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200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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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寺刹 |
영어공식명칭 | Buddhist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양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조선/조선 전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상현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487년 - 각연대사, 용추사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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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656년 - 등구사 창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656년 - 행우, 금대암 창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656년 - 행우조사, 안국사 창건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520년 - 벽송 지엄, 벽송사 중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12년 - 벽송사 주지 김동운, 보림사 창건 |
군자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 | |
극락사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377번지 | |
덕봉사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산 13 | |
등국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 | |
승안사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 | |
엄천사 -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258번지 | |
금대암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528[가흥리 17-3] | |
벽송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추성리 259] | |
보림사 -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상림3길 32[운림리 289] | |
상연대 -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백운산길 3-291[백운리 78-1] | |
안국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337[가흥리 1131] | |
영각사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 덕유월성로 567[상남리 1047] | |
영원사 -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마천삼정로 544-659[삼정리 953] | |
용추사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용추계곡로 623[상원리 963-2] |
[정의]
경상남도 함양 지역에서 불교 신행의 중심 공간인 사찰과 암자.
[개설]
불교는 삼국시대에 국교(國敎)로 공인되었고 남북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들어 최고조의 문화 수준을 보인 국민 종교였다. 조선시대는 숭유억불의 분위기로 인해 다소 침체되었다고는 하나, 백성들의 신심(信心)을 더욱 두텁게 하면서 널리 신봉되었다. 함양의 사찰들은 단순히 불교 신행의 중심 공간에 머물지 않고 지역문화 창달에 앞장선 불교문화의 현장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문헌상 확인되는 사찰]
불교문화가 번성하던 시기 각종 문헌을 통해 함양 지역에서 운영된 사찰들을 살펴보면 현불사(見佛寺)·군자사(君子寺)·승안사(昇安寺)·선열암(先涅菴)·고열암(古涅菴)·신열암(新涅菴)·화장사(花長寺)·엄천사(嚴川寺)·마적사(馬迹寺)·금대암(金臺菴)·보월암(寶月菴)·안국사(安國寺)·무주암(無住菴)·덕봉사(德峯寺)·등구사(等龜寺)·미타사(彌陀寺)·극락사(極樂寺) 등의 사명이 보인다. 이들 중에는 현재에도 법등을 밝히는 경우가 있지만, 유적으로만 남아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천면 군자리의 군자사는 신라 진평왕이 왕위 쟁탈전을 피해 여기서 살다가 태자를 낳아서 돌아가면서 집을 희사해 절로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여지도서』와 『범우고(梵宇攷)』를 통해 이 절은 18세기까지 존속한 것을 알 수 있다. 2018년 기준, 사역 주변으로 승탑과 청자류 그리고 각종 기와조각들이 산포하고 있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여지도서』·『범우고』 등에 사명이 전하는 덕봉사는 함양군 병곡면 광평리 586번지 일원에서 석축과 승탑, 각종 기와조각 등으로 유적이 확인되며 고려 전기~조선 후기에 걸쳐 존속하였음이 확인된다. 또한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등구사 사적기(等龜寺事蹟記)』가 전해지는 마천면 구양리에 있었던 등구사는 656년(무열왕 2)에 창건되어 여말에 소실되었다가 1709년에 중건된 적이 있는 사찰임을 알 수 있다. 2018년 기준 석축과 각종 장대석, 삼층석탑 등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조선 후기까지 법등을 밝힌 사찰로 추정된다.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에 있는 승안사는 소재 문화재와 산포된 유물을 통해 나말여초~조선 중기까지 법등을 밝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추정 사역 내에는 함양 승안사지 삼층석탑[보물 제294호]과 함양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호]이 있다. 그리고 함양군 휴천면 남호리 258번지 일원에 있었던 엄천사는 주초석과 장대석, 기와조각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조선 후기에 걸쳐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함양군 서상면 옥산리 377번지 일원에 있었던 극락사는 창건과 폐사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사역 내 산포된 유물을 통해 나말여초~조선 전기 동안 법등을 밝힌 것으로 추정된다. 사역 안에는 함양 극락사지 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이 자리하고 있는데 통일신라의 양식을 계승한 고려 전기 양식의 여래입상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확인된 사찰]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법등을 밝힌 사찰도 다수가 확인되고 있으며 산지가 많은 지형 특성상 다수의 마애불이 조성된 것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다수의 일명사지(逸名寺址)가 포함되고 있음으로 미루어 이들 외에도 실제 존속한 사찰은 더욱 많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함양군 안의면 대대리 산 40번지 일원에 있는 대대리사지에는 함양 대대리 마애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3호]이 있다. 주변에 산포된 기와조각으로 보아 나말여초~조선 전기에 법등을 밝힌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75번지 일원에 있는 덕전리사지에는 함양 덕전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375호]이 있다. 산포하는 기와조각 유물을 통해 고려시대 전 기간에 걸쳐 법등을 밝힌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는 사찰이다. 함양 대덕리 마애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9호] 주변에 자리한 대덕리사지에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각종 기와조각이 산포되고 있어 이 절이 운영되던 시기를 잠직할 수 있게 한다.
