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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551
한자 麗水影堂址
영어의미역 Namsan-dong Shrin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 30-4[어항단지로 222-32]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여수 영당지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여수 영당지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재지정
성격 신당
양식 맞배지붕을 한 현대식
건립시기/일시 1982년[복원]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1칸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 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에 있는 최영(崔瑩)·이순신(李舜臣)·정운(鄭運)·이대원(李大源) 등 4위를 모신 당집.

[개설]

보통 당집은 동제당·용신당·산신당 등으로 분류된다. 동제당은 마을과 관계가 깊고, 용신당은 바다와, 산신당은 산과 관계가 있다. 여수 영당지는 바다와 관계가 깊은 용신당으로 보인다.

[변천]

1943년 여수경찰서 형사부장인 김차봉(金次奉)에 의해 영정이 유실되어 빈 사우만 남아 있던 것이 1975년 국동 어항 단지 조성 사업으로 훼철되었다가 1982년 복원하였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최영의 영정만 모셨으나, 그 후에 이순신·이대원·정운의 영정을 더 모시고 있다.

[형태]

맞배지붕의 현대식 당집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전후 1퇴의 규모이다. 다듬돌로 높게 쌓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웠다. 기둥 위에 주두(柱頭)가 있고, 포작(包作)은 주심포식인데 쇠서가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평방과 도리 사이에는 거북선 모양의 화반이 놓였고, 그 위에 외목도리를 얹었다

[현황]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다로 나가려면, 특별하게 격식을 갖춘 제는 올리지 않았으나, 여수 영당지에다 쌀 두 말씩을 바치고 무사 항해를 기원했다. 기원을 올리지 않았을 경우 풍랑을 만나거나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 배로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전한다. 현재 진남제 행사 때 이를 재현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여수 영당지는 원래 남산 산록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제당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왜구들의 노략질이나 풍랑과 흉어로 인해 적지않은 고통을 당한 바닷가 사람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용신당이나 해신당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의 신격(神格)은 수군 장군으로서 바다를 가까이 하면서 살아가는 여수 사람들의 읍락비보 원리를 지닌 신앙으로 평가된다. 조선 중기 순천부사를 지냈던 『지봉유설』의 저자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쓴 시가 전해지고 있다. 2008년 12월 26일 전라남도 민속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는데, 복원된 건물의 가치가 높지않고, 영당의 민속적 의미를 보다 중시하여 문화재 명칭을 여수 영당지로 하였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민속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5.05.04 항목명 수정 남산동 영당->여수 영당지로 수정(20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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