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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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芳花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호숙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무림면 방화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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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35년 - 전라북도 순창군 무림면 방화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로 개편 |
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방화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8.82㎢ |
가구수 | 101가구 |
인구[남/여] | 173명[남 90명/여 83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방화리(芳花里)는 방아재 또는 방화재라 불렸다. 그 형상이 해당화 꽃이 이슬을 머금은 모양인 해당함로(海棠含露)라 향기로운 꽃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방화재(芳花在)라 하였고, 예부터 풍요로운 마을로 알려져 있다. 방화리의 행정리 중 하나인 속리 마을은 고려 시대 속리사(俗離寺)라는 큰 가람이 있었는데, 속세를 떠난 곳이라는 말로 속리동 속리사라 하였다. 자연 마을로 벌통산 아래 문치(文峙) 마을이 있는데, 졸고 있는 꿩의 형상으로 보인다.
[형성 및 변천]
방화리는 조선 시대 순창군 무림면 지역이었다. 1897년(고종 34) 방(坊)을 면(面)으로 개칭하면서 무림면(茂林面)으로 개칭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방화 마을, 속리동(俗離同) 마을, 문치(文峙) 마을을 통틀어 방화리라고 하였다. 1935년 무림면과 구암면을 병합하여 구림면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른다. 행정리로 방화리와 속리가 있고, 자연 마을로 속리 마을·방화 마을·민재 마을이 있다.
[자연 환경]
방화리는 북쪽으로 벌통산[680m]이 자리 잡고 황새 고개, 두무골을 지나면서 동쪽으로 중고개, 금천리, 장군봉을 함께 하고 있다. 성지박골, 고숲재, 산바래기 등을 지나며 운남리와 남쪽으로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여분산(如紛山)[774.3m]을 사이에 두고 운북리와 경계가 나뉜다. 북서쪽과 남동쪽으로 길게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형상이다. 장군봉은 문재 동북쪽에 있는 444m 높이의 산으로 장군대좌(將軍對坐) 형상이다.
문치 마을 벌통산에서 발원한 물과 운북리와 경계 지점에서 발원한 물이 합수되는 지점에 있는 방화리에는 자연 하천들로 운항골, 웃골천, 이율재천, 큰덕천, 안동천, 방화천 등이 흐른다. 사방이 깊은 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마을로 통하는 중고개, 꽃밭등, 고숲재, 서당골재, 무덤골재, 은행이 고개, 정재재, 황새 고개 등이 있다. 또한 두무골, 병목골, 서당골 등의 골짜기와 여기에서 형성된 들로 안껄들, 운행이들, 정재들, 중고개들의 지명이 남아 있으며, 씨아시 바우, 마당 바우산, 배암 바우산 등의 향토적인 지명도 남아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방화리의 면적은 8.82㎢이며, 인구는 101가구, 173명으로 남자가 90명, 여자가 83명이다. 면 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1.4㎞ 지점에 위치한다. 이도 207호선이 문치 마을까지 이어져 있고, 면도 102호선이 방화 마을에서 운항 마을을 이어준다. 옛 길로 홍골제길, 연산길, 운항길, 이율길, 베트라길 등이 있었다.
방화재 마을에서는 당산제 및 마을 지킴이 행사를 1년에 두 번 수행하는데, 당산제와 탑제가 그것이다. 방화재 마을은 특이하게도 마을 곳곳에 돌탑, 선돌, 당산 무덤, 마을 숲 등이 복합되어 있는 마을이다. 가까운 곳에 화산(火山)인 회문산이 보여 마을에 화재가 자꾸 발생하였는데, 어느 날 도승이 와서 돌탑, 선돌, 당산 무덤, 마을 숲을 세우고 마을 입구에 우물을 파고 당산제를 모시면 화재가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도승의 지시대로 다양한 종류의 지킴이를 세우게 되었고, 그 뒤로는 마을에 화재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당산제는 음력 정월 14일 저녁 10시경 할머니 당산과 할아버지 당산에서 모신다. 한편, 음력 2월 초하룻날에는 돌탑에서 탑제를 모시는데, 정월달에 당산제를 모시는 제관이 탑제도 더불어 주관한다.
방화리에는 경주 정씨 삼효비(慶州鄭氏三孝碑)가 세워져 있다. 삼효자란 조선 영조(英祖) 때의 인물 정시태(鄭時泰)와 그의 손자 정채룡(鄭采龍), 증손자 정상신(鄭商臣)을 말하며, 삼효비는 그들의 효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방화 마을 안 옛 최 효자의 고택 앞에 효자 최창갑 정려가 있다. 2004년 『 타임』지 한국판에 방화리에 살던 장수 할머니가 표지 모델로 선정될 만큼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마을이다. 백색 점토, 청색 점토 등 점질토가 많이 나오는 곳으로 구림면 방화리 산200번지 기슭에 도자기를 만들었던 가마터가 남아 있다. 또한 방화리 전체에 점굴이 많이 있었으며 점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