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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동 진남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248
한자 上岩洞進南堂山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Jinnam Village, Sangam-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 진남마을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1일 19시
의례장소 베틀산 끝자락에 위치한 제단
신당/신체 산신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 진남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상암동 진남 당산제는 매년 정월 초하룻날에 마을 공동으로 모시고 있는데, 이를 ‘당산제’라고 한다. 제일은 정월 초하룻날로, 저녁 7시경에 제를 지내기 시작하여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진남마을에서는 제를 맡아 지내는 이를 ‘유사’라고 한다. 마을 공동재산인 동답을 유사가 경작한다. 한 번 동답을 경작하는 사람으로 결정되면 그 사람이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보이기 전까지 계속 맡아서 하며, 유사 역시 계속해서 했다.

그런데 10여 년 전 제일을 초하룻날로 옮기면서 유사를 선정하는 방법을 바꾸었다. 동답을 경작하면서도 금기가 힘들어 유사 맡기를 꺼리게 되자 통장이 대신 맡게 된 것이다. 이후에는 마을의 통장이 유사를 맡아서 하고 있으며, 제물 역시 유사의 집에서 장만한다.

제비는 마을 공동자금으로 충당한다. 진남마을의 자금은 주로 동답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형성된다. 예전부터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따로 돈을 걷지는 않았다. 제를 지내기 전날인 섣달 그믐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마을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리고 이때 유사는 당산 주변을 청소하며,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둔다. 금줄은 당산 주변에 치는 것으로, 대나무를 세운 후 금줄을 둘러 당산으로 가는 양쪽의 길을 막았다.

보통 제를 지내기 전날에 목욕재계한 유사가 장을 보러 가며, 주로 여수의 서시장이나 어시장을 이용한다. 장에서 구입해 오는 것은 과일류와 생선류, 돼지머리, 떡, 명태, 제주 등이다. 이 중 돼지머리는 그해의 유사에 따라 준비하기도 하고 준비하지 않기도 한다. 제물을 구입할 때 정해진 물목기 없이 그해 유사가 준비하는 대로 올리는 것이다. 제물을 준비하는데 특별히 가리는 음식은 없다.

메는 세 그릇을 준비한다. 이는 세 명의 산신을 모신다고 하여 ‘삼신제’라고도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세 명의 산신을 모시는 것은 예전부터 마을의 어른들이 해오던 것을 그대로 본받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메 세 그릇 외에 큰 양푼에 밥을 담아 5개 이상의 숟가락을 꽂고 나물 등의 반찬을 같이 덜어 놓는 허튼밥을 준비한다. 이는 제상 아래 차려 둔다.

제물은 제는 지내는 날 오전부터 장만하기 시작하는데, 제물을 장만하기 전에 반드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 그 밖에 특별히 지켜야 하는 금기는 없다. 제를 지내기 전에 매구를 치며 마을 한 바퀴를 돈다. 매구를 칠 때는 주민 10여 명이 함께 치며, 특별히 남녀를 구분하지는 않는다. 매구를 칠 때 사용하는 농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 소고 등이다. 농악기는 평소 마을회관에 보관하던 것을 사용한다. 치배들이 입는 것으로 별도의 치복과 꼬깔이 마련되어 있으나, 제를 지내면서는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 치복과 꼬깔은 보통 마을 외부의 행사를 치를 때 사용한다.

유사는 당일 제물을 장만하기 전에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여 제를 지내는데 있어 정성을 다하기 위한 것이다. 요즘은 제일 전날과 당일에만 이와 같은 금기를 지키며 조심하지만 예전에는 유사의 집 앞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두었으며 일주일간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근신했다. 제를 지낸 후에야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지켜지고 있는 유사의 금기는 예전의 엄격한 금기를 꺼리게 되어 간소화시킨 것이라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정월 초하룻날 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1990년대 경에 마을 사람들이 논의를 하여 제일을 변경했다. 그 이전에는 정월 초사흗날 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제일을 변경한 까닭은 10여 년 전 인근에 공단이 들어오고 젊은 사람들이 공단에 다니면서 휴일이 아닌 초사흗날에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어 초하룻날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제일의 변동은 있었으나, 제를 지내는 시간은 예전부터 해 질 무렵에 모셔 오던 것을 유지하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제를 지내는 장소는 마을회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몇 그루의 당산나무와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가장 중앙에 있는 당산나무는 팽나무로 수령이 300년 정도이며, 그 밖의 나무들은 모두 귀목나무이다. 귀목나무 중 일부는 태풍에 쓰러지거나 고사해 버려서 다시 심어 놓은 것도 있다. 진남마을에는 몇 그루의 당산나무와 제단이 마련되어 있으나, 이를 신체로 삼지는 않는다. 특별한 신체 없이 산신에게 제를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제장이 조성되어 있는 위치 역시 진남마을에서 베틀산의 산자락 끝이 닿아 있는 곳이다. 먼저 베틀산의 산신에게 제를 지내기 시작했는데, 점차 당산나무를 심고 제단을 조성하는 등으로 인근을 정비했다고 한다. 제단에는 ‘진남당산신제단(進南堂山神祭壇)’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진남마을 당산주변 정비공사에 대한 내용으로, “이 사업은 발전소 주변 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한 지원 사업입니다. 2005년 12월 8일 여수시장”이라는 안내문구가 있다.

