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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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重陽節 |
이칭/별칭 | 귀일날,중구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팔덕면 덕천리|동계면 구미리|인계면 갑동리 |
집필자 | 황금희 |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음력 9월 9일에 지내는 풍속.
[개설]
중양절(重陽節)은 음력 9월 9일은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로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등과 함께 중일(重日) 명절의 하나이다. 중일 명절 중에서도 특히 9월 9일을 가리켜 중양(重陽) 또는 중구(重九)라 부른다. 이때는 추석 때 하지 못한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기도 하며, 올벼심리를 하기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중양절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명절로, 중국에서는 한나라 때부터 지켜졌다. 음양 사상(陰陽思想)에 따르면 홀수[奇數]를 ‘양(陽)의 수’라 하고, 짝수[隅數]를 ‘음(陰)의 수’라 하여 ‘양의 수’를 길수(吉數)로 여겼다. 예컨대 전통 사회의 절일(節日)로서 설날·삼짇날·단오·칠월 칠석 등이 있는데, 양수를 길수로 여기는 기수 민속(奇數民俗)이다. 이러한 기수 민속은 양의 수가 중첩된다는 의미에서 다 중양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 중양이라고 하면 중구를 가리킨다.
당송(唐宋) 대에는 중양절은 추석보다 큰 명절로 여겼다. 등고(登高)라 하여 수유(茱萸)를 담은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국화꽃을 감상하는 상국(賞菊), 국화주를 마시며 시를 읊는 시주(詩酒) 등의 풍속이 있었다. 중구는 또한 기러기가 옛집을 찾아오는 날이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시대부터 이날 국가적인 행사를 행하였다. 고려 때는 국가적인 향연을 벌였으며, 조선 세종 때에는 중구를 명절로 공인하고 늙은 대신들을 위한 잔치인 기로연(耆老宴)을 추석에서 중구로 옮겼다. 또 중양절에 특별히 과거 시험을 실시하여 이날을 기리기도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9월조에 의하면 “누런 국화를 따다가 찹쌀떡을 빚어 먹는데, 그 방법은 삼월 삼짇날 진달래 떡을 만드는 방법과 같으며, 이를 화전(花煎)이라 한다. 지금의 국화떡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배와 유자와 석류와 잣 등을 잘게 썰어서 꿀물에 타면 이것을 화채라 하는데, 이것은 시절 음식도 되지만 제사에도 오른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중구의 시절 음식으로 국화전과 화채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중양절을 명절로 쇠지 않고 이 무렵 단풍 구경을 간다.
[절차]
음력 8월 15일 추석이면 햇벼가 생산된다. 햇벼를 추수하여 천신을 해야 하나 여의치 않아 햇벼가 생산되지 않았다면 추석 차례를 미루어 음력 9월 9일에 ‘귀일차사’에 햇벼를 올린다. 조상 단지를 모신 집에서 단지의 쌀을 햅쌀로 갈아 넣지 못한 사람은 중구일에 반드시 갈아 넣는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순창 지역에서는 이 무렵이 추수 직전이 된다. 10여 일이 지나면 추수를 하고 콩도 뽑고 기타 농작물을 거두는 시기이다. 윗목에 상을 차려 제사를 지냈는데 추수 감사절의 성격이 강하다. 중양절을 ‘귀일날’이라고 부르는데, 하루 이틀 쉬고 추수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동계면 구미리 귀주 마을에서는 아침에 밥을 해 놓고 ‘귀일차사’를 지냈다. 이날 올벼심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복흥면에서는 밀개떡을 해서 조상께 상을 차려 올린다. 인계면 갑동리 갑동 마을에서는 중양절 아침에 간단히 음식을 준비해 조상에게 제를 올린다. 또 객귀나 생사 불명의 조상들도 이날 함께 위로한다. 그 밖에 문중에 따라서 이날 시제(時祭)를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