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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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사리와 송오리 등을 병합하면서 가사의 ‘가’자와 송오의 ‘송’자를 따서 ‘가송’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예안군 의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사리·송오리·고리·광석동·운천동과 봉화군 하남면 여을며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사리와 송오리의 이름을 따서 가송동(리)이라 하고 안동군 도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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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고산정은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안동 수성장(守城將)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정자이다. 금난수는 이황(李滉)의 제자로서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는 데 힘썼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화현감 등을 지냈다. 35세에 당시 선성현(宣城縣, 당시 예안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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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입구에 위치한 고산정은 퇴계 선생의 제자로 유명한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 선생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35세인 1564년(명종 19) 이미 예안 부포에다 ‘성재(惺齋)’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이어서 당시 선성(宣城, 예안현의 별칭)의 명승지 가운데 한 곳인 이곳 가송협에 고산정을 짓고 ‘일동정사(日東精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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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수(景受), 호는 인재(忍齋). 아버지는 권엽(權燁),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사랑(將仕郞) 장양필(張良弼)의 딸이며, 진성이씨(眞城李氏), 능성구씨(綾城具氏), 흥해배씨(興海裵氏)를 처로 두었다. 아들로 왕자사부(王子師傅) 권우(權宇), 영릉참봉(英陵參奉) 권굉(權宏), 생원 권성(權宬), 장릉참봉(章陵參奉)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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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강(彦康), 호는 망월헌(望月軒).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조대춘(趙大春)의 딸이다. 부인은 두 명으로, 몽재(蒙齋) 이안도(李安道)의 딸과 혼인하여 2녀를 낳았으며 이후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의 딸과 혼인하여 2남 3녀를 낳았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만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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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각(彦覺), 호는 월담(月潭)이다.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 조대춘(趙大春)의 딸이다. 동생이 만수재(晩修齋) 금업(琴𢢜), 망월헌(望月軒) 금개(琴愷)이다. 금경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월천(月川) 조목(趙穆)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89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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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문원(聞遠), 호는 성재(惺齋)·고산주인(孤山主人).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금헌(琴憲), 어머니는 영양남씨(英陽南氏)로 교수 남식(南軾)의 딸, 처는 횡성조씨(橫城趙氏)로 참판 조대춘(趙大春)의 딸이자 조목(趙穆)의 누이동생이다. 금난수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로부터 『소학(小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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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계흠(季欽), 호는 소무헌(素無軒). 금난수(琴蘭秀)의 8세손으로 증조부는 금형(琴瀅), 할아버지는 금주석(琴疇錫), 아버지는 금여옥(琴汝玉),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백부 금여직(琴汝稷)에게 입양되었다. 금서술은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서 태어났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제자인 이야순(李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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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언신(彦愼), 호는 만수재(晩修齋). 아버지는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어머니는 횡성조씨(橫城趙氏) 조대춘(趙大春)의 딸, 처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안각(安恪)의 딸이다. 중년에 율인(律人)의 동명(同名)을 피해 ‘금변(琴忭)’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나중에 다시 처음의 이름으로 고쳤다. 형은 월담(月潭) 금경(琴憬),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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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사달(士達), 호는 노봉(蘆峯). 고조할아버지는 유연당 김대현(金大賢)이고, 증조할아버지는 학문과 문장으로 사림의 중망을 받았던 학사 김응조(金應祖)이며, 할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시행(金時行)이다. 아버지는 부사용(副司勇)을 지낸 김휘봉(金輝鳳, 1643~1683)이고, 어머니는 봉화금씨로 성성재 금난수(琴蘭秀)의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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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산 자락을 휘감아 돌아가는 맑고 깨끗한 강물과 여기저기 우뚝 솟은 바위들 그리고 병풍을 연상케 하는 절벽의 웅장함 등 이 모든 것은 가송리의 자랑이기도 하지만 때론 삶의 질곡이 되기도 하는 천옥의 생활조건이다. 