[절차]

정월 초하룻날 저녁 6시 30분경에 마을회관 앞에 모여 굿을 치기 시작하면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모인다. 매구를 치다가 주민들이 적당히 모이면 먼저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매구를 치는 사람들을 따라간다. 마을을 돌면서 마을 뒤쪽의 공동 우물 앞에서 굿을 치고, 영치산 주령이 내려오는 곳에서 매구를 친 후 마을회관으로 돌아온다.

매구를 치며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유사는 마을회관에서 제를 지내기 위한 준비를 한다. 당산제단으로 제물을 옮기고 제물을 진설한다. 이때 유사는 별도의 정해진 복식이 없으므로 집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온다. 제기는 유사 집의 제기나, 평소에 사용하던 그릇으로 대신한다. 주민들이 마을회관을 지나 당산에 도착하여 당산굿을 친 후에 당산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는 도중에는 매구를 치지 않으며, 제가 끝난 후 다시 매구를 치기 시작한다.

유사의 주도로 제를 지내는데, 유교식 제차를 따른다. 유사가 술을 올린 후 재배를 하는 순서로 초헌, 아헌, 종헌을 하고 축문도 읽는다. 이후 제를 지내는데 참석한 이들 중 원하는 사람이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참석할 수 있다.

축문을 소지하고 당산 주변에 제물로 올렸던 음식을 조금씩 뿌려 둔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들 모두 음복을 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남은 음식은 마을회관에 보관해 두었다가 다음날까지 먹기도 한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산제를 모시고 난 후에는 매구를 치며 마을회관으로 돌아간다.

[축문]

축문은 유사가 직접 쓰기도 하며, 유사가 쓰지 못할 때는 마을의 어른에게 부탁한다. 축문의 내용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으며, 다만 예전부터 읽어 내려오던 내용을 기억하여 쓰는 것이다. 그 내용은 한 해 동안 마을 사람들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기를 기원하며, 그해 농사도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부대행사]

예전에는 진남마을에서도 정월 보름날 줄다리기를 했으나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월달에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액을 물리치는 굿을 치는 것으로 마당밟기를 하기도 했다. 이는 마을에서 특별히 자금을 만들 필요가 있을 때 하는 것으로, 요즘도 경우에 따라 하기도 한다. 마당밟기는 보통 정월 초사흗날이 지나면 시작하여 보름 전까지 한다.

진남마을에서는 현재까지 매년 음력 칠월칠석날 당산제단이 있는 곳에서 칠성을 위한 제물을 차려 놓고 아이들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날을 ‘꼬랑지 자르는 날’ 혹은 ‘꼬랑지 자른다’라고 한다. 꼬랑지를 자른다는 말은 머리꼬리를 자른다는 뜻으로 이제 태어난 지 5년 정도가 지났으니, 위험한 고비를 모두 넘겼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칠성에게 올리는 제물은 다섯 살 난 아이가 있는 집에서 각각 준비해 온 것 중 깨끗한 것만을 골라 올린다. 과일, 나물, 생선과 술 등이다. 메는 올리지 않고 대신 우무채를 준비하는데, 이는 여름에 시원하게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제를 지내면서는 앞으로 아이가 편안하고 무탈하게 자라기를 기원하는 구축을 하기도 한다. 제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은 그날 하루를 쉬면서 매구를 치며 놀기도 한다.

요즘에는 마을에 다섯 살 된 아이가 없을 때가 많아, 객지에 살고 있을지라도 마을에 적을 두고 있는 아이가 있을 경우에는 그 아이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여 칠성을 위하는 제를 지내고 있다.

[참고문헌]
  • 인터뷰(상암동 진남마을 주민 서정무, 남, 71세, 2007.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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