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남
-
전라남도 영암군에 전해 오는 한석봉과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 영암군에서는 석봉 한호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죽림 정사에서 한석봉을 길러 낸 어머니」는 한석봉의 교육을 위해 영암에 온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팔며 아들을 뒷바라지한 이야기이다. 2007년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발행한 『영암 한석봉 관련 유적 조사』와 한국 정신문화 연구원의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
-
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거창 신씨(居昌愼氏)의 시조인 신수(愼脩)[?~1101]는 원래 송나라 개봉부 사람이었으나 고려 문종 때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신수가 죽은 뒤 신수의 아들인 신성(愼成)이 경상남도 거창 지역에 내려가 살면서 거창 신씨의 시원이 되었다. 영암 지역의 거창 신씨는 참판공파 후손들이며, 최덕...
-
문다성을 시조로 하고 문맹화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제20대 왕인 자비 마립간 때의 인물로 남평현[현재의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면] 출신이었다. 신라 지증왕과 진흥왕, 진지왕 대에 걸쳐 고위 관직을 지내고 남평 문씨(南平文氏)의 시조가 되었다.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처인 서흥 김씨(瑞興...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집성 마을. 영암의 거창 신씨(居昌愼氏)는 신수(愼脩)[?~1101]를 시조로 하고 신후경(愼後庚)을 입향조로 한다. 신후경이 전주 최씨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사위로 덕진면 영보리에 입향하면서 영암 지역에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하였고, 신희남(愼喜南)[1517~1591], 신천익(愼天翊)[1592~1661] 등 화려한...
-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문신. 문익주(文益周)[1535~1605]는 어릴 때부터 엄숙하고 기이한 품성이 어른과 같았으며, 천성이 독실하고 효심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를 직접 행동으로 보여 부모를 기쁘게 하였다고 한다.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중욱(仲郁), 호는 백련당(白蓮堂)이다.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문서(文敍)의 5세손이고, 할아버지는 문명부(文命敷)이며 아...
-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인·학자. 박규정(朴奎精)[1493~1580]은 1528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평생 당대 명유(名儒)들과 함께 시와 문장을 논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특히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구림 대동계의 중창자이며, 영암 향약을 창설하고 향안을 마련하는 데서 주동적 역할을 하는 등 조선 전기 영암 지역의 사족을 이끈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서구림리와 동구림리에 있는 함양 박씨 집성 마을.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조선 전기에 박성건(朴成乾)[1418~1487]의 구림 입향 이후 영암 지방의 유력 성씨로 발전하며 그 기반을 조선 후기까지 유지·존속시켰다. 박성건의 구림 입향 이후 처족(妻族)이자 구림 마을에 먼저 정착한 성씨였던 난포 박씨(蘭浦朴氏)와 연결되었으며, 뒤에 입향한 선산 임씨(善山林氏...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신재철의 사우. 송암 정사(松菴 精舍)는 송암(松庵) 신재철(愼在哲)[1803~1873]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사우(祠宇)이다. 신재철은 강원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의 9세손으로 금곡(金谷) 송래희(宋來熙)에게서 수학하였으며, 설락재(說樂齋)라는 서당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영암군 차원에서 송암 정...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거창 신씨 문중 사우. 송양사(松陽祠)는 1796년(정조 20)에 영암 지역 유림의 발의로 건립된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祠宇)이다. 송양사에는 2013년 현재 5위를 배향하고 있다. 거창 신씨 영암 입향조 신후경(愼後庚)의 아버지인 경제(景齊) 신기(愼幾)[?~1493]를 주벽(主壁)으로 하고, 신후경의 아들 산정(山亭) 신영수(愼榮...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송양사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 송양사(松陽祠)는 덕진면 노송리에 있으며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 사우이다. 1796년(정조 20)에 신희남(愼喜男), 신천익(愼天翊), 신해익(愼海翊)을 제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1826년(순조 26) 신기(愼幾)를 주벽으로 하고 신영수(愼榮壽)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
-
조선 후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증조할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신우장(愼友張), 할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한 신희남(愼喜男)[1517~1591]이다. 아버지는 진안(眞安)과 연산(連山)의 수령을 역임한 신여경(愼餘慶)[1538~1592]이다. 신성(愼誠)은 정계에 나아가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으나, 조선...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여임(汝任)이다. 감사 신희남(愼喜男)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동생은 신성필(愼聖弼)과 신성망(愼聖望)이다. 신성윤(愼聖尹)[1617~?]은 성품이 온후하고 부모님에게 예를 다하는 효자였다. 집안을 다스리는 데도 법도가 있었고, 살림이 어려웠으나 항상 예를 갖추며 지냈다. 1660년(현종...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효자. 본관은 거창(居昌). 감사를 지낸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생원 신광익(愼光翊), 참봉 신성윤(愼聖尹)이 형이다. 신성필(愼聖弼)은 천성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성과 형제간의 우애를 타고났으며, 부모를 섬기는 정성이 매우 지극하여 이웃에서 칭찬하며 감복하였다. 학문에도 힘을 쏟아 예로써 행하며 몸가짐을 항상 바르게...
