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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1817
한자 興國寺圓通殿
영어의미역 Wontongjeon Hall of Heungguksa Temple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최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4년 9월 24일연표보기 - 흥국사 원통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흥국사 원통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법당
양식 주심포양식
건립시기/일시 1624년 추정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3칸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17[흥국사길 160]지도보기
소유자 흥국사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 대웅전 향우측 가장 뒤에 있는 조선 중기 법당.

[개설]

대자대비한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을 관음전 또는 원통전, 대비전이라고 한다. 관음전은 주불전이 아닌 부속 불전인 경우에 사용한다. 관음보살이 주불전인 경우에는 원통전이라고 부른다. 원통이란 주원융통(周圓融通)한 자비를 구한다는 의미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두루 통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주원융통의 약자이다.

원통전은 미륵불을 모시는 미륵전과 함께 민간신앙적인 성격이 강한 전각이다.

가람배치상 외진 곳에 지어진 독립 전각이다. 이러한 배치의 이유는 교리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흥국사는 주불전인 대웅전과 부불전인 불조전, 팔상전, 응진전이 있다. 모두 법화사상에 기반한 가람배치이다. 더구나 흥국사영축산에 위치한다. 철저한 법화신앙의 가람에 정토사상인 아미타신앙의 하위신앙인 관음신앙의 전각인 원통전이 있다. 다른 전각과 같은 곳에 위치하기에는 흥국사의 정통성에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가람의 주축선상에서 많이 떨어진 외진 곳에 원통전을 건립한 것이다.

[변천]

“지리산에 살던 이름난 대목장(大木匠)이 흥국사 대웅전 복원 소식에 기회를 잡기 위해 찾아왔다. 당시 대목장들의 최대 영광은 사찰 대웅전 불사였다. 지리산 대목장이 서둘러 흥국사를 찾아가보니 이미 다른 목수가 일을 맡아 버렸다. 대목장은 사찰 불사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흥국사 불사에 동참한다. 대웅전 불사를 놓쳐 “원통해서 못살겠다”면서 대웅전에 버금가는 건축물로 만들었다. 이 건물이 원통전이라고 하는 구전이 있다. 원통전에 대한 기록이 없어 어느 시기를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1988년 지붕의 기와를 점검하다가 암막쇠에서 명문에 ‘숭정6년(1633년) 관음전(崇禎六年 觀音殿)’이라고 씌여 있었다. 관음전이라고 불린 대웅전이 1633년 이전에 있었다는 얘기다. 1195년창건, 1560년 중창, 1624년 삼창등에 대웅전과 법당이 건축되었다고 기록되었다. 1690년 원통전 불사가 따로 기록되어 대웅전과 법당이 같이 건축된 기록은 그 이전이다. 이 구전은 삼창 때까지의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 기록이 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원통전”이라는 이름을 따서 언젠가부터 스토링텔링화해서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는 1195년부터 1633년 사이에 건물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현재의 건물과 동일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1974년 해체, 보수하였다. 2008년 기둥을 세워둔 채 뒤 기둥 2개만 교체하였다. 벽은 허물지 않고 천장과 처마의 썩은 부재를 교체하였다. 지붕엔 적심 대신 대발을 사용하고, 기와 이언 후 벽을 보수하고 양토하였다.

[형태]

흥국사 원통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정면에 각각 2개의 기둥과 활주를 내어 입구의 기능을 갖도록 T자형의 평면건물이다.1974년 9월 24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기본적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내동(內棟)이 중심이다. 사방에 툇간이 붙고 건물 정면에 다시 배전(拜殿) 같은 건물이 부가된 양식이다. 겉에서 보면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내동을 기본으로 외부에 각기 1칸씩의 회랑을 부가했다. 여기에 정면 어칸과 좌우 협칸의 중간부까지 또다시 2칸을 추가하여 정면 중심에 넓은 공간을 형성했다.

불단을 가운데 두고 사방에 마루를 가설하여 불단 주위를 순회할 수 있도록 했다.

