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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와 옥적리 사이에 있는 산. 비봉산에 관한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는 곡화목장의 말들이 서로 지나간다고 하여 마거산이라고 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풍화된 육산으로,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한 편이다. 높이는 310.7m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기맥이 앵무산과 무선산, 안심산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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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개도리 화산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느티나무에 관한 이야기. 개도리 화산마을은 화개산 아래에 있으며, 화개산은 일명 천제봉(天祭峯)으로 불린다. 삼월 삼짇날 전야에 정상에 있는 제단에서 하늘의 천제신에게 제를 올리는 산으로써 영산으로 알려졌다. 화산마을은 조선시대 곡화목장에 속해 있었다. 조선 중기 숙종 때였다. 군마를 기르던 개도리 화산마을에 마병이 창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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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출항했다 침몰 후 2011년 발굴된 난파선. 마도3호선은 13세기 중반인 고려 후기 나무로 만든 배이다. 발굴 위치는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이며, 2009년 마도Ⅱ지구 광역 탐사 중 선체가 발견되어 2011년 5월부터 10월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는 2009년 마도1호선, 2010년 마도2호선이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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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출항했다 침몰 후 2011년 발굴된 마도3호선에서 건져 올린 목간. 마도3호선은 13세기 중반인 고려 후기 나무로 만든 배이다. 출발지는 전라남도 여수 지역으로, 최종 목적지는 당시 고려의 임시 수도였던 강화도였다. 발굴 위치는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이다. 2009년 마도Ⅱ지구 광역 탐사 중 선체가 발견되었고, 2011년 5월부터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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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 영화배우. 1930년 2월 4일 전남 여수 봉강동 출생으로 서초등학교, 여항중학교를 거쳐 순천사범대 체육과를 졸업했다. 순천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24세 때 배우가 되기 위해 악극단에 들어갔다, 1955년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데뷔한 뒤 이듬해 「5인의 해병」을 통해 액션배우로 한국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에는 주로 멜로드라마 주인공으로 출현했지만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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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과 만흥동 사이에 있는 산. 마래산 남쪽 산록 가까이 이순신 장군의 넋을 기리는, 한산도 충렬사보다 먼저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사우인 충민사가 있다. 인접해서 뒷절이라고 부르는 석천사가 있는데, 이곳에 이순신 장군이 즐겨 마셨던 석천이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풍화된 육산으로, 산 전체의 경사가 가파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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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터널. 여수 마래 제2터널은 길이 630m, 높이 4.3m, 폭 4.5m이다. 터널 내부에는 100~110m 간격으로 5곳의 대기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마래 제1터널은 1926년 일제가 군량미 창고로 쓰기 위하여 설계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 마래 제1터널 옆에 쌍둥이처럼 나란히 파들어 간 터널이 여수 마래 제2터널이다. 여수 마래 제2터널은 1차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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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에서 정월 초에 말의 무병장생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백야도(白也島)는 여수시 화정면에 속하는 도서 마을로, 2005년 5월 백야대교가 개통되면서 고립된 섬마을에서 벗어났다. 백야도는 출토된 유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예견하였는지, 백야도에는 마장(馬場)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백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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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리 대동회 는 한 때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대소사에 대한 최고 의결 기구로서 그 권위와 위엄을 누구도 거부하지 못했었는데, 지금도 군내리에서는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매년 음력설을 지내고 나면 대보름이 지나기 전에 마을 회의를 소집한다. 한 가구에 한 명씩 마을 주민을 참석케 하여 지난 한 해의 결산을 보고하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는 계획을 수립하고,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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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마을의 당제는 정월 보름 오후 다섯 시 무렵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열린다. 제당은 상당과 하당이 있는데, 상당은 한 칸의 시멘트 벽돌에 함석지붕 건물로 마을 뒷산 정상 숲속에 있다. 내부에는 이 마을의 개척 선조인 정씨(鄭氏) 할아버지 내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하당은 방과 부엌으로 된 두 칸 집이다. 제관은 선출하지 않고 동수(洞首)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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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산리에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 바위에 관한 이야기. 율촌면 신산리 북쪽에 원앞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성생원이라는 역원이 있었다. 그래서 그 부근을 원촌이라고 했다 한다. 원촌은 여수 지역의 다른 어떤 곳보다도 외부 소식을 빨리 접할 수 있었다. 어느 때인가 전국적으로 괴질이 유행했는데, 호랑이가 사는 마을에는 괴질이 번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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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다리. 마주교는 1666년(헌종 12)에 마을 주민 김석휴 등 8명이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큰 돌을 놓아 만들었다고 하여 독다리로 불리기도 한다. 1973년 새마을사업으로 복개되었다. 다리의 아랫부분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쪽에는 다리를 설치하면서 판 우물이 있다. 마주교 옆에는 다리를 만든 8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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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의 오천동·만흥동·덕충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만덕동은 1998년 오천동과 만흥동, 덕충동이 행정동 통합으로 신설된 이름이며, 만흥동의 만과 덕충동의 덕을 한 글자씩 취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한말 당시 오만이[오천동], 만행이[만흥동], 떡더골[덕충동] 등으로 구전되어 오다 1923년 오천리, 만성리, 덕충리로 법정화되었다. 