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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26
한자 堂山祭
이칭/별칭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마을 제사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빌기 위하여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당산제(堂山祭)는 마을을 지켜 주는 수호신에게 일정한 시간과 절차를 통하여 마을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이를 ‘동제(洞祭)’라고도 한다. 순창 지역의 당산제 제일(祭日)은 주로 음력 정월 대보름이나 정초가 가장 많고, 그 밖에 2월 2일이나 10월 보름에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마을의 수호신으로서 선돌, 당산나무[할아버지당산·할머니당산·천룡 등을 대상으로 삼음], 누석단(累石壇)[돌단], 조탑(造塔), 지음대[낟가릿대·솟대], 장승, 당집, 산신당, 서낭당, 석불, 수신당, 샘, 기암괴석, 남근석(男根石) 등을 섬긴다. 1960년대만 해도 거의 대부분의 마을에서 수호신을 정해 제를 올렸으나, 현재는 숭배의 대상이 줄었고 당산제를 지내지 않는 마을이 더 많아졌다.

[변천 및 현황]

언제부터 당산제를 지냈는지 정확한 내력은 알 수 없지만 예전에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냈다. 지금도 25개 정도의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순창읍 남계리 동은 마을에는 마을 주민이 단합하여 각시숲남계리 가마탑과 정자나무에서 정월 보름날 당산제를 경건하게 모시고 있다. 순창읍 복실리에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할머니 당산나무, 세 개의 복실리 돌탑 등이 있으며, 수년전까지만 해도 정월 대보름날 이곳에서 당산제를 크게 올려 왔지만 지금은 약식의 제만 올린다.

구림면 방화리 방화 마을당산제는 마을 앞 화산인 회문산이 보여 마을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였다. 이에 돌탑과 마을 보호수로 당산나무를 심고 당산제를 지내자 그 뒤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월 보름에 마을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할머니 당산에 제를 지낸 후 마을 북쪽 할아버지 당산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동계면 수정리에는 마을의 안녕과 매년 풍년을 기원하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막기 위하여 마을 앞에 있는 당산나무에 당산제를 올려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마을이 생긴 이래 당산제를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정성껏 지내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큰 궂은일이 생기지 않고 좋은 일들만 생긴다고 한다.

복흥면 반월리 자포 마을봉덕리 덕흥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초하루를 맞아 마을의 액운을 씻어 버리고, 마을 주민들의 단합과 풍년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두 마을에서는 약 110m씩 굵게 새끼줄을 꼬아 암줄과 수줄 사이에 비녀를 꽂아 동네 남자팀과 여자팀이 줄다리기를 세 번 한다. 이때 여자팀이 이기면 풍년이 든다 하여 세 번 중 두 번은 여자들이 이긴다. 이어 새끼줄을 어깨에 짊어지고 마을을 한 바퀴 돈 후 마을 앞 선돌에 옷을 입히고 축문과 기원을 하며 액운을 쫓고 풍년을 기원한다. 복흥면 동산리에서는 600여 년이 넘는 할매 당산나무에서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올리고 있다.

인계면 쌍암리에서는 음력 정월 13일 밤에 마을 뒤의 할아버지 당산나무와 마을 서쪽 할머니 당산나무에서 온 마을 사람들이 제를 지낸다. 인계면 탑리에서는 매년 정월에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와 남쪽의 누석단에서 탑리 도깨비제를 지냈다. 이곳은 마을 부녀자들만이 제를 지내는 것이 특색이며, 제수 또한 흰 쌀밥과 메밀묵뿐이다. 인계면 도룡리 용바위에서는 기우제를 지낸다.

적성면 고원리 관평 마을에서는 2012년 초대형 태풍 볼라벤의 영향으로 노거수가 쓰러지면서 모정을 덮쳤다. 이에 모정이 훼손되자 군 지원 사업비로 모정을 재건축하고 주변 조경을 마친 후 마을의 번영과 화합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 2013년에 새로 당산나무[ 느티나무]를 심었다.

팔덕면 청계리에는 4그루의 당산수가 있는데, 정월 14일 밤 자정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농악을 울리면서 제를 지낸다. 팔덕면 월곡리에는 당산나무 두 그루와 당집이 있어 매년 정월 14일 밤에 온 마을 남자들이 제를 지낸다. 팔덕면 산동리창덕리에서는 남성 성기 모양의 산동리 남근석을 섬기는 남근제를 지낸다. 팔덕면 장안리 장안 마을에는 정월 대보름에 당산제달집태우기, 액막이굿 등을 한다.

풍산면 삼촌리에는 450년 전 전주 이씨가 심은 당산수가 있는데, 여기에 매년 정월 보름날 밤에 동제를 지낸다. 풍산면 반월리 월산 마을에서는 마을 동쪽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 위쪽에 제실을 지어 정월 14일에 당산제를 지낸다. 풍산면 죽전리 죽전 마을에서도 당산나무에 당산제를 지낸다.

그 밖에 팔덕면 구룡리 입석 마을에서는 5개의 선돌, 2그루의 당산나무, 2개의 누석단에서 입석 당산제와 천룡제를 지냈으나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 구림면 금창리 금상 마을에 있는 누석단 주위의 지음대에서도 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지내지 않는다.

