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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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歸來亭-成俔- |
이칭/별칭 | 「제신참의귀래정시권(題申參議歸來亭詩卷)」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손앵화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439년 - 성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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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몰년 시기/일시 | 1504년 - 성현 사망 |
배경 지역 | 귀래정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
성격 | 한시 |
작가 | 성현(成俔)[1439~1504]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성현이 순창에 있는 귀래정을 읊은 한시.
[개설]
「귀래정(歸來亭)」[성현]은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1439~1504]이 신말주(申末舟)[1429~1503]가 지은 귀래정[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67호]에 부친 제영시(題詠詩)이다. 성현과 신말주는 동시대의 인물로 교유가 깊었을 것이다. 신말주가 순창으로 낙향하여 귀래정을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서 벗을 위해 지은 시로 보인다. 성현은 1462년(세조 8)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평생을 관직에 머물렀다. 특히 음률에 정통하여 장악원 제조, 예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연산군이 즉위한 후에는 한성부 판윤을 거쳐 공조 판서, 대제학을 겸임하였다.
귀래정은 신말주가 1456년 순창으로 낙향하여 1495년(연산군 1)에 지은 정자이다. 현재 있는 귀래정 건물은 1974년에 재건한 것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고령 신씨(高靈申氏) 종중이 소유하고 있으며, 서거정(徐居正)이 지은 「귀래정기(歸來亭記)」를 비롯해 강희맹(姜希孟), 김인후(金麟厚) 등의 시문이 적힌 편액이 걸려 있다. 최근 귀래정 측면에 강희맹의 한시 「귀래정」과 김인후의 한시 「영귀래정(詠歸來亭)」의 원문 및 한글 번역본을 판각한 비석과 서거정의 「귀래정기」 한문 원문과 번역본을 새긴 비석이 세워졌다.
[내용]
허백당 성현의 「귀래정」 제영시는 『허백당 보집(虛白堂補集)』 권1에 「제신참의귀래정시권(題申參議歸來亭詩卷)」[신 참의의 귀래정 시권에 쓰다]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歸來乎歸來乎(귀래호귀래호)[돌아왔는가, 돌아왔는가]
桑梓已老田園蕪(상재이로전원무)[어버이는 이미 늙고 전원은 묵었도다]
淵明早作山澤臞(연명조작산택구)[도연명이 일찍이 산택에서 늙기로 작정하니]
折腰羞向鄕兒徒(절요수향향아도)[허리 굽혀 고향 아이들 보기가 부끄럽도다]
潯陽江頭眞奧區(심양강두진오구)[심양강 머리 아담한 곳에]
一間蝸室容頭顱(일간와실용두로)[조그마한 집 한 칸으로 겨우 몸을 의지하네]
三徑松竹靑紛敷(삼경송죽청분부)[세 갈래 길과 솔과 대는 푸름이 어울리고]
