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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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端午童-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노동리 |
집필자 | 김형준 |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단옷날 두룡정 물맞이를 할 때 남녀의 애정 행위로 태어난 아이.
[개설]
단오동이는 순창 단오절[음력 5. 1~5. 5] 기간 중에 순창군 인계면 노동리에 있는 두룡정[두령정]에서 단오 물맞이를 즐길 때에 남녀의 성관계로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말이다. 순창 지역에서 전해 내려오는 다양한 풍속 가운데 단오일에 두룡정에서 부녀자들이 물맞이를 즐기는 세시 풍속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물맞이는 부녀자들이 여름 맞이를 앞두고 아이들을 데리고 목욕하는 행위로, 영험하다는 용천샘에서 부스럼과 피부병을 예방할 목적에서 목욕하는 것을 말한다. 순창에서는 단옷날에 순창읍 두룡정에서 물맞이를 즐기려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동아 일보』 1927년 4월 7일 자 「두령약천(斗零藥泉)」 기사에는 순창의 물맞이 풍속을 기술해 놓았다. 내용인 즉 “순창군 인계면 두령정(淳昌郡 仁溪面 斗零亭)이라는 곳에는 백병(百病)이 통치(通治)된다는 약수가 수백 년 전부터 용출(湧出)되야 평상시에도 부인내왕(婦人來往)은 간단(間斷)이 없으려니와 유독 음력 오월 단오일이면 약수를 마시기 위하여 각처(各處)로부터 위집(蝟集)한 남녀노소가 수천인에 달하며, 구경 삼아 운집하는 인원이 매년 증가됨으로…….”이라는 기사다. 즉 단옷날에는 남녀소노가 두령정에 운집하여 장관을 이루었고, 물맞이를 하려는 부녀자들과 구경꾼들까지 몰려와 매우 혼잡하고 갈수록 사람들이 늘어나 수천 명에 달하였으며, 낮부터 몰려든 부녀자들은 해질 때까지 두령정에서 물맞이를 하며 하루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순창 단오 물맞이는 단오제의 역사와 함께 고려 시대부터 수백 년 동안 전승되어 내려온 물맞이 풍속이라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1758~?]이 그린 「단오 풍정」이라는 풍속화를 보면, 계곡의 물가에서 부녀자들이 반나체로 물맞이하는 풍속을 그려 놓았다. 조선 시대에 질병 예방과 치병을 명분으로 부녀자들이 약천에서 물맞이를 즐기는 관행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었고, 부녀자들은 외출이 관습적으로 허용되었다.
바깥출입이 쉽지 않았던 부녀자들은 양기 충천의 단옷날에 물맞이 외출은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일제 강점기까지도 부녀자들은 치마저고리를 벗고 단속곳만을 걸친 채 물맞이 목욕을 즐겼고, 그러한 반나체의 목욕 행위가 남자들에게는 구경거리, 눈요깃거리였다. 순창 두룡정 단오 물맞이 현장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대낮에 연출되었던 것이다.
[절차]
단오절 기간은 농촌에서 모내기를 마치는 시점이고, 농한기에 속한다. 그래서 단오제를 구경하고 단오난장에서 놀이를 즐겼으며, 순창 객사 앞 응양지에서는 그네뛰기를 하였다. 부녀자들은 그네뛰기와 두룡정 물맞이를 즐기기도 하였다. 두룡정 주변에는 술과 음식을 파는 장사꾼들이 몰려들어 좌판을 벌였고, 사람들은 음식과 술을 먹고 마시며 즐겼다. 간혹 술을 마시고 취한 남녀가 두룡정 주변의 보리밭에서 일탈적인 정사 행위를 벌이는 일도 있었다. 단옷날 두룡정 물맞이를 즐기다가 남녀의 애정 행위로 태어난 아이를 단오동이라고 불렀다. 단옷날 해질녘에 두룡정 주변의 보리밭은 온통 깔아뭉개진 상태였다고 하니 풍기 문란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순창의 향토 사학자인 양상화[남, 1932년 생]는 순창 단오 물맞이 풍속에는 ‘다섯 가지 맞이’가 있다고 하였다. 다섯 가지 맞이는 ‘비 맞고, 물 맞고, 서방 맞고, 매 맞고, 소박맞고’ 등이다. 비 맞고는 단옷날에 물맞이를 즐기다가 종종 내리는 비를 맞는 것이고, 물 맞고는 두룡 약천으로 물맞이를 즐기는 것이며, 서방 맞고는 물맞이를 즐기면서 성관계를 맺는 남자를 비유한 말이고, 매 맞고는 남편이 부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때렸다는 것이며, 소박맞고는 결국 집에서 쫓겨났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