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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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沃 |
이칭/별칭 | 계언(啓彦),석헌(石軒),정간(靖簡),류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훈 |
출생 시기/일시 | 1487년 - 유옥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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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01년 - 유옥 생원시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07년 - 유옥 문과 장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509년 - 유옥 홍문관 수찬, 무안 현감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15년 - 유옥 사헌부 장령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518년 - 유옥 종성 부사에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519년 - 유옥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805년 - 유옥 이조 판서에 추증, 화산 서원에 배향 |
출생지 | 출생지 - 전라남도 담양군 |
거주|이주지 | 이주지 - 전라북도 순창군 |
사당|배향지 | 화산 서원 - 전라북도 순창군 |
성격 | 문관 |
성별 | 남 |
본관 | 문화(文化) |
대표 관직|경력 | 의정부 사인 |
[정의]
조선 전기 순창 삼인대에서 폐비 신씨 복위 논의에 참가하였던 문관.
[가계]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계언(啓彦), 호는 석헌(石軒). 증조할아버지는 유면(柳沔), 할아버지는 유인흡(柳仁洽), 아버지는 순창 훈도(淳昌訓導)를 지낸 유문표(柳文豹)이다. 어머니는 현맹인(玄孟仁)의 딸이다. 할아버지 유인흡이 계유정난 뒤 사육신인 유성원(柳誠源)과 친척이라 화를 면하기 위하여 순창으로 이거하였다.
[활동 사항]
유옥(柳沃)[1487~1519]은 1487년(성종 18) 창평[지금의 전라남도 담양]에서 출생하였는데, 아버지 유문표가 아들이 없어 늘그막에 월출산에 기도하여 태어났다 한다. 어려서부터 문장이 뛰어나 신동으로 소문났다. 1501년(연산 7) 생원, 1507년(중종 2) 식년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509년(중종 4) 홍문관 수찬을 거쳐 무안 현감이 되었다. 이 해에 담양 부사 박상(朴祥), 순창 군수 김정(金淨) 등과 함께 단경 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복위를 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세 사람은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중종의 비 신씨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 놓고 맹세한 곳에 후세 사람들이 대를 세우고 삼인대(三印臺)라 부르게 되었다.
1515년(중종 10) 사헌부 장령, 1517년(중종 12) 함경도 평사를 거쳐 이듬해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이 되었다. 1518년(중종 13) 남곤(南袞)의 미움을 받아 종성 부사(種城府使)로 전출되니, 유옥이 늙은 어버이가 있다며 외직에 나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삼정승이 논의를 하여 “어버이의 나이가 70이 넘어 병이 들고 아우나 누이가 없으면 혹 은전을 베풀 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옥의 부친은 70세가 못 되어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1519년(중종 14) 35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학문과 저술]
『석헌집(石軒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805년(순조 5) 이조 판서에 추증되었고, 순창의 화산 서원(花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