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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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후삼국시대까지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여수 지역에는 삼한시대 마한연맹체의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4세기 후반 백제가 세력을 확장함에 따라 전라남도 지역에 위치한 여러 소국들은 백제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백제는 여러 소국들을 곧바로 군현(郡縣)으로 편제하거나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았다. 소국의 족장세력의 존재를 인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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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교육은 내부의 자연적 성장의 힘과 외부 영향력과의 합력(合力)에 의하여 성립되는 인간 형성의 작용을 의미하며, 타고난 그대로의 인간성을 바탕으로 참되고 가치 있는 인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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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의 지명.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평양 천도 후 백제를 쳐서, 개로왕(蓋鹵王)을 살해하고 수도를 빼앗았다. 수도를 점령당한 백제는 왕자 문주를 받들어 공주로 천도하였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에게 빼앗겼다. 그 뒤 성왕이 즉위하여 538년(성왕 16)에 수도를 기름진 평야에 해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금강 유역의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겼다. 안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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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시전동(枾田洞)은 시목(枾木)과 기전(基前), 선소(船所)마을을 합쳐 만들어진 동이다. 시목마을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 골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감 시(柿)와 나무 목(木)으로 훈차(訓借)하여 지은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소금을 만들던 조해소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기전마을은 터 앞이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놓은 이름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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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신기동 동쪽의 민드래미고개 북쪽 등성이에 있는 골짜기인 수문(숨은)골 주변에는 수문성(水門城)이라는 산성이 있다. 또한, 신기동의 선소마을은 배를 만들던 마을에 붙여졌던 땅이름으로 많은 마을이 그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신기동의 선소마을은 지금도 옛 마을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1980년 명지대학교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거북선을 만들었던 장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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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학동·학용동·안산동·소호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02년 여수면이 쌍봉면으로 개칭되면서 두 지역의 이름 있는 산인 전봉산(戰鳳山)과 비봉산(飛鳳山)의 두 개의 봉(鳳)자를 따 쌍봉면이라 이름 붙였다. 삼국시대에는 감평군[순천]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승평군 해읍현에 속했으나, 조선시대 1396년(태조 5)에는 순천부 여수현에 속하였다. 1896년(고종 33)에는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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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의 불교를 배우기 위해 선발된 일본 승려[遣唐請益僧] 엔닌[圓仁][794~864]은 838년 6월 13일 당나라에 파견될 사신의 배[遣唐使船]를 타고 지금의 규슈 후쿠오카를 출발하였다. 엔닌은 천태종의 발상지인 천태산 순례가 좌절되자 장보고가 세운 적산법화원에 머물며 당나라 불교를 배울 방도를 찾다가 840년 불교 성지 가운데 하나인 오대산 대회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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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조선 중기 성지. 석창성지는 여수 지역에서는 여수석보(麗水石堡)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여수석보는 삼국시대 백제의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해읍현 이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수 지역의 치소로 추정되고 있다. 여수석보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목책으로 진흙을 바른 성이며, 둘레는 143보”라 하였다. 그러나 『신증동국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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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동남부 지역에 있는 행정구역. 여수(麗水)라는 명칭은 고려 전기인 940년(태조 23) 행정구역 개편 때 해읍현(海邑縣)을 여수현(麗水縣)으로 변경하면서 처음 사용하게 되었는데, 3면이 아름다운 바다로 둘러싸인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에 속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538년(성왕 16) 구지하성이 관할하는 삽평군(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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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있던 나라 이름. 삼한시대 마한 54개국 중 하나인 원지국(爰池國)이 여수 지역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백제시대 여수 지역은 원촌현(猿村縣)이었는데 ‘원’의 고음(古音)이 [jiwon]이고, ‘촌’은 ‘지(支)’ 또는 ‘지(知)’ 등 성(城) 내지 취락과 상통하고 또한 ‘지(池)’가 되므로, 원촌은 원지라고 유추한 것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 부근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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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평양 천도 후 백제를 공격해 개로왕(蓋鹵王)을 살해하고 수도를 빼앗았다. 수도를 점령당한 백제는 공주로 천도하였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에게 빼앗겼다. 그 뒤 성왕이 즉위하여 538년(성왕 16)에 수도를 금강 유역의 부여로 옮겼다. 이때 백제는 사비를 중심으로 전국을 오방제로 나누어 다스렸다.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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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지리적 요소. 인문지리는 특정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기후, 생물, 자연, 도시, 교통, 주민, 산업 등의 여러 가지 사상(事象), 즉 사물과 현상 중 주로 인간 활동이나 삶과 관련한 여러 가지 양상인 인문적 사상을 의미한다. 다른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인문적 사상도 다양한 측면이나 영역으로 세분화하여 관찰할 수 있으며,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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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반도와 도서로 이루어진 여수시는 동쪽으로는 여수수도(麗水水道)를 끼고 경상남도 남해군이 있고, 서쪽은 순천만을 끼고 고흥반도의 동남쪽과 바다로 경계를 이룬다. 또한 남쪽은 남해바다, 북쪽은 순천시와 접하고 있다. 여수반도의 동남단 앞바다에는 대경도(大鏡島)와 소경도(小鏡島)·가장도(加長島)·야도(冶島)·오동도(梧桐島)·돌산도(突山島) 등의 섬들이 천연의 방파제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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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주민이 지역의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도. 지방자치는 일정한 구역의 주민들이 법률에 따라 일정한 권한을 갖는 지방자치 단체를 구성하여 중앙 정부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가지고 그 단체를 구성하는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과 관련된 지방적인 사무, 즉 지방의 정치와 행정 사무를 주민들 스스로의 의사와 책임 아래 선임한 자치 기관을 통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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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해발고도가 낮고 기복이 거의 없는 넓은 땅. 평야는 형성 원인에 따라 크게 퇴적평야와 구조평야로 나누어진다. 퇴적평야는 하천의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평야로 충적평야라고도 한다. 그리고 구조평야는 지질대의 오랜 침식으로 형성된 평야로 침식평야라고도 한다. 전라남도 여수시의 주요 평야로는 여수시 주삼동과 화장동 일대의 여천평야, 돌산읍의 죽포평야·둔전평야, 율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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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학용동은 학(鶴)이 많이 살았던 마을 ‘학동’과 용처럼 생긴 지형 때문에 ‘용터’라고 부르던 ‘용기마을’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취해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 1914년에 처음 만들어진 마을 이름이다. 옛 쌍봉면 시절부터 면의 중심 마을이던 곳이 여천시를 거쳐 통합 여수시청이 위치한 동으로 발전해왔다. 옛 지명들로 웃장·아랫장·가마등·마누등 등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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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속하는 법정동. 화장동은 ‘화산’과 ‘군장’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으로, 1914년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 지역에 관한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인 1789년의 『호구총수』에 ‘대통마을’만이 기록에 전하고 있다. 화산마을의 옛 이름은 ‘덕골’이었다. ‘덕골’이란 이름은 이 일대의 지형이 언덕 모양의 구릉이 있어서인데, 마을 이름을 한자화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