東籬甘菊黃初膄(동리감국황초수)[동쪽 울타리의 노란 국화 탐스럽게 피어나네]
琴中無絃心自娛(금중무현심자오)[거문고에 줄이 없어도 마음만은 즐거우니]
起洗葛巾開尊壺(기세갈건개존호)[일어나 갈건 씻어 술독을 연다네]
山河盡屬劉寄奴(산하진속유기노)[강산은 모두 유기노의 것인데]
獨倚五柳撚霜胡(독의오류연상호)[홀로 다섯 버드나무에 기대어 서리 맞은 호초를 어루만지네]
紫陽義筆光昭蘇(자양의필광소소)[주자의 의로운 붓 소소에 빛나니]
千載淸風敦薄夫(천재청풍돈박부)[천년의 맑은 바람 경박한 사람 돈독하게 만드네]
當今聖化超唐虞(당금성화초당우)[지금 임금의 덕화가 요순을 초월하니]
夔龍攀附靑雲途(기용반부청운도)[재주 많은 신하들이 벼슬길에 나섰는데]
以君奇才文武俱(이군기재문무구)[그대가 좋은 재주 문무를 겸하고서]
急流勇退何其愚(급류용퇴하기우)[급류에 물러난 건 어리석지 않은가]
君言宦途苦崎嶇(군언환도고기구)[그대에게 말하기를, 벼슬길은 기구해서]
幾人窘步喪厥軀(기인군보상궐구)[바쁜 걸음으로 그 몸을 다친 이 얼마인가]
生平雅性在江湖(생평아성재강호)[평생에 먹은 마음 강호에 있으니]
今者不去將何須(금자부거장하수)[이제 가지 않고 또 무엇을 기다리랴]
寶蓮山高靑鬱紆(보련산고청울우)[보련산 높고 높아 울창하게 푸르고]
積城水合淸如酥(적성수합청여소)[적성강물 합쳐 흘러 타락죽처럼 맑구나]
菟裘勝地眞可居(토구승지진가거)[승지의 보금자리 여기에 살 만하니]
脫屣軒冕如泥塗(탈사헌면여니도)[벼슬 버리기를 흙탕물같이 아니]
千畦䆉稏黃雲鋪(천휴파아황운포)[온 들판 푸른 벼는 황운이 깔려 있고]
萬樹梨棗紅纓珠(만수리조홍영주)[온갖 나무에 배와 대추 구슬같이 열렸네]
四隣斗酒相嗚嗚(사린두주상오오)[사방에서 말술을 서로서로 가져오니]
田翁野老同團蒲(전옹야로동단포)[시골 노인들과 자리를 함께하네]
欣然擊鼓謠康衢(흔연격고요강구)[즐겁게 북 치고 강구에서 노래하니]
時平不見差科呼(시평부견차과호)[태평한 이 세상이 슬픔이 무엇인가]
願保此樂終無渝(원보차악종무투)[바라건대 이 즐거움 끝이 없기를]
淵明不知有此無(연명부지유차무)[도연명이 이런 재미 알았으려나]
秋風策策吹黃蘆(추풍책책취황로)[가을바람 사각사각 갈대밭에 불어오니]
歸興忽憶江東鱸(귀흥홀억강동로)[고향에 가고픈 마음에 문득 강동 농어 생각나네]
臨岐摻袖歌驢駒(임기섬수가려구)[갈림길에서 손을 잡고 이별가를 부르니]
親朋觴酒來相扶(친붕상주래상부)[친한 벗들 술잔 듣고 달려와 서로 붙잡네]
尙憐淸渭少踟躕(상련청위소지주)[청위에 미련 있어 조금 머뭇거리니]
終南一髮雲間孤(종남일발운간고)[종남의 한순간 구름 사이에 외롭도다]
依然夢想在淸都(의연몽상재청도)[의연한 그 생각이 청도에 있으니]
有時來作雙飛鳧(유시래작쌍비부)[어쩌다 한 쌍의 청둥오리 되어 보네]
送君仰慕鵬南圖(송군앙모붕남도)[그대를 보내면서 큰 기대해 보지만]
詩成一笑空長吁(시성일소공장우)[한바탕 웃음 웃고 부질없이 한숨 쉬네]
[의의와 평가]
성현의 「귀래정」에는 성현과 신말주의 대조적인 삶이 투영되어 있다. 성현은 세조(世祖) 때 과거에 급제해 관료의 길을 걸었고, 신말주는 세조의 단종(端宗) 폐위와 왕위 찬탈에 의분하여 산림처사로 생애를 보냈다. 「귀래정」에는 귀래정을 세우고 산수 간에서 뜻있는 선비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유유자적한 삶을 누리는 벗의 삶을 부러워하는 성현의 모습이 나타난다. 성현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형식을 빌려 강호 선망의 마음을 살포시 비친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의 ‘한바탕 웃음’과 ‘큰 한숨’에서 알 수 있듯이 정계에 매인 자신의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