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8012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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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蔚珍待風軒所藏文書 |
영어의미역 | Old Documents of Uljin Daepungheon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구산봉산로 105-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갑규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6월 29일 - 울진 대풍헌 소장 문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11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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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울진 대풍헌 소장 문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성격 | 고서 |
발급일시 | 1900년 전후로 추정 |
소장처 | 대풍헌 |
소장처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202[구산봉산로 105-2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 대풍헌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개설]
울릉도 수토(搜討)를 떠나기 전에 머물렀던 대풍헌에서 소장하고 있는 문서로서, 당시 실무 담당 관리들의 업무 관련 기록과 마을 수호를 다짐하는 동민들의 결의를 담은 기록들이 주요 내용이다.
[제작발급경위]
신미 7월에 작성된 완문(完文)과 계미 10월에 작성된 공궤변통(供饋變通)의 수토절목(搜討節目) 각 1점 외에는 모두 현판으로 기록이 보존되어 있다. 신미나 계미년은 앞의 연호가 없어서 어느 시대인지 알 수가 없다. 종이의 지질로 보아 조선 말기인 1900년 전후로 추정된다.
[구성/내용]
현재 남아 있는 완문(完文)을 보면, 수토에 필요한 제반 경비를 동사에서 정기적으로 거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자세한 절목을 수토절목이란 것으로 남겨 놓았으며, 동민들이 자체적으로 마을을 수호하고 단합할 것을 약속하는 동계완문(洞稧完文)도 현판으로 남아 있다.
이서구(李瑞求)가 지은 「구산동사기(邱山洞舍記)」, 1872년에 방오(方五)가 지은 기문, 1851년에 김학린(金學鱗)이 지은 「구산동사중수기」 등 8점의 현판들이 수토에 대한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울릉도를 순찰하는 수토사 일행의 접대를 위한 경비 조달 방법 이외에도 19세기에도 조선이 울릉도를 실질적으로 관리했던 상세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6년 6월 29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