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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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田炳淳妻南平文氏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두헌 |
출생 시기/일시 | 1818년 - 전병순 처 남평문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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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시기/일시 | 1944년 - 전병순 처 남평문씨 효열비 건립 |
거주|이주지 | 전병순 처 남평문씨 거주지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
묘소|단소 | 전병순 처 남평문씨 묘소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용화산 |
사당|배향지 | 전병순 처 남평문씨 효열비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 |
성격 | 효부 |
성별 | 여 |
본관 | 남평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군산 지역[옛 옥구현] 출신의 효부.
[개설]
남평문씨(南平文氏)는 옥구에 세거한 남평문씨 시중공파 출신으로, 전병순(田炳淳)에게 시집을 갔다. 남편이 깊은 병에 걸리자 병 간호를 극진히 하였으며, 남편이 사망한 이후 늙은 시아버지를 더욱 공경하였다. 이에 유림들이 효열비를 세웠는데, 그 효열비가 지금도 남아 있다.
[가계]
남평문씨는 문익점의 후손이고, 아버지는 문창용(文昌龍)이다. 옥구에 세거한 전병순에게 시집을 갔다.
[활동 사항]
전병순 처 남평 문씨는 1818년(순조 18)에 태어났고, 사망 연도는 미상이다. 남편 전병순은 1820년(순조 20)에 태어났고, 1842년(헌종 8)에 사망하였다. 남편이 깊은 병에 걸리자 대변을 맛보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남편의 입에 넣어 생명을 삼일 간 연장시켰으며, 늙은 시아버지와 어린 자식 때문에 차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였다. 남편이 있을 때보다 늙은 시아버지를 더욱 공경하였고 제사를 받들고 손님들을 대접하는데 예의에 벗어나지 않았다. 남평문씨의 행실로 인해 감화를 받은 사람이 많아지자, 유림들이 전병순 처 남평문씨의 효행을 기록한 효열비를 1944년에 군산시 회현면 원우리 구율 마을에 건립하였다.
[묘소]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용화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