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735 |
---|---|
한자 | 三節堂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양은용 |
현소재지 | 삼절당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 |
---|---|
원소재지 | 삼절당 원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
성격 | 사당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경주 설씨 |
관리자 | 경주 설씨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에 있는 고려 후기 사당.
[개설]
설보신은 원나라 광동 전운사(廣東轉運使)로 1344년 난적을 토벌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부인인 희태특늑은 정조(貞操)가 늠름하여 두 아들을 잘 길렀고, 장남 설문질은 효성이 지극하여 충·정·효 삼절로 불렸다. 손자 설손(偰遜)이 이들의 위패를 안고 고려에 귀화하자 공민왕은 부원후(富原候)를 내려 경기도 과천에 살게 하고 삼절당(三節堂)을 세워 기리게 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 영의정 이직(李稷)[1361~1432]이 시를 지어 걸고, 길창 부원군 권근(權近)[1352~1409]이 서문을 지었으며, 신풍 부원군 장유(張維)[1587~1638]가 현판을 써서 걸었다.
이후 설씨가 순창으로 세거지를 옮기면서 삼절당을 순창군 금과면으로 옮겨 세우고 위폐를 모셔 와 제사하여 왔다. 삼절당에는 경주 설씨 삼절 사현 유허비(慶州偰氏三絶四賢遺噓碑)가 세워져 있다. 설손의 큰아들 설장수(偰長壽)는 좌찬성으로 문정공(文正公)의 시호를 받았고, 둘째 아들 설경수(偰慶壽)는 응교(應敎)로 성도(星圖)·월력(月曆)을 만드는 데 공헌하였으며, 설경수의 아들 설순(偰循)은 부제학(副提學)으로 학문이 뛰어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지어 왕께 올렸다. 유림에서는 이들 설손·설장수·설경수·설순을 사현(四賢)이라 부르고 삼절의 공덕으로 사현을 두게 되었다며 칭송하였다.
[위치]
삼절당은 순창군 금과면 남계리 호치 마을에 있다.
[변천]
고려 공민왕 대에 설손이 귀화하여 경주 설씨(慶州偰氏)가 되었고, 경기도 과천을 세거지로 하여 삼절당을 세웠다. 임진왜란 이후 세거지를 순창군 금과면으로 옮기면서 삼절당도 옮겨 세웠다.
[형태]
정면 1칸과 측면 1칸의 전통적인 사당 형태이다.
[현황]
삼절당에는 삼절을 모신 사당과 경주 설씨 삼절 사현 유허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삼절당은 경주 설씨의 원류를 말해 주는 사당이다. 원나라에서 고려 시대에 귀화한 설씨는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와 경기도 과천에 안치하였다가 순창군 금과면으로 세거지를 잡고 삼절당을 옮겨 위패를 안치하였다. 역사가 고려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성이 있는 사당이다. 특히 삼절 이후에 사현의 후예를 받들고 있어서 설씨 집성촌의 한 전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