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00 |
---|---|
한자 | 樂德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산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현우 |
건립 시기/일시 | 1900년 - 낙덕정 건립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5년 2월 5일 - 낙덕정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낙덕정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낙덕정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산4 |
성격 | 누정 |
양식 | 팔각 단층|팔각 지붕집 |
소유자 | 울산 김씨 종중 |
관리자 | 울산 김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에 있는 개항기 때의 누정.
[개설]
낙덕정(樂德亭)이 위치한 곳은 조선 인종(仁宗) 때 학자인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은거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김인후는 당시 척신(戚臣) 윤원형(尹元衡)과 윤임(尹任) 사이의 정권 다툼을 염려하다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乙巳士禍)가 일어나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순창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순창군 복흥면 상송리 낙덕암(樂德巖) 주위의 산세를 즐기며 강학과 후학 양성에 힘썼다.
“훗날 이곳에서 훌륭한 인재가 나올 것이다”라는 김인후의 예언에 따라 그의 후손인 김노수(金魯洙)가 1900년(고종 37) 낙덕암 위쪽에 낙덕정을 지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가 유년 시절 공부하던 곳이기도 하다. 매년 3월 10일 김인후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며 선현을 기리는 행사를 이어 오고 있다.
[위치]
순창읍에서 복흥면 소재지 방면으로 가다가 낙덕 저수지 조금 못 미처 외송 마을로 진입하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 건너편의 낙덕암 위쪽 숲 속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형태는 팔각 단층에 팔각 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1칸의 방을 가설해 놓았다. 기둥은 둥근 두리기둥으로 화강암을 약 80㎝ 높이로 깎아 받치고 그 위에 나무기둥을 올린 형태를 취하고 있다. 며느리서까래[부연]를 달아 처마를 길게 뺐으며, 8개 기둥마다의 추녀에 팔괘(八卦)를 새긴 것 또한 일반적인 누정의 형태와도 차별화된다. 문은 좌우 두 짝의 분합(分閤)으로 반으로 접어 처마의 걸쇠에 걸어 올려 매달 수 있게 하였다. 내부에는 일반적으로 누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문 편액(詩文扁額)이 전혀 없다.
[현황]
2013년 현재 낙덕정 주변에는 여러 그루의 노송(老松)이 있으나, 옛날부터 서식하던 나무는 아니다. 낙덕정 건립 당시 심은 소나무는 일제 강점기 말에 이른바 송탄유(松炭油)를 낸다 하여 모조리 베어지고, 현재의 나무들은 1945년 광복 후에 심은 것들이다. 모두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육송(陸松)들로 정자와 물빛에 썩 잘 어울린다. 낙덕정 또한 길에서 총 54개의 돌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차별화된 입지적인 특징도 갖고 있다. 1975년 2월 5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김병일(金炳日)을 비롯한 울산 김씨(蔚山金氏) 종중에서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20세기 초반 건립된 정자로는 보기 드물게 팔각 단층의 건축 양식으로 일대의 원림이 수려한 누정 문화 경관을 한층 높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