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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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德中妻全州李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출생 시기/일시 | 1823년 - 문덕중 처 전주이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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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46년 - 문덕중 처 전주이씨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87년 - 문덕중 처 전주이씨 정려 건립 |
묘소|단소 | 문덕중 처 전주이씨 정려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 |
성격 | 열녀 |
성별 | 여 |
본관 | 전주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 효부.
[개설]
문덕중 처 전주 이씨는 임피에 세거한 전주이씨 익안 대군파 출신으로, 회현에 자리잡은 남평 문씨 시중공파 출신 문덕중(文德中)에게 시집을 와서 시부모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하였고, 마침내 정부에서 그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를 세웠다.
[가계]
문덕중 처 전주 이씨는 익안 대군(益安大君)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이재철(李在哲)이다. 남편인 문덕중의 본관은 남평(南平)이고, 자(字)는 명보(明甫)이다. 문덕중 처 전주이씨는 1823년(순조 23)에 태어났고, 1846년(헌종 12)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문덕중 처 전주 이씨는 어렸을 때부터 정숙하고 본심이 온화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전주이씨의 남편이 젊은 나이에 삼년 동안 병으로 누워있게 되자, 하늘에 남편 대신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였지만, 남편은 부모 봉양을 잘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떴다. 남편의 상을 마친 날 밤에 전주이씨는 후원에 가서 목을 매 자결하려 하였지만 다른 사람이 발견하여 간신히 목숨을 구하였다. 이후 문덕중 처 전주 이씨는 남편을 대신하여 시부모에게 지극한 효도를 다하였으며, 마침내 그 효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자 1887년(고종 24)에 정부에서 정려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당시에 세워진 정려가 지금도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 표산 마을에 남아 있다. 전주이씨의 며느리 장흥 오씨[문명로의 처]의 효자비와 손자 문몽상과 손부(孫婦) 남원 양씨의 효자비도 건립되었다.
[묘소]
문덕중 처 전주 이씨의 묘는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 뒷 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