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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028
한자 宗敎
영어의미역 Religion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하창환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개설]

종교는 초인간적 신이나 절대자를 숭배하고 신앙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와 불안, 삶과 죽음의 문제 등을 해결하며 행복을 얻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하나이며 초기에는 토테미즘(Totemism)·애니미즘(Animism)·샤머니즘(Shamanism) 등 원시 신앙의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것이 불교·유교·기독교·이슬람교 등과 같은 보편적인 종교였다.

우리나라에도 부족국가 시대에는 주술적 무교(巫敎)가 있었고 고대와 중세시대에는 불교와 유교가 사회를 이끌었다. 그리고 근·현대에 들어서는 천주교와 개신교인 기독교가 비약적으로 보급되었고 민족 종교의 방향으로 나아간 대종교·원불교 등 신종교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는 고령군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불교]

고령 지역에는 일찍이 가야 때부터 불교가 전래되었으며 이는 대가야의 유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불교의 전래를 짐작하게 하는 대표적인 증거로는 지산동 44호분 주석실에서 출토된 금동청동합 안의 향나무 목편과 고아동 벽화고분의 연화문을 들 수 있다. 또한 대가야의 태자 월광이 거덕사(擧德寺)와 월광사(月光寺)를 결연하고 창건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 역시 당시 고령 지역에 불교가 전래되었음을 알리는 또 다른 증거이다.

월광사의 석탑 2기, 청량사의 석조석가불 좌상과 삼층석탑 및 석등, 고령 지산동 당간지주, 대가야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석불상 4기와 석탑 2기 등의 유물들은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통일신라시대에도 고령 지역에 여러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의 사찰로는 반룡사(盤龍寺)가 있으며 그 밖에 고사찰지로 물산사지, 기운암지, 부인사지, 광명사지, 월산사지 등이 있다. 이를 통해 고령 지역에는 고려시대까지 불교가 성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말미암아 고령 지역의 불교는 기존의 사찰인 반룡사 정도가 유지되었을 뿐 과거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유교]

6세기 초 가야 제국의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각 지역의 음악을 12곡의 가야금 곡조로 편곡한 대가야가실왕에게서 유가의 예악 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가문의 영향으로 당시의 주류 사상이었던 불교를 물리치고 유교에 뜻을 두어 신라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임나가야인 강수에게서 고령 지역 유교의 보급상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고령의 호족 출신으로 명경과에 급제한 신숙으로부터 고령 지역 유교 문화의 수준을 헤아릴 수 있다.

고대와 중세의 유교적 토대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큰 결실을 맺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이르러 이전의 감무 통치가 사류 출신인 현감 통치로 바뀌고 유학 교관이 파견되면서 고령 지역의 유교도 큰 진전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나라 유교의 최전성기였던 조선 중기에 고령은 지리적 여건으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퇴계학과 경상남도 서부 지역의 남명학을 모두 수용하고, 인근의 한려학파의 학맥까지 이으면서 회통성, 개방성, 실천성이라는 고령 특유의 유교 전통을 세웠으며 배신, 오운, 김면 등 많은 유학자들을 배출하였다. 또한 이러한 고령 유학의 전통은 근·현대에도 이어져 이진상, 곽종석, 이인재, 이종기 등과 같은 유학자를 배출하여 유교의 혁신에 크게 기여하였다.

[개신교]

고령 지역의 개신교는 1902년 쌍림면안림교회가 설립되면서 뿌리내리기 시작하였다. 이어 1902년 원송교회, 1903년 개포교회, 1905년 사부교회, 1906년 헌문교회·객기교회·월산교회, 1907년 다산교회·산당교회 등이 차례로 설립되면서 교세를 크게 확장해 나갔다.

또한 선교와 더불어 교육 사업도 활발하게 펼쳐 종래의 서당식 전통교육 대신 근대식 신교육을 보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금주, 금연, 미신타파, 남녀평등, 일부일처제, 생활의 간소화, 한글 보급 등과 같은 신문화 운동도 전개하여 사회 풍조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현재 고령 지역에는 40개에 가까운 교회와 3,000여 명의 신도가 활동하고 있다.

[천주교]

고령 지역의 천주교 전래는 1930년대에 인근의 대구나 칠곡의 신자들이 이주해 오면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어 1940년에 비록 개인 소유의 가정집이기는 했으나 처음으로 공소가 설립되었다. 1958년에는 교회 소유의 공소가 마련되었으며 1964년에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의 26번째 본당인 고령성당이 건립되었다. 당시 고령성당의 신도는 약 700명이었고 관할 공소는 13개에 이르렀다. 그러나 현재는 덕곡공소, 박곡공소, 백산공소, 운수공소 등 4개의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한편 2000년대에 접어들어 대구광역시에 인접한 다산면에 인구가 많이 유입되면서 다산성당이 새롭게 건립되었다. 따라서 현재 고령 지역에는 2개의 성당[고령성당다산성당]이 있으며 2,000여 명의 신도가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다산성당의 건립에도 불구 전체적으로 보면 천주교의 교세가 크게 확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농촌 지역인 관계로 고령 지역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기타 종교]

그 외에도 고령 지역에서는 1958년부터 통일교가 선교 활동을 시작한데 이어 1970년대에는 노인들을 중심으로 SGI불교가 전파되고, 1980년대에는 여호와의 증인과 한얼교가 들어왔으며, 2000년대에는 원불교가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강한 유교적 성향으로 인해 교세를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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