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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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嶷 |
영어음역 | Gim Eok |
이칭/별칭 | 여망(汝望),남곡(南谷)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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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성별 | 남 |
생년 | 1572년 |
몰년 | 1649년 |
본관 | 경주 |
대표관직 | 익산군수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경주. 자는 여망(汝望), 호는 남곡(南谷). 상촌 김자수(金自粹)의 후손으로, 증조부는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아버지는 별제 김중경(金重慶)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보성군 이만년(李萬年)의 딸이다. 부인은 창녕성씨로 부제학 성진선(成晋善)의 딸이다. 아들로 김진곤(金振坤)·김약곤(金躍坤)·김우곤(金遇坤)이 있다.
[활동사항]
김의는 율곡(栗谷) 이이와 우계(牛溪) 성혼 두 문하에서 배워, 1603년(선조 36) 생원시에 2등으로 합격하고는 성균관에 들어갔다. 광해군 때 이이와 성혼이 모함받자 유생들을 인솔하고 항의 상소를 올렸다. 정인홍이 이언적과 이황을 욕하자 유적(儒籍)에서 정인홍의 이름을 삭제하였고, 이후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증조부가 살던 곳에 집을 짓고 자취를 숨겼다.
인조반정 후 인재를 등용할 때 6품직에 등용되어 광흥주부에서 바로 음죽현감에 제수되고, 1626년(인조 4) 창평현령, 1631년 곡성현령을 거쳐 1637년 공조정랑에 제수되었다가 익산군수를 마치고 1642년에 돌아와 향년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천미산 내에 있다. 대제학 정실(鄭實)이 행장을 짓고, 우암 송시열이 유허비를 썼다.
[상훈과 추모]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지천서원(知川書院)에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