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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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愼喜男 |
이칭/별칭 | 길원(吉遠),영계(瀯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탁현진 |
[정의]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길원(吉遠), 호는 영계(瀯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를 지낸 신후경(愼後慶), 할아버지는 신영명(愼榮命)[1451~1498], 아버지는 병절 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신우장(愼友張)이다. 어머니는 평시령(平市令)을 지낸 김제(金濟)의 딸이다. 진안(眞安)과 연산(連山)의 수령을 역임한 신여경(愼餘慶)[1538~1592]이 아들이다.
[활동 사항]
신희남(愼喜男)[1517~1591]은 1543년(중종 38)에 진사시에 합격한 뒤 종6품의 선무랑(宣務郎)이 되었고, 1555년(명종 10)에 선교(宣敎)의 벼슬을 지냈다. 1570년(선조 3) 수찬·장령의 벼슬을 거쳐 종부시 정(宗簿寺正)으로서 『명종실록(明宗實錄)』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는 부교리, 사간, 교리, 집의, 좌승지를 거쳐 1576년(선조 9)에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병조와 예조의 참의를 역임하다 1581년(선조 14)에 조정의 당쟁과 붕당에 염증을 느껴 금산 군수를 자청하여 지방으로 갔다가 벼슬을 내려놓고 영암으로 낙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영보정(永保亭)을 중수하고, 송양서원(松陽書院)에 서당을 개설하여 후학들을 가르쳤다.
시와 글씨에 뛰어나 석봉(石峯) 한호(韓護)[1543~1605]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또한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와 박순(朴淳)[1523~1589],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 등과 교류하며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 시문집 『영계집(瀯溪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