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741 |
---|---|
한자 | 祠宇 |
이칭/별칭 | 향현사(鄕賢祠),향사(鄕祠),이사(里祠),영당(影堂),세덕사(世德祠),별묘(別廟),유애사(遺愛祠),생사당(生祠堂),사묘(祠廟)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유재리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에 분포되어 있는 조상(祖上) 및 선현(先賢)의 신주(神主)나 영정(影幀)을 모셔두고 제향(祭享)하는 곳.
[개설]
사우(祠宇)는 보본 숭현(報本崇賢)사상을 바탕으로 충절과 공덕이 있는 선현을 봉사(奉祀)하고 조상 숭배(祖上崇拜) 사상을 바탕으로 특정 문중(門中)의 인물을 제향하는 사당이다. 충의 선현을 위한 사우는 향촌 사회의 풍속 교화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세워졌고, 문중의 사우는 사적(私的)으로 조상을 기념하고 나아가 향촌 사회에서 문중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세워졌다.
[변천]
사우(祠宇)의 시원적 형태는 삼국 시대부터 보이며, 고려 후기 주자 성리학이 도입·보급되고 조선 시대 유교 문화가 향촌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그 건립이 점차 확산되었다. 조선 시대에 사우 건설이 확산된 까닭은 유교 사상에서 충효 사상에 따른 선현 및 조상 숭배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승천하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때문에 육신인 백(魄)을 위해서 무덤을 쓰고, 영혼인 혼을 위해 위패(位牌)를 받들어 제사하는 사당(祠堂)을 중시하였다. 사우 조성은 조선 후기 유교 문화가 심화될수록 더욱 확산되었다. 특히 17~18세기 이후로 특정 가문 중심의 사적인 제향 재실(齋室)의 건립이 빈번히 이루어졌다.
사우에서는 특정한 1인을 모시거나 복수의 특정 인물들을 모셔 제향하였으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아예 복수의 문중 인물 위패를 봉안하기도 하였다. 군산 지역의 사우는 백제 때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치동묘가 가장 오래되었지만, 오늘날의 형태는 1926년 이후에 마련되었다. 그 외에 군산 지역 사우는 이르게는 17세기 후반, 늦게는 근대 개항기나 일제 강점기에 조성되었다.
[현황]
군산 지역의 사우는 크게 충절 선현의 사우와 국외 인물과 관련된 사우, 문중 관련 재실로 구분된다.
충절 선현 사우로는 최호 장군 유지(崔湖將軍遺址)에 있는 최호(崔湖) 장군의 사당 충의사(忠義祠)[전라북도 기념물 제32호, 1906], 김유신(金庾信) 장군을 모신 천방산의 설림사(雪林祠)[1933년 김치옥 주관 하에 창건]와 최치원(崔致遠)·조태채(趙泰采)·이건명(李健命)·최익현(崔益鉉)·임병찬(林炳瓚) 5인을 배향한 현충단(賢忠壇)이 있다.
현충단의 전신은 지금의 옥구읍 이곡리에 세워진 삼현사(三賢祠)였다. 삼현사는 1764년(영조 40) 최치원·이건명·조태채를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폐쇄되었는데, 1900년 문종각 등에 의해 옥구읍 상평리로 옮겨 재건되었다.
재건될 때 호남 유림의 지도자이자 의병장이었던 최익현이 추가되어 사현단(四賢壇)이라 불렀다가 여기에 상평리에서 태어난 임병찬을 추가 배향하여 오현단(五賢壇)이라 부르기도 한다.
국외 인물과 관련된 사우로는 중국 제나라 사람 전횡(田橫)을 제향하는 치동묘(淄東廟)[1926년 재건,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 제14호]가 있다. 전횡은 항우가 한고조에 패망하자 배를 타고 망명길에 올랐다가 3개월 만에 군산 어청도에 이르러 머물렀는데, 한고조의 감언이설에 속아 중국으로 돌아가다가 자결하였다. 이후 백제 때 어청도 사람들이 치동묘라는 사당을 짓고 제사하였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미신시하며 제사가 중지되었는데, 전횡을 조상으로 여기는 군산의 담양 전씨들이 1926년 둔율리에 치동묘를 세워 복구하였다.
그 외에 문중(門中)관련 사우·재실은 진주 강씨(晋州姜氏) 종중 제각(宗中祭閣)의 영모재[1681년 건립,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 제7호], 제주 고씨(濟州高氏)의 영모재(永募齋), 담양 전씨(潭陽田氏)의 긍구재(肯構齋), 평강 채씨(平康蔡氏) 한림공(翰林公) 목사 공파 제각(牧使公派祭閣)[1904년 건립,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 제8호] 등이 있다.
치동묘는 최초 건립 시기를 따지면 군산 지역에서 가장 최초로 지어진 사우이며, 담양 전씨에 의해 재건이 주도된 것으로 볼 때, 문중 사우적 특징도 일면 지니고 있다.
천방산의 설림사 역시 충절 선현의 사우임과 동시에 김해 김씨 문중을 중심으로 제향이 행해지기 때문에 일면 문중 사우적인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진주 강씨 종중 제각의 영모재는 대청 대들보 상량문에 1681년(숙종 7)이라 씌어 있어, 현재 군산시 지정 향토 문화유산 종중 제각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