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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70
한자 晋州姜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진주 강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상촌리 지도보기|팔덕면 용산리지도보기|유등면 건곡리지도보기|구림면 구암리지도보기
성씨시조 강이식(姜以式)
입향시조 강업걸(姜業傑)|강진(姜震)

[정의]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강업걸, 강진(姜震)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진주 강씨(晋州姜氏)는 고구려 때 용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진주 강씨는 상암(商岩) 강업걸(姜業傑)이 풍산면 상촌리에 들어와 정착하였고, 동암(東菴)강진 이 전라남도 영광에서 순창 설씨의 서랑이 되어 순창 금과면으로 들어와 그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그밖에 유등면 건곡리구림면 구암리에도 진주 강씨 자손이 세거하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진주 강씨는 30만 724가구, 96만 6710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강이식은 고구려 병마 도원수를 지냈다. 597년(영양왕 8) 수(隋)나라 문제(文帝)가 지성과 충절을 소홀히 한다는 내용의 국서(國書)를 고구려에 보내오자 “이같이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써 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는 5만 군사를 이끌고 임유관(臨楡關)에서 30만의 수나라 군사를 대파하였다. 603년에는 수나라 양제(煬帝)가 20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쳐들어오자 을지문덕(乙支文德)과 함께 출정하여 요동성과 살수에서 크게 격파하였다.

이후 신라 헌강왕(憲康王) 때 태중 대부 판내의령(太中大夫判內議令)을 지낸 강진(姜縉)이 진양후(晋陽侯)[진양은 진주의 옛 이름]에 봉하여지자 후손들이 강이식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진주로 하였다. 은열공파(殷烈公派), 인헌공파(仁憲公派), 박사공파(博士公派), 소감공파(少監公派), 관서공파(關西公波) 등 다섯 파로 나뉘고 이후 여러 파로 분리되었으나, 한국에서 ‘강(姜)’ 자를 씨(氏)로 삼는 성씨는 진주를 단일 본으로 하고 있다.

[입향 경위]

풍산면 상촌리 상촌 마을 진주 강씨는 강업걸이 임진왜란 직후 전라남도 곡성에서 들어온 후 그 후손이 세거하여 왔다. 팔덕면 용산리 구항 마을 진주 강씨는 조선 중기 강집의 증손인 동천(桐川) 강홍국(姜弘國)이 들어와 현재 15세손이 세거하고 있다. 이밖에 구림면 구암리 봉곡 마을에는 수은(睡隱) 강항(姜沆)의 손자인 강애주(姜愛周)가 들어와 세거하고 있으며 유등면 건곡리도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나 입향조, 입향 연대는 미상이다.

[현황]

2000년 현재 순창 지역 진주 강씨는 358가구, 927명이 살고 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 진주 강씨풍산면 상촌리 상촌 마을에 35가구, 팔덕면 용산리 구항 마을에 16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다. 또한 유등면 건곡리 건곡 마을에 12가구, 구림면 구암리 봉곡 마을에 8가구가 누대로 살고 있다. 특히 구암리 봉곡 마을갱정유도의 창시자 강대성이 태어난 곳이다. 구암리 미금내 마을진주 강씨의 제각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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