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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267
한자 白也里白也堂山祭
영어의미역 Village-Ritual Ceremony of Baegya Village, Baegya-ri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의례/제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집필자 나경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신앙|마을신앙
의례시기/일시 음력 3월 3일
의례장소 제각
신당/신체 마을수호신|제각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백야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화정면 백야리 백야 당산제는 매년 삼월 삼짇날에 마을 공동으로 모시는 제사이다. 모시는 신격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이를 특별히 부르는 말은 없다. 다만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를 지냄으로써 한 해 동안 마을이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주는 제를 주관하여 지내는 사람으로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관 등이 있다. 예전에는 당산제를 지내는데 제주를 선정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때문에 보통 일 년 전에 다음 해 제주를 맡을 사람을 선정하여 일 년간 조심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한 달 전에 제주를 선정한다. 제주를 선정하는 것은 개발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진다. 백야마을화백마을이 함께 제를 지내기 때문에 각 마을의 개발위원이 모여 회의를 한다.

제를 지내는데 드는 비용에 대해서도 백야마을화백마을이 공동으로 분담한다. 제주를 선정하기 위한 개발위원회의에서 제비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한다. 백야마을의 제비는 마을 운영비로 충당하며, 예전부터 제를 지내기 위해 따로 돈을 걷거나 하지는 않았다.

백야마을에는 어촌계가 활성화되어 있어, 이를 통해 마을 운영비를 마련하고 있다. 매년 제사 비용과 제주에게 주는 수고비가 필요하다. 제물과 제수용품 등을 장만하는 데는 대략 60~70만원이 소요된다. 예전에 리민의 날 행사를 함께 치르고 주민들이 나누어 먹을 음식까지 장만했을 때는 400만원까지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제를 지내기 일주일 전에 제각 주변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둔다. 금줄은 제주가 직접 만든 것으로, 제각 주변에 대나무를 세워 꽂고 금줄을 친다. 그리고 제각과 당산나무 주변에 황토도 함께 뿌려 둔다. 이때 황토는 깨끗하고 좋은 것으로 마을 공동 땅에서 가져온 것을 이용한다.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리면서 제각 주변도 깨끗하게 청소해 둔다.

[연원 및 변천]

백야마을에서 당산제를 언제부터 지내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내력은 알지 못하나, 주민들은 마을이 형성되면서부터 지내기 시작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1960년대에 4~5년간 당산제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제를 지내지 않는 동안 젊은 사람들이 객지에 나가 죽는 등의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자, 마을 어른들이 당산제를 지내지 않은 까닭이라고 하여 다시 제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구정을 지낸 후 좋은 날로 택일을 해서 제를 모셨다. 이후 4~5년간 중단되었던 제를 다시 모시게 되면서부터 리민의 날에 당산제를 같이 모시게 되었다. 당시 리민의 날은 음력 삼월 삼짇날이었다. 그런데 2006년 4월 14일 백야대교 개통식 날에 맞춰 그 해 리민의 날 행사를 함께 치루면서 앞으로 리민의 날도 4월 14일로 바꾸기로 결정을 했다.

그렇게 되자 당산제 날짜에 대하여 주민들이 논의를 한 결과, 당산제는 리민의 날과 별도의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삼월 삼짇날 제를 지내자는 결론을 냈다. 그리하여 2007년의 당산제는 삼월 삼짇날에 지냈다고 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제를 지내는데 모시는 신격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이를 특별히 부르는 말없이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를 지냄으로써 한 해 동안 마을이 편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격에 대한 신체는 없으며, 다만 제각을 마련하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이를 보호하고 있다. 제각 주변의 나무는 당산나무라고 부른다. 제각에는 제상과 제기를 보관하고 있다. 제각은 예전부터 있던 것으로 4~5년간 제를 지내지 않았을 때에도 그대로 있었다.

현재의 제각은 이전의 건물을 대신하여 신축한 것인데, 제각을 신축한 지 40~50여 년이 되었다. 마을 어른들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축하기 전의 제각에는 15cm 정도 높이에 나무나 동으로 만든 말 조각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말 조각에 대한 것으로는, 예전에 백야리에서 말을 키웠는데 말이 잘 크지 못하고 계속 아프거나 죽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산제를 지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한 내력은 ‘개도리 화산 천제’의 연원과 비슷하다. 예전에 있었던 말 조각들은 제각을 신축하고 옮기는 과정에서 모두 분실되었다. 말에 대한 연관이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그에 대한 인식이 사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절차]

삼월 삼짇날 오전 9시 경이 되면 주민들은 제각으로 모인다. 제에는 남자이면서 깨끗한 사람이면 모두 참석할 수 있다. 여자들은 제를 지내데 참석할 수는 없으나, 제가 끝난 후에는 제각이 있는 곳에 모여 굿을 치고 놀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었다. 제주는 9시 전에 제물을 운반하여 두고 제를 지낼 준비를 한다.

