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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산동 사철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207
한자 鳳山洞沙鐵所
영어의미역 Iron Works in Bongsan-d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철 생산지
건립시기/연도 조선시대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봉산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사철 생산지.

[건립경위]

전라좌수영 고지도에는 ‘사철(沙鐵)’이라는 표기가 있다. 또한 『문화유적총람』에는 “제철지 봉산동 1568~1609년 임진왜란 때 사철이 생산되어 무기 제작에 사용, 영조 27년(1751)에 절도사 정익량이 사철소를 설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봉산동 사철소전라좌수영 본영으로부터 해안쪽으로 약 2㎞ 떨어져 위치해 있다.

[현황]

봉산동 사철소는 임진왜란 때 무기 제조와 병기 공급창으로 이용된 곳으로 상당한 기술 수준을 갖춘 제철소가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1992년 11월 광양제철산업과학 기술연구소팀이 3개월 동안에 걸쳐 이 지역에서 채취된 부산물을 조사하여 밝힌 결과이다.

광양제철 과학기술연구소에 따르면 봉산동 주택 담장에서 발견한 슬러그[쇠똥]와 봉강동 7통에서 채취한 사철(원료)성분을 분석한 결과 산화규소(SLO2). 알루미나(AL2O3). 산화철(FCO). 산화티타늄(TIO2). 산화칼슘(CAO) 등의 성분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성분을 분석한 7개의 슬러그는 외관상으로는 달라 보이나 부서진 면을 관찰한 결과 모두 동일한 제련공장에서 발생된 슬러그로 판명됐다. 슬러그의 조직 또한 전체적으로 매우 균일해 완전히 녹은 뒤 응고된 것으로 분석됐다.

슬러그의 용융온도는 섭씨 1천 2백도에서 1천 2백50도 이상에서 조업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봉강동 서당산 일대에서 채광한 사철을 봉산동 일대에서 정광으로 철을 제련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입증된다고 밝혔다.

1993년 한국과학기술원 금속연구부는 봉산동에서 채취한 쇠똥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하였다. 쇠똥을 가루 내어 원자흡광법·발광분광법·X선 회석분광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쇠똥은 용광로에 사철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유출물이며, 기술 수준은 조선 중·후기의 평균치에 해당한다. 이는 또한 일본의 전통적인 사철 제련법의 결과물과 흡사하다고 밝혔다.

제철소 폐기물 처리장으로 추정되는 봉산동 3통 3반과 4반 일대의 옛날식 돌담이나 주택 안마당 등에서는 제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슬래그와 내화돌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 상당한 양이 깔려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땅을 조금만 파면 찾아볼 수 있다. 2011년 봉산동 도시계획으로 2017년 도로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이 전부 파헤쳐졌다. 파헤쳐진 자리엔 쇠똥[슬러지]이 쏟아져나와 이곳이 사철소 자리였음을 다시 확인했으나 따로 관리되지 못했다.

[의의와 평가]

봉산동 사철소 대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진다면, 이 유적은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에 대한 연구뿐만 아니라 400여 년에 이르는 조선시대의 제철·제련 기술 발달사를 연대기적으로 추적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 지역을 복원은 어렵더라도 역사적 제철유적지라는 안내표지판이라도 세워 후손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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