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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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薛纁墓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산14-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서홍식 |
건립 시기/일시 | 1905년 - 설훈 묘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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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설훈 묘비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산14-1 |
성격 | 묘비 |
관련 인물 | 설훈(薛纁) |
재질 | 화강암[좌대·개석]|대리석[비신] |
크기(높이,너비,두께) | 113㎝[높이]|49㎝[너비]|15㎝[두께] |
소유자 | 순창 설씨 종중 |
관리자 | 순창 설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에 있는 개항기에 세운 설훈의 묘비.
[개설]
설훈(薛纁)은 본관이 순창(淳昌)으로 조선 태조(太祖) 때 상사로 선발되어 창덕궁 직장이 되었다. 뒤에 아들의 공으로 이조 참판 옥천군에 추증되었다. 사망 후 500여 년이 지난 뒤에 비문을 부탁받아 족보와 전하는 문헌을 고증하였으나 생몰연도를 알 수 없었다고 묘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건립 경위]
원래 비가 있었으나 새로 비문을 지어 사망 후 500여 년이 지난 뒤에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후손인 설병규(薛秉奎)와 설봉기(薛鳳基)가 송병선에게 비문을 부탁하여 지었다고 한다.
[위치]
순창군 금과면 소재지에서 지방도 730호선을 따라 풍산면 소재지 방향으로 100m쯤 가다가 우측 동전리 마을 쪽으로 진입하여 보이는 재실 뒤 야산 설훈 묘소 앞에 있다. 주소지는 순창군 금과면 동전리 산14-1번지이다.
[형태]
설훈 묘소 앞 우측에 세로 방향으로 세웠다. 일반적인 화강암의 네모난 좌대(座臺) 위에 대리석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화강암의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옥개석은 높이가 낮으며 반전이 심한 편이다. 묘 앞에는 화강암의 상석(床石)과 간단한 향로석만 있다. 묘비의 크기는 높이 113㎝, 너비 49㎝, 두께 15㎝이다.
[금석문]
비문의 전면에 세로로 ‘창덕궁 직장 증 가선대부 이조 참판 옥천군 설공 훈 지묘 임좌(昌德宮直長贈嘉善大夫吏曺參判玉川君薛公纁之墓 壬坐)’, ‘배 증 정부인 고령 신씨 부우(配贈貞夫人高靈申氏祔右)’라고 해서체로 쓰여 있다. 음기(陰記)는 삼면에 가득 기록되어 있으며 세로로 좌측면 3행 31자, 후면 12행 31자, 우측면 3행 31자의 배열로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송병선이 지었으며, 글씨를 쓴 사람은 기록되지 않았다.
[현황]
묘소 아래 양옥으로 새로 지은 제각에 ‘옥천재(玉川齋)’란 편액을 걸었는데, 편액은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였다. 묘비는 건립한 지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비신이 마모가 쉬운 대리석 재질이라 여러 곳에 박락이 있다. 현재 문자를 판독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순창 설씨(淳昌薛氏) 종중에서 소유하여 관리한다.
[의의와 평가]
설씨가 본관을 순창으로 한 내력을 기록하였고, 조선 개국 당시 활동한 인물의 묘비라는 점에 중요성과 희소성이 있다. 일반적인 묘비의 방향과 다르게 우측 부분에 세로 방향으로 세운 점이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