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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744
한자 西村里
영어음역 Seochon-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서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종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행정리
면적 6.225㎢
총인구(남, 여) 394명[남자 203명,|여자 191명][2022년 9월 6일 기준]
가구수 224가구[2022년 9월 6일 기준]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조선시대 곡화목장[백야곶목장]이 있던 곳으로 서촌리화동리는 마을 사이에 있는 개천을 중심으로 하여 줄다리기와 씨름 등의 민속놀이가 아주 성행했다고 한다. 곡화목장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자리한 두 마을이 이 지역의 중심이었다. 최근 조사된 동학농민전쟁과 관련된 여수의 구전자료는 화양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되었다. 여수 동학군의 대장이었던 심송학 도접주는 화양 지역 전투 이후에 붙잡혀 죽음을 당했지만 봉오마을의 심씨가에서는 후손에 자랑스러운 조상이 되었다.

[명칭유래]

서촌리는 조선시대 곡화목장 감목관 아사가 있던 화동리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촌리 북쪽에 있는 석교리는 본래 석교마을 이름인 독다릿개를 한자로 바꾼 이름으로 서촌에서 석교마을로 가려면 낮은 갯벌을 지나야 했기에 이곳에 큰 바윗돌을 놓아 돌다리를 만들게 되어서 불려졌다.

석교마을로 가는 길목 골짜기에는 피우실이란 지명이 전해오는데 동학 때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 피를 많이 흘린 곳이어서 피우실이라 하였다는 전설이 있는데 『곡화목장 사례』를 보면 “避雨室假家”(피우실가가)로 표기되어 목지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만든 움막이 있던 곳으로 보인다. 서촌의 남쪽에 있는 봉오동마을은 마을의 옛 이름을 봉골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봉화산에 있는 봉군들이 이 마을에 살면서 봉수대를 교대로 지켰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 형성된 서촌리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석교·봉오와 함께 여수군 화양면 서촌리가 되었다. 1949년 여천군 화양면 서촌리로 되었고, 1998년 여수시 화양면 서촌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서남쪽에 서이산[296.8m]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 낮은 평야를 이룬다. 봉화산에서 시작된 화양천이 이영산과 간지산 사이를 거쳐 산전저수지에 모아져 서이산안양산을 사이에 두고 서촌들로 흐른다. 서촌화동리와 들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모든 주민이 농업을 위주로 생활하는 농촌 마을이다.

[현황]

서촌리화양면의 중서부에 있는 법정리로, 2022년 9월 6일 기준, 총세대 224세대, 인구 394명[남자 203명,|여자 1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음지몰·석교리(石橋里)·봉오동 등이 있다. 면소재지에서 6㎞ 지점에 위치한 도시 근교 마을이지만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어 마을 주민 대부분이 고령화되었다. 최근 시설원예가 많이 들어서서 토마토와 오이의 재배가 많고 갓김치의 재료가 되는 갓재배가 많다. 서촌리의 동쪽은 화동리, 서쪽은 순천만, 남쪽은 이목리, 북쪽은 옥적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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