청량산 인근의 경치는 거듭 얘기하지 않아도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가송의 풍광은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강렬하게 다가오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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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유생.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의중(義仲), 호는 비지(賁趾). 남부량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남신신(南藎臣)이며 4남 2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남치리(南致利, 1543~1580)는 김언기(金彦璣)에게서 처음 배웠으며, 21세에 금난수(琴蘭秀)와 함께 이황(李滉)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24세 되던 해에 가옥이 침수되어 고림촌(高林村)에 옮겨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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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법정리. 자연마을인 단사(丹沙)와 면천(綿川)에서 ‘단’자와 ‘천’자를 따 단천(丹川)이 되었다. 단사는 마을 뒤에 붉은 점토질의 산맥이 뻗어 있고 강가의 자갈이 연분홍빛인 데서 유래한 이름이고, 면천은 기후가 항상 온화하여 목화 재배지로 적합한 곳이라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 말 예안면과 의동면에 속하였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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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간행된 안동 출신의 학자 남치리의 문집. 남치리(南致利, 1543~1580)는 16세에 처음 김언기(金彦璣, 1520~1588)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다가 21세에 금난수(琴蘭秀, 1530~1604)와 함께 이황(李滉, 1501~1570)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이황이 사망한 이후, 스승의 유저(遺著)인 『이학통록(理學通錄)』과 『계몽전의(啓蒙傳疑)』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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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금난수의 시문집.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는 예안 출신의 학자로 손위 처남인 월천(月川) 조목(趙穆)의 권유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었다. 이황과는 인척 관계에 있다. 학행을 겸한 청빈한 선비이자 자연을 완상하는 감성을 아우른 인물로 임진왜란 때에는 수성장(守城將)으로서 향병을 모으고 군량을 조달하는 등 국난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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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부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성성재 종택은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안동 수성장(守城將)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종택이다. 금난수는 퇴계 이황(李滉)의 제자로서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는 데 힘썼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화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정침과 아래채, 사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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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태종 13)부터 1895년까지 안동 지역의 예안면·도산면·녹전면에 설치되었던 조선시대 행정기관. 예안현(지금의 예안면)은 고구려의 매곡현(買谷縣)이었다가 신라 땅이 되었으며, 경덕왕 때 선곡현(善谷縣)으로 고쳐 내령군(奈靈郡, 지금의 영주)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성주 이능선(李能宣)이 고려에 귀순하자 의리를 가상히 여긴 태조의 명으로 예안군으로 승격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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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 증조부는 이흠(李欽), 할아버지는 습독(習讀) 이현우(李賢佑), 아버지는 이충량(李忠樑),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로 박승장(朴承張)의 딸이다. 이덕홍은 영주(榮州) 남촌(南村) 구룡동(九龍洞, 현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 호문리) 외할아버지 박승장의 집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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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요원(遙原)·아몽(阿蒙), 호는 몽재(蒙齋). 할아버지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아버지는 군기시첨정을 지낸 이준(李寯), 어머니는 봉화금씨(奉化琴氏)로 훈도 금재(琴梓)의 딸이다. 아내는 안동권씨이다. 동생은 이영도(李詠道)이다. 이안도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아내인 권씨 부인이 시동생 이영도의 아들 이억(李嶷)을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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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송리는 안동시 도산면의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우뚝 솟은 산성(입칠봉, 해발고도 845.2m) 줄기의 산간지대와 태자리의 투구봉(해발고도 608m) 줄기 산간지대에 산재하는 자연마을들로 이루어져 있다. 마을의 서북쪽에서 동남으로 낙동강이 흐르면서 서북으로 구비치며 마을 가운데를 남류하며 흘러간다. 쏘두들 ·가사리·올미재 등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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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년(명종 11) 퇴계 이황이 예안의 향촌 교화를 위해 작성하였던 자치 규약. 퇴계향약은 향촌 교화의 절실한 필요에서 예안의 재지 사족들에 의해 추진되고 마련되었다. 따라서 퇴계(退溪)뿐만 아니라 일찍이 농암(聾巖) 이현보(李賢寶)도 향약을 실시하고자 하였다. 농암은 예안의 풍속이 아름답지 못함은 민의 유망(流亡)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씨향약을 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