1949년 오천리를 오천동으로 개칭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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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만덕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만덕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3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천리, 만성리, 덕충리로 불리었다. 1949년 오천리가 오천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천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53년 만성리가 만흥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만흥동사무소가 설치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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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덕충동에 있는 만덕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만덕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23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천리, 만성리, 덕충리로 불리었다. 1949년 오천리가 오천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오천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53년 만성리가 만흥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만흥동사무소가 설치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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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신복리와 금성리에 있는 조선시대 추정 석축 산성지. 신기산성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어 그 축성 연대를 알기가 매우 어렵다. 다만, 전해지는 구전에 의하면 임진왜란 전 왜구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타지에서 피난해온 사람들이 왜구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해 축조했다고 한다. 이 성은 동서를 연결하는 장축의 성으로 길이가 길어 만리성으로도 불린다. 『호남읍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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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중기 여수의 북쪽 천성산(天聖山)[324m] 기슭에 윗마을[上村], 가운데마을[中村], 아랫마을[下村]의 3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만흥개의 옆이 되므로 이들을 합하여 만흥(萬興)이라 한 데서 만흥동이 유래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만흥개, 만흥, 만성, 만성리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평리(萬平里)와 만중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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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중기 여수의 북쪽 천성산(天聖山)[324m] 기슭에 윗마을[上村], 가운데마을[中村], 아랫마을[下村]의 3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만흥개의 옆이 되므로 이들을 합하여 만흥(萬興)이라 한 데서 만흥동이 유래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만흥개, 만흥, 만성, 만성리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평리(萬平里)와 만중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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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 만성리검은모래해변에서 매년 음력 4월 20일 열렸던 모래 찜질 축제.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의 검은모래는 낱알이 일반 모래에 비해 4~5배 정도 굵기 때문에 태양열을 흡수해 방사하는 양이 아주 많다. 적당히 해수를 머금은 모래에 잘 달구어진 열기가 인체에 고루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검은모래로 찜질을 하면 온기와 쾌적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또한 혈액 순환을 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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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있는 해수욕장. 전라남도 여수시의 북동쪽 해변 지역에 있는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은 일제강점기에 개장하였으며, 해수욕장이 있는 지역의 명칭이 만성리여서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이라 한다. 만성리검은모래해변은 일제강점기에 해수욕장으로 지정되었으며, 1930년에 개통한 전라선의 만성역이 정차하였기에 기차를 이용한 여행객이 많았다. 최근까지 여름철에는 만성역이 간이역으로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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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있는 봉화산과 호암산 일대에서 발원하여 여수만으로 흘러드는 하천. 봉화산 산록과 호암산 일대에서 발원한 만성천은 만흥동 일대에 곡저평야를 이루며, 만성리 해수욕장을 지나 여수만으로 유입된다. 자세한 명칭유래는 알 수 없으나, 만성천이 흐르는 지역 명칭인 옛 만성리[현 만흥동]의 마을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에 중성화산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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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죽포리에 있는 조선 후기 다리. 마주교는 1666년(헌종 12)에 마을 주민 김석휴 등 8명이 중심이 되어 주민들의 편익을 위해 만들어졌다. 큰 돌을 놓아 만들었다고 하여 독다리로 불리기도 한다. 1973년 새마을사업으로 복개되었다. 다리의 아랫부분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동쪽에는 다리를 설치하면서 판 우물이 있다. 마주교 옆에는 다리를 만든 8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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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중기 여수의 북쪽 천성산(天聖山)[324m] 기슭에 윗마을[上村], 가운데마을[中村], 아랫마을[下村]의 3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만흥개의 옆이 되므로 이들을 합하여 만흥(萬興)이라 한 데서 만흥동이 유래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만흥개, 만흥, 만성, 만성리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평리(萬平里)와 만중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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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중기 여수의 북쪽 천성산(天聖山)[324m] 기슭에 윗마을[上村], 가운데마을[中村], 아랫마을[下村]의 3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만흥개의 옆이 되므로 이들을 합하여 만흥(萬興)이라 한 데서 만흥동이 유래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만흥개, 만흥, 만성, 만성리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평리(萬平里)와 만중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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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 조선 중기 여수의 북쪽 천성산(天聖山)[324m] 기슭에 윗마을[上村], 가운데마을[中村], 아랫마을[下村]의 3개 자연마을이 있었는데, 만흥개의 옆이 되므로 이들을 합하여 만흥(萬興)이라 한 데서 만흥동이 유래하였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만흥개, 만흥, 만성, 만성리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만평리(萬平里)와 만중리(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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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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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있는 총 3종의 보호수. 