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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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崔昌甲旌閭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방화재 마을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승대 |
건립 시기/일시 | 1889년 - 효자 최창갑 정려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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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효자 최창갑 정려 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방화재 |
성격 | 정려각 |
양식 | 기와집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초계 최씨 문중 |
관리자 | 최기홍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최창갑을 기리는 정려.
[개설]
최창갑(崔昌甲)의 자는 경화(慶化), 호는 농은(農隱),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를 잘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이 드니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구워 드려 소생시켰다. 효행과 청렴이 자자하자 순찰사 이도재와 암행어사 어윤중(魚允中)[1848~1896]이 벼슬에 나갈 것을 권하였으나 어버이를 모셔야 한다며 사양하였다. 부모상에 모두 여막을 짓고 시묘하였는데 무릎 꿇던 자리에 흔적이 생기기까지 하였다. 1889년(고종 26) 최창갑이 세상을 뜨자 유림에서 효행을 기려 추증해야 한다는 공론이 일었고, 당시 순찰사와 암행어사가 앞장서 천거하여 조정에서 효직으로 동몽교관 조봉대부를 추증하고 효자 정려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1891년 3월에는 통훈대부 사헌부 지평에 추증되었다.
[위치]
효자 최창갑 정려(孝子崔昌甲旌閭)는 처음에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방화재 마을 최창갑의 옛 고택 앞에 세웠다. 현재는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최기용의 집 안에 있다.
[변천]
1889년 정려각을 세웠으나 6·25 전쟁 때 액판(額板)만 남고 소실되어 근래에 새로 비각을 건립하였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의 기와집이다. 중앙의 1칸은 정려문으로 안에는 ‘효자 증동몽교관 조봉대부 최창갑 지려(고종 26년 정월 일 명정)[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崔昌甲之閭(高宗 二十六年 正月日 命旌)]’라 쓴 현판을 걸었고, 밖에는 ‘사효문(賜孝文)’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사효문은 나라에서 내린 정려문이라는 뜻이다. 우측 1칸은 방을 들였다.
[현황]
2009년 현재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의 초계 최씨(草溪崔氏) 후손 최기홍이 관리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