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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충민사 정화 사적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31325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충민사길 52-23[덕충동 1829]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유화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 여수 충민사 정화 사적비 건립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45년 - 이순신 출생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61년 9월 3일 - 이억기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8년 - 이순신 사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7년 8월 27일 - 이억기 사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597년 - 안홍국 사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6월 1일 - 여수 충민사 사적 제381호 지정
현 소재지 여수 충민사 정화사적비 - 전라남도 여수시 충민사길 52-23[덕충동 1829]지도보기
원소재지 여수 충민사 정화사적비 - 전라남도 여수시 충민사길 52-23[덕충동 1829]
성격 사적비
관련 인물 이순신|이억기|안홍국
재질 화강암|오석
크기(높이, 너비, 두께) 80㎝[비석 높이]|106㎝[너비]|4㎝[두께]
소유자 여수시
관리자 여수시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 여수 충민사 안에 있는 정화 사적비.

[개설]

여수 충민사는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의민공(毅愍公) 이억기(李億祺), 충현공(忠顯公) 안홍국(安弘國)을 모신 사당이다. 여수 지역 유림과 주민들이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춘기 석채례를 지내고 음력 9월 10일에는 추기 석채례를 지낸다. 또 4월 28일에는 충무공 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건립 경위]

1975년 여수 충민사를 중건하고 정화한 기념으로 여수 충민사 정화 사적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여수 충민사 정화 사적비전라남도 여수시 충민사길 52-23[덕충동 1829]의 여수 충민사 숭모문 오른쪽에 서 있다.

[형태]

화강암으로 주위에 부석을 깔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기단을 만든 후 좌우에 파삭문을 새긴 기석을 세우고 비문을 새긴 오석을 붙였다. 비석 높이는 80㎝이며, 너비는 106㎝, 두께는 4㎝이다.

[금석문]

여수 충민사 정화사적비의 전면에는 “조선 선조 25년부터 7년 동안 우리나라가 겪은 임진왜란은 그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당하게 된 침략전쟁이라 왜적이 부산에 상륙한 지 두 달 만에 서울과 평양이 함락되고 국왕 이하가 의주로 몽진하는 등 국운이 풍전등화처럼 되었으니 뉘라서 이 국난을 만회할 수 있었던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은 이 고장 여수의 수군본영을 근거 삼고 거북선으로 무적함대를 편성하여 도처에서 왜의 수군을 격파하여 제해권을 장악하니 비로소 기울던 국운과 전세가 만회되기 시작했다. 그 공로로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하게 된 장군은 온 국민의 항전의식을 크게 북돋우고 왜적의 과대망상과 침락 야욕을 분쇄하였다. 그러나 장군은 간신의 모함으로 갖은 수모와 백의종군의 수난을 겪게 되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다. 개전 초기의 헛된 승리감에서 좌절해 있던 왜군이 선조 31년 이른바 정유재란을 도발하게 되자 나라는 또다시 위급한 지경에 이르러 국왕은 장군을 극난극복의 일선에 중용하였다. 장군은 오직 나라 위한 충성심으로 패잔의 열두 척 함선과 백여 명의 수군 장병을 이끌고 울돌목에서 세계 해전사상 유래 없는 명량대승첩을 이룩하고 임란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패주하는 적을 무찔러 임란 7년의 피맺힌 민족의 한을 풀다 승전고 울리는 그 순간 자신의 목숨까지 바쳤으니 정녕 장군은 이 나라 국난 극복사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구국의 명장이었다. 이에 나라에서는 장군에게 충무공의 시호를 내리고 영의정으로 추증하여 그 위업을 현창하였다. 구국성전의 요람이었던 이 지방에는 일찍이 충민사가 건립되어 사액을 받고 충무공을 주력으로 우수사 이억기와 보성군수 안홍국 두 장군의 그 향사가 후세에 전승되고 광복 후 여수의 유림은 이충무공 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충민사를 관리하면서 충무공의 기념사업에 노력을 경주하여 이곳은 조국애를 함양하는 호국의 제단이 되어 왔다. 이제 오랜 세월의 풍화에 퇴락되고 그 면모가 초라하게 되었던 충민사를 정부 지원으로 새로 중건 정화하면서 이 사적비를 세우니 우리 모두 성웅 이충무공의 위업과 그 숭고한 호국정신을 계승하여 오늘 우리 세대가 국가와 민족에 헌신해야 할 결의를 다짐하자. 1979년 월 일 이선근 글. 정기로 씀.”이라고 쓰여 있다.

[현황]

2021년 6월 현재 여수 충민사 정화사적비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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