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85 |
---|---|
한자 | 延安金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성용 |
세거|집성지 | 연안 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풍산면 삼촌리 |
---|---|
성씨시조 | 김섬한(金暹漢) |
[정의]
김섬한을 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의 세거 성씨.
[개설]
연안 김씨(延安金氏)는 김섬한(金暹漢)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안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2000년 통계청의 인구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2만 5215가구, 7만 9788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연안은 황해도 연백군 일원의 옛 지명이다. 시조 김섬한은 고려 명종(明宗) 때 국자감의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역임하고 가문을 일으켰다. 1514년(중종 9) 간행된 김안로(金安老)의 『안락당집(顔樂堂集)』에 따르면, 신라 종성(宗姓)으로서 이름을 알 수 없는 두 형제가 왕에게 직간하다 도리어 미움을 사서 형은 북빈경(北濱京)[현 강원도 강릉]으로 유배되고, 아우는 시염성(豉鹽城)[현 황해도 연백군 연안]으로 유배되었는데, 시염성으로 유배된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김섬한의 후손들이 김섬한 이상의 선계는 오래되고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고, 시염성이 연안으로 개칭됨에 따라 김섬한을 시조로 연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섬한의 6세손 김도(金濤)가 고려 때 밀직제학을 지냈다. 김도의 아들 김자지(金自知), 김여지(金汝知)와 손자 김하(金何)가 조선 시대에 판서를 지냈고, 김전(金詮), 김근사(金謹思), 김안로가 영의정을 지냈으며, 김감(金勘)이 대제학을 지내는 등 조선 시대에 정승 6명, 대제학 1명, 왕비 1명, 문과 급제자 163명을 배출하였다.
[입향 경위]
순창 지역의 연안 김씨 입향조와 입향 연대는 문헌 또한 전하여 오는 바가 없어 알 수 없다.
[현황]
2000년 순창 지역의 연안 김씨는 21가구, 5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따르면 당시 순창 지역 연안 김씨는 풍산면 삼촌리 소촌 마을에 25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