기단은 대충 다듬은 막돌로 축조한 외벌대 기단이다. 주초는 정평주초와 덤벙주초를 혼용하고 기둥은 민흘림이 있는 원형기둥을 세웠다. 전면과 양 툇간에는 처마밑으로 팔각의 활주를 세워 지붕의 하중을 받게 하였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을 걸치고 위에는 주두를 올렸다. 창방 위에는 화반과 동자주를 세워 장여를 받고 있다. 화반의 모양은 건물의 정면에만 연화형으로 아름답게 초각하였다. 제공과 첨차의 세부 수법은 다포 형식을 따르고 있다.

포작 구성은 기둥머리에서 초익공을 빼고 난 뒤, 소로를 초익공의 기부에 올리고 그 위에서 제1제공과 행공첨차를 교차시켰다. 행공첨차는 하단이 곡선으로 끝에는 연봉을 조각하고 상단 좌우에는 소로를 놓아 단장여를 받고 있다. 초익공까지는 익공계이나 그 상부는 다포계의 결구법을 사용하였으며 첨차는 주심포계 첨차이다.

근본적으로 기둥 위에만 포작이 되었으므로 주심포계로 봐야 한다. 공포의 결구법은 주심포, 다포, 익공계의 기법을 모두 사용하여 아름다운 포작을 했다. 초익공은 끝 부분을 3갈래로 나눠 하단은 앙서형으로, 중앙에는 작은 연봉을 조각하고 상단은 수서형이다. 이익공 이상은 수서형으로 하단에 연봉을 조각하여 하단부터 청색, 황색, 적색으로 단청하였다. 출목상 외2출목이나 내부는 곡선적인 보아지로 처리하고 중앙에 만개한 황색 연화, 하단에 청색 연봉과 상단에는 적색 연봉을 조각하였다. 귀포의 귀한대 아래에는 초익공을 용두로 장식하고 맨 위에는 봉황의 머리를 올려 배전의 역할을 하는 향좌측 공포의 용만 여의주를 물고 있다. 이 용을 출발점으로 삼아 탑돌이 같이 돌이를 한다고 전하고 있다.

내동은 측면과 후면에는 벽체를 가설하고 창호는 3칸 모두 2분합이다. 양 툇간에도 두 짝씩 설치되어 있는 창호의 창살은 빗살창이다.

천장은 내부의 경우 빗천장과 우물천장을 가설했으며, 외부 툇간은 정면 배전 역할을 하는 돌출된 부위에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예전에는 원통전에 1723년에 조성된 수월관음보살도가 있었다. 현재는 불단 위에 최근에 조성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천정에는 아(亞)자형 닫집이 총 5칸으로 각 칸마다 계단식으로 돌출시켜 결구되었다. 닫집의 기둥은 모두 허주 형식인데 각 기둥 사이는 낙양으로 조각했으며, 기둥 끝에 연꽃을 매달았다. 닫집 내부 역시 구름무늬로 장식하였다.

[의의와 평가]

흥국사 원통전은 정면은 넓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보살상을 모신 법당은 매우 비좁고 전체를 둘러 마루를 깔아 돌면서 정진을 한 탑과 법당의 절충양식을 취했다. 처마의 결구수법도 범상치 않다.

공포의 모습이 연화와 연봉을 가득 조각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19세기에 건립된 건물의 화려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공포는 건물의 정면에만 배치하고 측면과 후면에는 끝을 단순히 사절시키거나 약간의 곡선만을 부여한 단순한 공포를 결구하였다.

사찰 건물로는 특이한 양식에 속하는 건물이다. 건물 지붕의 한쪽 면이 입구 구실을 하여 평면이 정자형을 이룬다. 주심포 건물이면서 건물의 전면과 측면은 기둥 위에 쇠서 같은 장식을 한 다포계 수법이다. 익공계 양식도 첨가되어 있어 아름답고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여 설계된 건물이다. 조선 후기에 속한 건물이긴 하나 건축 양식 면에서 보기 드문 예라 하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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