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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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楊汝梅 |
이칭/별칭 | 화백(和伯),화양(華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출생 시기/일시 | 1601년 - 양여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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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55년 - 양여매 사망 |
출생지 | 양여매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
성격 | 의병장 |
성별 | 남 |
본관 | 남원 |
[정의]
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장.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화백(和伯), 호는 화양(華陽). 아버지는 양시진(楊時晋)이다.
[활동 사항]
양여매(楊汝梅)[1601~1655]는 1601년(선조 34)에 출생하여 1635년(인조 13)에 진사에 올랐으며, 박학(博學)과 문장(文章)으로 이름이 있었다. 1636년(인조 14) 양여매의 주도로 옥천 사마재(玉川司馬齋)를 결성하였는데, 옥천 사마재는 소과에 입격한 생원과 진사들이 향리에 머물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양성한 조선 시대 유학 교육의 산실로 알려져 있다.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장으로서 의병을 일으켰으나 화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에 마을 이름을 우기(愚棄)라 하고 정자 이름을 ‘망(忘)’이라 고치고 은거하다가 1655년(효종 6)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