-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創), 자는 유선(惟善)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영명(愼榮命), 할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신우장(愼友張), 아버지는 강원도 관찰사(江原道觀察使)와 예조 참의(禮曹參議)를 역임한 신희남(愼喜男)이다. 아내는 광주 김씨(光州金氏)로 판관(判官) 김인서(金鱗瑞)의 딸이다. 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 이공인(李公仁)이 사위이고, 부제학...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유학자 신재철의 유허비. 송암(松菴) 신재철(愼在哲)[1803~1872]은 강원 감사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9세손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의 문하에 종유(從遊)하였고, 만년에는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熙)[1791~1867]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장헌주(張憲周)·기우만(奇宇萬) 등과 교류...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 호는 소은(素隱)이다. 참의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신여경(愼餘慶)[1538~1592], 아버지는 신인(愼諲)이다. 어머니는 이용(李溶)의 딸이다. 신천익(愼天翊)[1592~1661]은 1612년(광해군 4)에 문과에 급제한 뒤 1615년(광해군 7)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신해익(愼海翊)[1592~1615]은 22세 때 알성 문과(謁聖文科) 장원 급제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으며, 천성이 고결하여 한 점의 티끌도 없었다. 문장이 매우 뛰어나 오숙(吳䎘)[1592~1634]은 신해익의 문장을 두고 당세에 제일이라는 칭찬을 하였다.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중거(仲擧), 호는 병은(病隱)이다. 참의 신희남(愼喜男)[1517~...
-
조선 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길원(吉遠), 호는 영계(瀯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좌통례(左通禮)를 지낸 신후경(愼後慶), 할아버지는 신영명(愼榮命)[1451~1498], 아버지는 병절 교위(秉節校尉)를 지낸 신우장(愼友張)이다. 어머니는 평시령(平市令)을 지낸 김제(金濟)의 딸이다. 진안(眞安)과 연산(連山)의 수령을 역임한 신여경(愼餘慶)[1538~1...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있는 조선 후기 이래 영암의 대표적인 집성촌. 영암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마을 영보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에 속한 마을로, ‘영보 12동네’로 구성되어 있다. 영보 12동네는 내동, 서당동, 관곡, 참새굴[냉천], 노로동, 솔안, 홍암, 장동리, 운곡, 송석정, 선암, 세류정을 말한다. 이를 행정 구역 기준으로 보면, 서당동과 내동은 영보 1구, 관곡과 냉...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 영암 이우당(靈巖 二友堂)은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의 화합과 학문 연마를 위해 지어진 정사(精舍)이다. ‘이우당’이란 당호는 충절의 상징인 대나무와 청렴결백을 뜻하는 연꽃 즉, 죽(竹)과 연(蓮)’의 이우(二友)를 뜻한다. 명종 시대에 명신이며 문필가인 신희남(愼喜男)[1517~1591]은 이곳에서 이율곡, 김인후 등 수...
-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이루어진 유학과 관련된 제반 활동. 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 사상으로 공교(孔敎) 또는 공자교(孔子敎)라고도 한다. 인(仁)을 모든 도덕을 일관하는 최고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자 정치학이며 예로부터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의 사상을 지배하여 왔다. 유교는...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장암리에 있는 남평 문씨 집성 마을. 남평 문씨(南平文氏)는 입향조인 문맹화(文孟和)[?~1487]가 세조의 왕위 찬탈을 계기로 관직을 버리고 아내인 연촌 최덕지의 외손녀 서흥 김씨의 고향인 영암에 은거하면서 장암리를 중심으로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게 된 성씨다. 남평 문씨는 문익주(文益周)를 위시하여 문익행(文益行), 문익현(文益顯), 문후소(文後素) 등...
-
박언신을 시조로 하고 박성건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박언신(朴彦信)은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속함대군(速咸大君)으로 봉해졌는데, 후에 속함(速咸)[경상남도 함양군의 옛 지명]이 함양으로 개칭됨에 따라 관향을 함양으로 삼아 함양 박씨(咸陽 朴氏)의 시조가 되었다. 함양 박씨는 조선 전기 오한(五恨) 박성건(朴成乾)[14...
-
호남 3대 명촌으로 손꼽히는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의 마을. 구림 마을이 호남의 3대 명촌 중 하나가 된 배경에는 구림 마을의 풍수지리와 지명 유래가 관련되어 있다. 곧, 구림 마을의 입지가 풍수지리상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며 지명의 유래에서 마을의 역사와 전통이 깊음이 드러나기에 호남 3대 명촌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서 『택리지(擇里志)』에는 “월출산 남쪽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