각 집에서 찹쌀을 거두어 술을 빚었다고 한다.
개항기 의병 최산흥(崔山興)이 양춘영 장군 휘하에서 신출귀몰한 솜씨로 일제의 간을 서늘하게 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정진호는 전주 농업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일제의 군용 열차인 전라선을 전주에서 폭파시키려고 준비하다 함께 한 동료의 밀고로 계획이 누설되어 무기 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였다. 또한 전 통일부 장관 정동영이 율북 초등학교에서 3년간 수학하였다. 정동영의 조상 묘소가 여기 있는데 대단한 명혈지지(名穴之地)로 알려져 풍수와 지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견학 차 많이 온다. 율리 마을 회관 앞에 김남곤 효행 기적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