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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214
한자 -船
영어음역 Geobukseon
영어의미역 Turtle Ship
이칭/별칭 거북배
분야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병호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전투함의 하나.

[개설]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은 3척으로 추정되는데, 명칭은 본영거북선, 방답거북선, 순천거북선으로 모두 여수에서 만들어졌다. 제작 지역은 본영선소[중앙동]와 방답진선소[돌산읍], 그리고 순천부선소[시전동]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그림으로 전해지는 거북선의 종류는 세 가지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충무공전서』에 실린 통제영 거북선[통영]과 전라좌수영[여수] 거북선이다. 충무공 이순신 종가에도 거북선 그림 두 장이 전해져 오는데, 이 거북선은 『충무공전서』의 거북선과는 다른 모양이다.

[형태]

1934년 언더우드(Underwood)가 최초로 거북선을 연구한 이래, 지금까지 거북선은 대체로 판옥선에 지붕을 씌운 배라는 점, 다른 많은 한국 전통 배와 마찬가지로 한국식 노를 사용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러나 거북선의 구체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간단하게 여러 학자들의 주장을 살펴보면, 『충무공전서』는 통제영 거북선이 충무공 이순신이 개발한 거북선의 원형에 가깝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충무공전서』에는 통제영 거북선의 내부 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부족하다. 때문에 통제영 거북선의 갑판 구조에 대해 1층 구조였다는 주장과 반 2층 구조였다는 주장, 그리고 2층 구조였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1층 구조일 경우 판옥선에서 2층 갑판을 완전히 제거하고 그 위에 지붕을 씌운 셈이며, 2층 구조일 경우 판옥선의 구조를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지붕을 씌운 셈이다.

그러나 통제영 거북선이 충무공 이순신이 개발한 거북선의 원형에 가깝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이상, 거북선 원형의 갑판은 2층 구조일 가능성은 없다. 통제영 거북선의 그림을 보면, 1층 갑판의 천장 위치에서부터 곡면의 지붕이 씌워진 모습이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의 경우 그림상 2층 구조일 가능성이 있으나, 통제영 거북선의 경우 순수한 2층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문제는 거북선의 지붕 좌우에 있는 포 구멍이다. 통제영 거북선 그림을 보면 지붕 좌우에 12개의 구멍이 그려져 있는데, 『이충무공전서』 본문을 보면 이 구멍에 대해 포혈(砲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약 거북선을 순수한 1층 구조로 볼 경우 이 포 구멍을 설명할 수가 없다. 1층 구조라면 지붕 부근에 포혈을 만들 필요가 없고, 설사 만든다 해도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외관상 2층이 아니면서도 지붕 부근에 포혈이 존재하는 구조라면, 거북선의 내부 구조는 반 2층 구조일 수밖에 없다. 반 2층 구조일 경우에도 판옥선의 상층 갑판을 그대로 두고 여장만 제거한 채 지붕만 씌운 경우와, 판옥선의 상층 갑판을 완전 제거한 경우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판옥선의 상층 갑판을 그대로 둔 경우에는, 판옥선에서 개조하기에는 간편하나, 지붕의 높이가 낮아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은 상층 갑판을 제거한 경우와 별로 차이가 없으므로 별로 실익은 없다. 일부 연구가들은 판옥선에 상층 갑판을 제거하는 식의 개조는 조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나무못으로 제작한 한선은 필요할 경우 해체, 재조립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이다. 채광이나 활동의 편의성을 고려한다면 상층 갑판을 제거하고 반 2층 갑판을 설치한 경우가 좀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 경우 비교적 좁은 반 2층 공간에서 대형 총통, 특히 대장군전 등을 발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며, 소형의 승자총통이나 활을 사격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일부 연구가들은 거북선 원형이 1층 구조나 반 2층 구조일 경우, 사실상 2층 구조의 판옥선에서 퇴보한 것이며, 판옥선의 2층 갑판을 단순히 지붕으로 개조한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만약 1층 구조나 반 2층 구조일 경우 노를 젓는 격군과 대부분의 전투 요원이 같은 층에 있게 되므로, 운용하기에 상당히 불편할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의견이다.

그러나 실물 복원 거북선을 타본 사람이라면 다소 불편하기는 해도, 같은 층에서 노를 젓고 전투를 수행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통제영 거북선이 2층 구조였다면, 『이충무공전서』의 통제영 거북선 그림을 설명할 방법이 없게 된다. 최초의 거북선 원형이 아무런 결점 없는 완벽한 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거북선 원형에는 결점이 있었을 것이며, 그러한 결점을 개량하기 위해 전라좌수영 거북선이나 충무공 이순신 종가 거북선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용머리(혹은 거북머리)의 용도에 대해서도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충무공 이순신이 『난중일기』에 소포[현 여수시 종화동]에서 직접 용머리에서 현자화포를 쏘았다고 기록한 이상 임진왜란 당시의 용머리는 화포 발사용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용머리 내부에 현자화포를 발사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확보되어야 하므로, 지금 복원된 거북선보다는 용머리가 커야 할 것이고, 높이도 조금 낮아야 할 것이다. 거북선 이물비우[船首材]에 그려진 귀면(鬼面)은 충각용 돌기(Ram)일지, 아니면 단순한 장식용 그림일지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현재 밝혀진 사료로서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특징]

『충무공전서』에서는 통제영 거북선이 충무공 이순신이 만든 거북선과 유사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통제영 거북선이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충무공전서』에는 전라좌수영[여수] 거북선이 언제 개발된 것인지 아무런 구체적 설명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이미 임진왜란 당시에 몇 가지 다른 종류의 거북선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충무공 이순신 종가에 소장된 거북선 그림은 판옥선처럼 장대(將臺)가 존재한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충무공전서』에는 이런 형태의 거북선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충무공전서』가 편찬된 정조대 이후에 개발된 새로운 종류의 거북선인 것 같다. 충무공 이순신 후손 중에 수군통제사를 역임한 사람이 여러 명이므로, 후손 중의 한 명이 조선 말기의 거북선 그림을 집안에 소장하게 된 것 같다.

충무공 이순신 종가 거북선 그림 중에 하나는 거북머리가 없다. 이 때문에 ‘머리 없는 거북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머리 없는 거북선’은 거북선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해 머리와 장대를 제거한 그림일 뿐, 종류가 다른 별도의 거북선은 아닌 것 같다. 일부 연구가들은 이 그림을 근거로 거북선의 머리가 안팎으로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위의 그림을 가지고 그런 주장을 한다면, 위 거북선 그림의 장대도 상하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현재 10여 종이 남아 있는 조선 후기 『수군 훈련도』에 묘사된 거북선 중 상당수가 장대가 있는 거북선이다. 적어도 19세기 이후에는 장대가 있는 거북선이 일반화되었던 것 같다.

[의의와 평가]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선조 24) 2월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여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1년 2개월 동안 다가올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 대비해 거북선, 철쇄 방비 시설, 북봉 연대 등 방비 시설을 새로 구축하는 등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북선 건조가 충무공 이순신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고, 임진왜란의 상징처럼 되어 있다. 이런 거북선이 여수에서 건조되고 운용되었음은 『난중일기』를 비롯한 많은 문헌과 선소를 비롯한 많은 유적에서 나타나며, 이것은 거북선의 고향이 여수임을 말해 주고 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여수시민 거북선에 왜 용머리가 있나요? 2011.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