그 외 함양읍 신천리 279번지 일원의 신천리사지, 함양군 유림면 화촌리 819번지 일원의 화촌리사지도 2018년 기준, 이름을 알 수 없는 일명사지로서 그 유적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사찰]
함양 지역에는 법등을 밝히고 있는 수많은 사암들이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찰로는 2018년 7월 기준, 전통사찰로 지정된 벽송사(碧松寺)·영각사(靈覺寺)·금대암·상연대(上蓮臺)·영원사(靈源寺)·용추사(龍湫寺)·보림사(寶林寺)·안국사 등 8개 사암을 꼽아볼 수 있다.
벽송사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후 1520년(중종 15)에 벽송 지엄(碧松智嚴)에 의해 중창된 사찰로 알려진다. 경내에는 함양 벽송사 삼층석탑[보물 제474호]이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보이고 있다. 벽송사의 중창연대가 조선시대인 만큼 이 시기에 만들어진 신라양식 탑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받고 있는 불탑이다. 그리고 절 입구의 양쪽에는 마주보고 서 있는 한 쌍의 함양 벽송사 목장승[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2호]이 있다. 잡귀의 출입을 금하고 불법을 지키는 신장상(神將像)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신라시대 창건된 영각사는 서상면 상남리 남덕유산 산록의 평지에 있다. 한때 19개 동의 건물과 비로암(毘盧庵)·봉황대(鳳凰臺) 등 13개의 소속 암자가 있을 정도의 규모였다고 하나, 한국전쟁 기간 소실되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959년에 화엄전 등을 복원하여 일부 지난날의 모습을 되찾았으며 함양영각사산신탱[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60호]이 있다.
금대암은 656년(무열왕 3)에 행우(行宇)가 창건한 사찰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뒤, 금대암복구기성회가 조직되어 중건되었다. 중요문화재로는 함양 금대사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호]과 함양 금대암 전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가 있다. 상연대는 신라 말 최치원이 어머니의 기도처로 창건하였는데 기도 중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상련(上蓮)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역대 고승들이 수도 정진한 곳으로 유명하다. 함양 상연대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복장기에 의하면 1612년에 현진(玄眞)·학문(學文)·명은(明隱)·의능(義能) 등이 이 좌상을 조성하였으며 1677년에 이 절이 중수되었음을 알게 해 준다. 영원사는 신라 경문왕 대(861~874)에 영원(靈源)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온다. 한때 내지리(內智異)에서 최고의 사세를 자랑하던 사찰로 알려지며 그 규모는 9동이 넘는 선당(禪堂)에 100칸이 넘는 방이 있었다고 한다. 사중에 전하는 『조실안록(祖室案錄)』에 따르면 부용 영관(芙蓉靈觀), 청허 휴정(淸虛休靜), 사명 유정(四溟惟政), 설파 상언(雪坡尙彦), 초월 동조(初月東照) 등 당대를 풍미한 고승들이 109명이나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의 와중에 소실되었다고 전하며 2018년 기준 그 일부가 복원되어 법등을 밝히고 있다.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 등 고승들의 당호를 새긴 승탑들이 있다.
안국사는 656년(무열왕 3)에 행우조사에 의해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며 1403년(태종 3)에 행호조사(行乎祖師)가 중창한 사찰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5년 중창하여 2018년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함양 안국암 승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 함양 안국사은광대화상 승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37호] 등이 있다. 용추사는 487년(소지왕 9)에 각연대사(覺然大師)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지며 옛 장수사의 4대 부속 암자 가운데 현존하는 유일한 곳으로 그 명성을 얻고 있다. 보물 함양 용추사 일주문은 그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끝으로 근대 사찰 보림사는 1912년에 벽송사 주지 김동운(金東雲) 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대웅전에는 함양 용산사지 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18호]이 봉안되어 있다. 1970년에 보림사로 사명을 개칭하여 2018년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