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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량 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100696
한자 閔東亮墓
영어의미역 Tomb of Min Dongryang
이칭/별칭 군삼(君三),송암(松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건립시기/일시 1732년연표보기
관련인물 민동량(閔東亮)
높이 157㎝
소재지 주소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소유자 여흥민씨 문중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민동량의 묘.

[개설]

민동량의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군삼(君三), 호는 송암(松巖)이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는 “증병조판서(贈兵曹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으로, 첨정(僉正) 민휘정(閔徽鄭)의 아들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누가 아버지를 부르면 문득 눈물을 흘렸다. 10살에 어머니가 아프자 향을 피워 하늘에 기도를 드리고, 또 병이 심해지자 손가락을 잘라 먹여 다시 소생시켰다. 약을 지어 집으로 돌아올 때 귀신이 불을 밝혀 인도하였다. 인삼을 약으로 쓸 때 사람들이 값을 받지 않았다. 끝내 상을 당하자 죽을 먹었을 뿐이다. 사방에서 글을 올려 복호(復戶)되고 좌랑에 증직되었다. 당곡(唐谷)에 비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효자 정려의 현판을 통해, 1806년(순조 6)에 효행으로 정려가 내려지고 복호되었다. 저서에 『한송집(寒松集)』이 있다.

[형태]

전체 높이 157㎝이고, 화강암의 가첨석은 1804년에 새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묘소 앞쪽에 유허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 ‘증통훈대부호조좌랑여흥민공동량유허비(贈通訓大夫戶曹佐郞驪興閔公東亮遺墟碑)’라 쓰여 있다.

[현황]

묘소 앞쪽에 유허비를 제외한 별다른 시설을 갖추고 있지 않다. 금왕읍 신평리에는 ‘효자증통훈대부호조좌랑민동량지문상지육년병인삼월일명정(孝子贈通訓大夫戶曹佐郞閔東亮之門上之六年丙寅三月日命旌)’이라 편액된 정면 2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인 정려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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