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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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山里大山- |
이칭/별칭 | 대산리 대산 마을 입석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형준 |
현 소재지 | 대산리 대산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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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대산리 대산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 |
성격 | 수구막이용 |
크기(높이,둘레) | 176㎝[높이]|114㎝[폭]|43㎝[두께]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 대산 마을에 있는 선돌.
[개설]
대산리의 주산은 쉰산이다. 두류봉이 남으로 내려오다가 쉬고 있는 산이라 하여 쉰산[365m]이라고 하였다. 대산리 주민 정동훈[69세]에 따르면 “아기 밴 여자가 산이 걸어가는 것을 보면서 산이 걸어간다고 말하자 산이 멈춰 쉬었다.” 하여 쉰산이 되었다고 한다. 쉰산은 무량산(無量山)이라고도 부른다.
대산리의 풍수 형국은 대호 하산혈(大虎下山穴)이다. 이 때문에 쉰산을 호랑이가 내려오다가 쉬는 형국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산리는 쉰산의 주맥이 좌청룡 우백호로 내려오는데, 청룡날은 마을 앞 당산까지 내려오고, 백호날은 마을 옆 위 당산에 와 멈추었다. 아래 당산[청룡이 내려와 멈춘 곳]에는 넓적한 바위 5개가 놓여 있고, 당산나무가 조성되어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당산나무 아래 위치한 넓적한 돌을 ‘고인돌’이라고 불렀다. 마치 개석식 고인돌처럼 보이는 평평한 바위들은 당산제를 지낼 때 제물을 올려놓은 상돌[상석]으로 사용된 듯하다.
원래는 위 당산[백호가 내려와 멈춘 곳]에 당산나무와 함께 선돌 2기가 세워져 있었다. 무척 큰 선돌 1기가 넘어진 뒤에 마을 주민들이 그 선돌을 초석으로 모정을 세웠고, 현재 남아 있는 선돌이 대산리 대산 선돌이다. 마을 주민들은 수구막이 선돌이라고도 부른다. 백호날에는 선돌과 함께 비보 숲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나이 든 마을 주민들은 어렸을 때 백호날의 나무를 꺾거나 베려고 하면 어른들한테 야단을 맞았을 정도로 신성시하였던 곳이다.
[위치]
대산리 대산 선돌은 대산리 동쪽에서 올라오는 백호날 등에 세워져 있다가 현재는 밭 가운데에 있다.
[형태]
높이 176㎝, 폭 114㎝, 두께 43㎝의 자연석이다.
[의례]
백호날에 세워진 선돌이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수문신 역할을 하였듯이, 길 양쪽에 세운 선돌은 수구막이용이라 할 수 있다. 당산제를 지낼 때 선돌에 금줄을 둘렀으나 일제 강점기 말 당산제를 중단하면서 의례는 거행되지 않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산리 대산 마을 당산은 좌청룡 우백호 날등에 세워진 고인돌과 선돌이었다. 고인돌은 청룡이 내려와 멈춘 곳에 조성되었고, 당산나무와 함께 매우 보기 좋은 숲 거리를 조성하며 여름철 쉼터로도 좋은 곳이다. 선돌은 마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자리해 비보 숲의 숲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이 처음 터를 잡을 때 어떠한 비보 장치를 했는지를 보여 주는 전형적인 마을 풍수의 표본이 되는 곳이다.
쉰산의 한자 표기인 무량산은 불교식 지명인데, 산이 걸어간다고 하는 표현도 산 이동설(山移動說)의 표현이 대산 마을에 차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선돌과 넓적 돌이 당산 돌로 한 세트를 이루는 곳도 매우 드물다. 주산과 당산, 당산돌과 당산 숲을 꿰어 보면 마을 신화의 아름다운 구도를 그려볼 수 있는 전통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