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348
한자 黃石山城戰鬪
영어공식명칭 Battle of Hwangseog San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정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597년 8월 16일연표보기 - 황석산성 전투 발생
종결 시기/일시 1597년 8월 18일연표보기 - 황석산성 전투 종결
발단 시기/일시 1597년연표보기 - 정유재란 발생
발생|시작 장소 황석산성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지도보기
종결 장소 황석산성 -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 지도보기
성격 전투

[정의]

정유재란 때인 1597년 8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황석산성에서 왜적의 공격으로 발생한 전투.

[개설]

함양 황석산성은 석성으로 둘레는 2,924척[877.2m]이었다. 성 안에는 한 줄기 물줄기와 군창(軍倉)이 있었는데, 18세기경에 군창은 없어졌다. 1597년의 정유재란 때 왜군이 음력 8월 16일부터 황석산성을 공격하면서 8월 18일까지 3일간 지속된 공방전이다.

[역사적 배경]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3년 10월부터 비변사 등에서 왜적의 침입에 대비하여 함양 황석산성을 수축할 것을 수차례 건의했으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면서 왜적들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던 함양 황석산성을 공격하게 되었다.

[경과]

1597년 8월 16일, 조선을 재침한 왜적들 중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이끄는 27,000명이 함양 황석산성을 공격하였다. 안의현감 존재(存齋) 곽준(郭䞭)[1551~1597]과 전임 함양군수 조종도(趙宗道)[1537~1597]는 약간의 관군과 인근의 백성들로 성을 지킬 것을 결의하고 왜적에 대항하였다. 곽준은 직접 돌을 지고 와 성과 방어도구를 손질하였다. 곽준은 죽음을 각오로 함양·안음·거창 지역의 백성과 함께 성을 지켰다. 조종도는 이미 벼슬에서 물러난 상태이지만 집안 식구들을 모두 데리고 산성으로 들어와서, 끝까지 산성을 지키고 항전하였다.

[결과]

왜적의 함양 황석산성 공격 때, 김해부사 백사림(白士霖)이 출전대장이 되었다. 백사림은 산성을 사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은밀히 다른 마음을 품었는데, 성문을 열어 집안 식구들을 내보내고 자신도 뒤를 따라 피신해 버렸다. 지휘관이 도피하고, 왜적들이 성내로 진입해 오자 산성 내의 관민들이 동요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곽준조종도 및 관민 남녀는 조총으로 공격하는 왜적에 맞서 활과 창칼 혹은 투석전으로 필사적으로 대항했지만 결국 함양 황석산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황석산성 전투는 전란의 위급한 상황, 산성 수축의 미비, 왜적의 압도적인 우세 등의 불리한 악조건 속에서도 죽음으로써 나라를 보호하고자 했던 함양 지역민의 충의와 희생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황석산성 전투는 비록 패배로 끝났지만 정유재란 때 영남과 호남의 교통 요충지에서 있었던 대표적 공방전이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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