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1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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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烈女 |
영어음역 | yeollyeo |
영어의미역 | virtuous woman |
이칭/별칭 | 열부(烈婦),절부(節婦)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백태남 |
[정의]
절개가 높은 여자.
[개설]
열녀는 일반적으로 위난을 당하여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남편을 위해 헌신한 여인을 일컬으며, 열부(烈婦)나 절부(節婦)를 통칭한다. 열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을 하여야 하고,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서 정착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이후의 일이었다. 그 전의 삼국시대 이후 고려시대까지의 전반적인 부녀자들의 생활은 매우 자유분방하였고, 수절을 미덕으로 여기고 재가하는 것은 죄악시하는 않았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절윤리의 전파]
우리나라 여인 특유의 정절윤리 흔적은 신라 진평왕 때의 설씨녀(薛氏女) 이야기나 백제 개루왕 때의 도미(都彌)의 처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잦은 외침으로 목숨을 던져 정절을 지킨 여인이 많았으며, 조선 건국 이후에는 주자학의 예속에 물들어가 여인의 수절과 희생이 강조되어 마침내 모든 부녀자가 열부절부(烈婦節婦)라는 경지에 접근해갔고, 모든 과부가 열녀라고 할 만큼 많은 수의 열녀가 쏟아져 나왔다.
이에 따라 민간에서는 열녀를 소재로 한 열녀설화가 전파되었고, 『열녀전』같은 중국 열녀의 전기나 「열녀 춘향 수절가」, 「열녀 함양박씨전」과 같은 창가와 소설이 널리 전파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조정에서는 매년 연초에 충신, 효자와 함께 열녀를 조사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이들의 정문(旌門 : 집의 문 앞이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문)을 세워 표창하였는데, 1592년의 임진왜란 때에는 전국적으로 356인의 열녀를 선정하여 정문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진주의 열녀들]
진주목의 읍지인『진양지(晋陽誌)』에는 1,045인의 진주 인물이 실려 있는데, 이 중 열녀로 이름을 남긴 155인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들은 특히 임진왜오후 2:09 2011-10-166란을 맞아 왜적의 만행에 항거하여 정절을 지킴은 물론, 논개(論介)의 예에서와 같이 부군을 도와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였고, 부군이 전사하자 왜적을 유인하여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순국한 정절과 애국의 여인도 있었다. 이 중 몇 명의 행적을 통하여 당시의 효행 내용을 살펴본다.
○ 강성문씨(江城文氏) : 조선시대의 열녀로, 진양인 하상태(河相泰)의 아내이다. 성품과 행동거지가 화순·정숙하여 시부모를 섬김에 모두 도리에 맞게 하였다. 남편상을 당하자 염습을 손수 하여 한이 없게 하였으며, 대상 때까지 제사를 정성껏 잘 끝낸 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상자 속에 염습과 장례에 쓸 것을 미리 쌓아 두었는데, 이로 보아 남편이 사망하였을 대 이미 죽을 결심을 하였던 것이다.
○ 안동김씨(安東金氏) : 조선 중기의 열녀로, 변립(卞岦)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때 남편 변립이 그의 아버지 변연수(卞延壽)가 일으킨 의병을 따라 이순신 장군의 진으로 가서 군공을 세우고, 정유재란 때 당포싸움에서 부자가 모두 전사하자, 이를 안 김씨는 그 날로 자결하여 남편을 따랐다. 고종 때 이 일이 알려져 정려를 세우게 하고, 숙부인을 추증하였다.
○ 정경부인 강씨(貞敬夫人 姜氏) : 조선 중기의 열녀로, 충의공(忠毅公) 정기룡(鄭起龍)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이듬해 적을 피해 진주성에 들어갔다가 성이 함락되자 적삼에 혈서를 써서 남편에게 죽음을 고하고 그의 어머니와 시누이와 함께 남강에 몸을 던져 죽었다.
○ 합천이씨(陜川李氏) : 조선시대의 열녀로, 진양인 하계석(河啓錫)의 아내이다. 남편이 일찍부터 습질에 걸려 온갖 약을 써도 낫지 않아 애쓰는데, 어떤 이가 말하기를 미꾸라지가 좋다고 하였다. 이씨는 날마다 대소쿠리를 가지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구하려 하였으나 겨울이 올 때까지도 얻지 못하고, 이웃 노파의 말대로 하늘에 빌기도 하였으나 남편은 끝내 일어나지 못하였다. 이때 슬하에 어린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는데, 이씨가 힘써 일하여 집안을 일으키자, 이웃과 마을에서 모두 감탄하며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