제물은 제각에 마련되어 있는 제기에 담아 진설한다. 제물로 올리는 것은 은행, 건초, 형염, 부추, 무, 호두, 황율, 도라지, 미나리, 명태, 문어, 조기, 농어, 홍대, 오징어, 상어, 민어, 돔, 기장쌀, 백미 등이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 중에서 제관과 축관을 선정하여 제를 지낸다. 제관과 축관은 제주만큼은 아니지만 부정하지 않은 깨끗한 사람이 맡아서 한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으로 홀기에 따라 진행된다. 백야마을에 「백야도 제례홀기」가 보관되어 있어, 매년 이에 따라 한다. 제의 절차가 끝난 후 백지에 제물로 올렸던 것들을 조금씩 싸서 당산나무 밑에 묻는다. 마지막으로 음복을 하면 제의 절차가 모두 끝난다. 음복 후 남은 음식은 제주가 알아서 처리한다. 마을 사람 중 깨끗한 사람을 골라 나누어 주기도 한다. 제물로 올렸던 음식을 함부로 먹으면 좋지 않다고 하여 이를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신경을 쓰는 것이다.

예전에는 제각에서의 제가 끝난 후 헌석을 하기도 했다. 백야마을에서 헌석은 잡귀신을 위해 별도로 상을 차려 두고 무당을 불러 푸념을 하는 것이었다. 헌석을 하기 위한 음식은 각 반에서 별도로 장만해 온 것으로 한다. 예전에는 매년 무당을 불러 헌석을 했으나, 마을에 거주하던 무당이 죽고 당산제 지내는 것을 간소화시키면서 헌석 또한 중단되었다. 지금은 제가 끝난 후 잡귀 잡신을 위한 것으로 별도의 밥을 차려 놓는다. 이때 ‘잡귀 잡신 위령문’을 읽는다.

[축문]

축문은 백야마을에서 예전부터 보관해 오던 것이 있어, 그 해의 일진만 바꾸어서 사용한다. 축문의 내용은 백야마을에서 보관하고 있다. 예전에는 한문으로 써서 읽던 것을 지금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만 써서 읽고 있다. 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세차 년 삼월 삭초(朔初) 삼일 백야도민 일동은 백야도 수호신지영전(守護神之靈前)에 삼가 고하나이다. 영령(英靈)께서 일주년 제일을 다시 당하오니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정성껏 마련하여 드리오니 강림(降臨)하시와 흠향(歆饗)하시옵고 천상일월성신(天上日月星辰) 천하토지지신(天下土地之神) 사해용왕님 화합하시와 도민(島民)과 국내외에 경재거주(敬在居住)하는 출향민의 매사가 소원성취 되도록 하여주시고 오직 애국애족 충성심을 기반으로 상부상조의 정신을 조장(助長)케 하며 경로효친사상의 실천과 효자열효부가 속출될 청장년층에서 국가적으로 각 부문에 탁월한 인재가 계속 배출되게 하여주시고 도내(島內) 농수임산물이 년년세세 풍작과 가축금수 등 육성번식에도 도움을 주시고 특히 풍수병충해 등 천재지변을 사전 방지하여 주시옵기 합장 배례 축원합니다.

[부대행사]

백야마을에서는 양력으로 연말에 마을총회를 하면서 일 년간 마을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과 결산 보고가 함께 이루어진다. 당산제를 지내는데 든 비용에 대한 별도의 결산은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제를 지낸 후 별도로 날을 잡아 백야마을화백마을이 함께 개발위원회의를 하면서 제를 지내는데 든 비용에 대한 결산을 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다니며 굿을 쳐 주면서 집안의 액을 몰아내주는 마당밟이를 하기도 했다. 이는 제일을 정월달 중에 택일하여 정했을 때로, 당산제를 지낸 후 그날 오후부터 시작해 보통 정월 보름까지 마당밟이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보름날에는 인근의 학교 운동장에 모여 놀면서 마무리를 했다.

[현황]

2022년 8월 기준, 현재 당제는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문헌]
  • 인터뷰(백야리 백야마을 주민 고선철, 남, 69세, 2007.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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