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1632 |
---|---|
한자 | 水亭里石山- |
이칭/별칭 | 석산리 입석 마을 선돌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형준 |
이전 시기/일시 | 1984년 8월 27일 - 수정리 석산 선돌 만수탄 천변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로 이전 |
---|---|
현 소재지 | 수정리 석산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 |
원소재지 | 수정리 석산 선돌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
성격 | 마을 표시석 |
크기(높이,둘레) | [왼쪽 선돌]높이 167㎝, 폭 60㎝, 두께 46㎝|[오른쪽 선돌]높이 168㎝, 폭 46㎝, 두께 50㎝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수정리 석산 마을에 있는 선돌.
[개설]
수정리 석산 선돌은 2기로, 1984년 만수탄 천변에서 옮겨 와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 두 선돌에 대한 내력을 기록한 기념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 기념비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종대왕 아들 수춘군 8세손 남평 현감 겸 나주 진관과 밀양 박봉정 두 분께서 영조 2년(1726) 불암사(佛岩寺) 종소리만이 산곡 적막을 깨트리는 입석에 정착하여 이씨는 정자나무를, 박씨는 팽나무를 기념으로 심고, 천변에 나아가 이 표석을 세우시고 촌명을 입석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마을 선돌의 설립과 관련된 금석문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운데 석산리에서는 입석리라는 마을 이름을 짓게 된 내력을 밝혀 놓은 것이다. 불암사는 1869년 폐사되었다.
[위치]
수정리 석산 선돌은 동계면 수정리 천변 삼거리에 세워져 있다.
[형태]
왼쪽에 위치한 선돌은 높이 167㎝, 폭 60㎝, 두께 46㎝이며, 오른쪽에 위치한 선돌은 높이 168㎝, 폭 46㎝, 두께 50㎝의 크기이다. 자연석인데 마치 마을 문의 문설주와 같은 기능을 하는 쌍선돌이다.
[의례]
수정리 석산 마을에서는 섣달그믐 날에 당산굿을 칠 때 마을 입구에 위치한 선돌을 당산 신체로 여겼으나, 일제 강점기 당산제가 중단되면서 의례도 단절되었다. 현재는 마을의 문 기능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수정리 석산 선돌이 세워진 시기는 1726년이다. 전주 이씨(全州李氏)와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함께 석산리로 입향하면서 입향 기념으로 정자나무, 팽나무를 기념식수 하고, 천변에 나아가 표시석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다. 1700년대 초는 자연 재해로 흉년과 기근이 지속되고 각종 질병과 전염병 등으로 유민들이 길거리를 떠돌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두 집안이 심산유곡인 불암사 아래 석산 마을에 정착하였던 것이다. 조선 후기의 유민 현상을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입향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