[절차]

설날이 지나면 각 마을에서는 회의를 열어 당산제를 지낼 제주를 선정한다. 제주는 생기복덕(生氣福德)을 가려서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선정한다. 제주로 선정된 사람은 산가(産家)·상가(喪家)의 출입과 외지 출타 등을 금하고, 개고기 등의 궂은 음식을 피하고 언행을 삼가며, 목욕재계를 하는 등 매사에 근신한다. 제주 집 대문에는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내기 1주일 전에 금줄을 쳐 놓는다. 제주는 매일 목욕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당산제 날을 기다리며, 정월 열나흘이 되면 음식을 준비하는데 정성을 다한다.

당산나무와 당산석·신당·샘 등 제장(祭場)도 깨끗하게 정비·청소를 하고, 주변을 빙 돌려 왼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문종이로 군데군데 표시해 준다. 또한 부정을 막기 위해 황토를 몇 줌 놓아둔다. 제물은 화주나 제관 집에서 준비하는데 대체로 메·주(酒)·과(果)·포(脯)·편·채(菜) 등이다.

제사 비용은 마을 공동 제답(祭畓)의 수입에서 충당하거나 집집마다 추렴하여 쓴다.

당산제를 지낼 때는 마을 청년들이 참여하여 풍물을 치고 마을 공동 우물터로 가서 우물굿을 친 다음 당산제를 지낸다는 표시로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제사 지낼 곳으로 당도하는 시각이 11시에서 12시 무렵이다. 당산제는 대개 자정을 전후한 시간에 시작하여 새벽녘에 끝마친다.

제의는 주제자(主祭者)에 따라 진행 방식이 다르다. 마을 사람 가운데 선정된 제관이 주제할 경우 제물진설(祭物陳設), 신주헌작(神酒獻爵), 재배, 당산축, 소지(燒紙), 퇴식, 음복 등의 순서로 유교식 절차에 따른다.

무당이 주관할 경우 제관이 헌작·재배·축문·소지 등 간단한 제를 올린 다음 무녀(巫女)와 공인(貢人)이 열두 거리 굿으로 진행한다. 대부분의 경우 제의는 유교식 절차를 따르는데, 풍물을 울리는 매굿[메굿 또는 매귀굿]과 병행하여 진행된다. 농악대가 치는 매굿은 마을 제사의 시작을 알리거나 신을 맞아들이는 의미로서 치는 들당산굿이 있다. 또한 제당(祭堂)의 잡귀 잡신의 침입을 막고, 또 쫓는 의미의 매구[埋鬼]굿과 제가 끝나고 신을 보내기 위한 날당산굿 등이 있다.

당산제가 끝나면 마을 공동 시설인 우물·창고·정자·다리 등을 돌면서 굿을 친 다음 각 가정을 방문하여 문굿·샘굿·조왕굿·마당굿 등 집안 구석구석을 돌면서 굿을 치는데, 이를 매구치기 또는 마당밟기·지신밟기 등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당산굿은 당산제를 전후하여 2, 3일 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또한, 당산제가 끝난 당일이나 그 이튿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동서 또는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여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이기는 쪽이 풍년이 드는데, 특히 여자 쪽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를 한 뒤 줄은 태워서 논밭에 거름이 되게 하거나 신체(神體)인 당산나무나 당산석[石竿] 등에 감아 두어 풍년을 기원하기도 한다. 이를 ‘당산 옷 입힌다.’고 한다. 줄을 감을 때는 부정을 가리며, 감아 놓은 줄에는 일 년 내내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풍산면 반월리 상죽 마을, 금과면 수양리, 인계면 쌍암리, 구림면 안정리 안심 마을, 순창읍 백산리 등지에서는 당산제의 유래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 온다.

대부분의 당산 전설은 도둑이 마을의 재산을 훔쳐가려다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산 주변을 맴돌다 날이 새자 도망가는데, 당산이 마을 사람들과 재산을 보호해 주고 있다는 내용이다. 당산제를 지냄으로써 당산의 보호에 감사드리고 마을의 안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여긴다.

당산과 관련된 영험담은 당산제를 지낼 때 금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해를 입은 내용과 당산을 없애려다 화를 입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와 상반되게 당산의 은혜로 복을 받는 내용도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마을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당산의 신령스러움을 더하고 있다.

유등면 유촌리 유촌 마을에도 당산골의 설화가 전한다. 마을 서남쪽의 조그만 동산 위에 수백 년 된 귀목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수호신으로 여겼고, 매년 정월 보름날 마을의 평안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였다. 또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모든 사람이 잠든 후 디딜방아의 몸통을 당산에 세우고 여자의 속옷을 거꾸로 세워 놓아 유행병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오랜 세월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당산제를 지내다가 왜인들이 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 가버려 그 후부터 당산제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자 남녀 수호신이 며칠을 울다가 남원 대강면 평촌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이다. 일제 강점기를 전후하여 마을의 당산나무가 없어지면서 당산제도 지내지 않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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