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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182
한자 李鳳祥
영어음역 Yi Bongsang
이칭/별칭 충민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충청남도 아산시
성별
생년 1676년연표보기
몰년 1728년연표보기
본관 덕수
대표관직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정의]

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의 전라좌수영에서 활동한 무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의숙(儀叔). 충무공 이순신의 5세손이다. 죽산안씨달성서씨를 아내로 맞아 각각 이한필(李漢弼)·이한익(李漢翊) 두 아들을 두었다. 아버지 이홍저(李弘著)는 상주진영장겸토포사(尙州鎭營將兼討捕使)를 지냈고 호조참판에 추증(追贈)되었으며, 할아버지 이광윤(李光胤)은 현릉참봉을 지냈고 사헌부대사헌에 증직(贈職)되었다.

증조할아버지 이지백(李之白)도 순릉참봉(順陵參奉)을 지냈고 승정원좌승지(承政院左承旨)에 증직되었다. 고조할아버지는 아버지 이순신 장군을 따라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우고 음보로 임실현감에 제수되었다가, 통훈대부와 첨정에 승직되고 사후에 통정대부좌승지에 추증된 이회(李會)[1567~1625]이다.

[활동사항]

이봉상은 1702년(숙종 28) 26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훈련원 주부 등을 거쳐 1705년 삭주도호부사(朔州都護府使)·김해도호부사(金海都護府使) 등 외직으로 나갔다. 1709년(숙종 35) 3월, 전라좌도수군절도사가 되어 여수로 부임하였다. 곡창을 설치하여 곤궁한 지역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부역도 면제해주었다. 심지어는 혼인과 상례비까지도 도와주었다.

1710년 2월 부임한 지 1년 만에 금군장으로 발탁되어 내직으로 자리를 옮겨 승지·경기수군절도사 등의 요직을 거쳤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마자 포도대장이 되었다. 잠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나가 있다가 이후 포도대장에 재임되고, 총융사·한성우윤·형조참판으로서 훈련금위대장을 겸임했다. 1728년 53세에 이인좌(李麟佐)의 반란군에게 작은아버지 이홍무(李弘茂)와 함께 붙잡혀 세상을 떴다.

[상훈과 추모]

여수 지역 사람들은 1710년 이봉상이 사임한 후 전라좌수영 경내에 ‘수사이공봉상선정비(水使李公鳳祥善政碑)’라 새긴 선정비를 건립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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