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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499
한자 黃祥中
영어음역 Hwang Sangjung
이칭/별칭 응지(膺址),송와(松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입향조
출신지 경기도 양주
성별
생년 1570년(선조 3)연표보기
몰년 1598년(선조 31)연표보기
본관 창원
대표관직 군기시첨정

[정의]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이자 창원황씨 여수 입향조.

[가계]

본관은 창원. 자는 응지(膺址), 호는 송와(松窩). 조선 개국공신 의원군(義原君) 황거정(黃居正)의 7세손이다. 조부는 황탕경(黃湯卿)이고, 아버지는 효정공(孝貞公) 이조판서 황진(黃璡)이며, 부인은 밀양박씨 박진수(朴震首)의 딸이다. 아들로 황순(黃洵)·황연(黃漣)·황일(黃溢) 3남을 두었다.

[활동사항]

1588년(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벽동군수를 거쳐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 장군을 따라 출전하는 곳마다 큰 공을 세웠다. 특히,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벌어진 한산전에 참전하여 승리를 이끌었다.

1598년(선조 31) 김대인(金大仁), 김치모(金致慕) 등과 더불어 율촌 장도(獐島)에서도 큰 공을 세웠으나 1598년 11월 18일 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순절하였다. 시신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수시 선원동 반월마을 토미산에 안장하게 되었는데, 모든 가족이 묘소가 있는 선원동 반월마을로 이거함에 따라 황상중반월마을의 입향조로 모시게 되었다.

[상훈과 추모]

선무종훈(宣武從勳)에 책록되고, 정조 때 호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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