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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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桃岩里古墳-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유영춘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 도암리 고분떼 군산 대학교 박물관, 전북 대학교 박물관 공동 발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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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도암리 고분떼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 일원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도암리에 있는 고분떼.
[개설]
도암리 고분떼는 1에서 4까지 총 4개의 고분떼로 나뉘는데, 그 중에서 1997년 도암리 고분떼 1에 대해서만 구제 발굴이 실시되었고 그 밖의 고분떼에 대해서는 지표 조사를 통해 대략적인 현황만 파악할 수 있었다.
[위치]
도암리 고분떼 1은 성산면 소재지를 지나 군장 대학교가 있는 오성산의 남쪽 구릉에, 도암리 고분떼 2는 도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도암리 고분떼 3은 창암 마을 서쪽 민가 위쪽에 자리한 축사를 중심으로, 도암리 고분떼 4는 도암리 고분떼 3에서 남서쪽으로 300m 가량 떨어진 구릉의 사면부에 자리하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4개의 고분떼 중에서 현재까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도암리 고분떼 1이다. 도암리 고분떼 1에 대한 발굴 조사는 북군산 나들목 개설을 위한 공사 실시 이전에 이곳에 자리한 유적의 부존 여부를 파악하고, 파악된 유적을 조사하기 위해 실시되었다. 1997년 5월 14일부터 1997년 6월 10일까지 군산 대학교와 전북 대학교가 합동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조사 결과 도암리 고분떼 1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에 해당되는 송국리형 집자리 1기, 구상 유구 1기, 고분 26기가 조사되었다.
[형태]
도암리 고분떼 1에서는 횡혈식 석실분이 11기, 횡구식 석곽묘 13기가 조사되었으며, 이외에 옹관묘, 조선 시대 민묘 등도 함께 확인되었다. 횡혈식 석실분과 횡구식 석곽묘는 경사면과 평행하게 장축 방향을 두고 있으며, 그 밖의 고분떼는 현재 수풀이 우거져 주변에서 유물만 수습될 뿐 정확한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
[출토 유물]
도암리 고분떼 1에서 출토된 유물은 수가 매우 적은데, 특히 백제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관못이 전부다.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이유는 도굴의 이유도 있지만, 도굴 흔적이 보이지 않는 15호분에서도 역시 유물이 출토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박장(薄葬)이 이루어지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통일 신라 고분인 20호분의 북벽 바닥면에서는 유개합 2조와 편구호형병 1점이 출토되었는데, 특히 편구호형병은 진안 평지리 출토품과 유사하다. 고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는 24호의 동쪽 장벽에서는 청자 광구병 1점과 접시 2점이, 토광묘에서는 머리 부분이 사각형을 이루는 관못, 병, 접시, 광구호,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도암리 고분떼 2에서는 민묘를 중심으로 고려 시대 토기편과 백자편이 산재되어 있었으며, 도암리 고분떼 3의 주변에서는 삼족 토기편과 승석문이 시문된 회청색 경질대호편이, 도암리 고분떼 4는 수풀이 우거져 지표상에서 유물을 확인할 수 없다.
[현황]
발굴 조사가 실시된 도암리 고분떼 1의 발굴 조사 구간은 현재 공사가 완료되어 서해안 고속 도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조사된 백제 횡구식 석곽분 1기와 횡혈식 석실분 1기를 관람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전주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이전 복원하였다. 도암리 고분떼 2는 새로 조성된 민묘 구역으로 인해 고분이 파괴되어, 조성할 때 부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편이 산재해 있다. 그 밖의 도암리 고분떼 3·4는 현재 수풀이 우거져 고분의 현황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도암리 고분떼 1에서는 백제 고분이 다량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는 백제인들의 매장 문화뿐만 아니라 피장된 이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향후 도암리 고분떼에 대한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의 고대 문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