만흥동 보호수는 노거수로서 1982년 12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만흥동 보호수로는 느티나무와 서어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높이 26m에 이르며, 산기슭이나 골짜기 또는 마을 부근의 흙이 깊고 진 땅에서 자생한다. 서어나무는 자작나무과의 낙엽 교목으로 높이 15m에 이르며, 산지에서 자생한다. 만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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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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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만흥동에 있는 조선시대 절터. 만흥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1780년 4월에 기록된 흥국사 「선당 수집상량기(禪堂 修葺上樑記)」 시주록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1780년 이전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이 절이 표기되어 있으나 1902년 발간된 『여수읍지』에는 이미 폐사된 것으로 나타나 있어 1800년대 말에 해체된 흥국사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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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벌구마을에서 말처럼 생긴 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여수·여천향토지편찬위원회가 1982년 발간한 『여수여천향토지』, 여천군이 1991년 발간한 『마을유래지』, 화양면지발간추진위원회가 2000년 발간한 『화양면지』 등에 수록되어 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사람이 말머리 모양의 바위 위에 올라가 놀다가 말의 목 부분을 돌로 쳐서 그만 끊어 버리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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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종합경기장. 망마경기장은 여수 지역 주민들의 체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여수시가 사업비 15,334백만 원을 투입하여 1997년 2월 4일 건립하였다. 망마경기장은 부지 면적 144,944㎡, 건축 연면적 16,366㎡ 규모이다. 그중 주경기장은 제1종 육상 경기장으로 부지 면적 96,322㎡, 건축 연면적 9,976㎡이다. 잔디 축구장은 7,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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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근린공원. 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면 지역이 여수산업단지의 배후도시로 개발되면서 여천지구출장소를 거쳐 지금의 시전동이 되었다. 그에 따라 시가지 남동쪽을 감싸 안고 있는 지형적인 특성을 살려 공원지구로 고시되었다. 1977년 시가지 조성 초기에 공원지구로 고시되었으나, 등산로와 체육 시설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완전히 조성되지 않았다. 이순신이 군마를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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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산. 망마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선소를 수비하기 위한 기마병 훈련장이 산허리를 돌며 흔적이 남아 있다. 병사들이 훈련을 할 때는 처음 홍의(紅衣)를 입고 몇 바퀴 산정을 돌고난 후 청의(靑衣)로 갈아입고 다시 한차례 돌고 백의(白衣)로 갈아입었다고 전해진다. 산정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말채를 심으면서 ‘이 말채가 죽으면 나의 영혼이 죽은 줄 알라’하였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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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 망마산에 전해 내려오는 동백나무에 관한 이야기. 현재 시전동 선소 뒷산이 망마산이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은 자신의 어머니가 기거하고 있는 송현마을에서 가까운 망마산에 기마병을 조련하려고 치마장(馳馬場)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봉우리 중앙에다 훈련대(訓練臺)도 만들었으나 지금은 기단석만 남아 있다. 충무공 이순신은 임진왜란 중 기마병의 훈련을 끝내고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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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에 있는 산 망향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이 설치한 포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해안을 따라서 진지를 구축하였다. 일본 군함과 수상 비행기가 정박할 수 있던 시설이었으며, 바닷가는 10~15m 깊이의 굴이 여러 개 있는데,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창고, 대피소, 포대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굴이다. 자세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동도리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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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동도리에 있는 산 망향산에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군이 설치한 포대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해안을 따라서 진지를 구축하였다. 일본 군함과 수상 비행기가 정박할 수 있던 시설이었으며, 바닷가는 10~15m 깊이의 굴이 여러 개 있는데, 태평양전쟁 때 일본군이 창고, 대피소, 포대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굴이다. 자세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동도리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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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행해지는 보름 명절의 하나. 백중은 음력 7월 15일을 말한다. 원래는 백종(百種)이었고, 중원(中元) 혹은 망혼일(亡魂日)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백종은 이 무렵에 과실과 소채(蔬菜)가 많이 나와 옛날에는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때는 달과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일직선상에 있으면서 달과 지구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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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 청년들이 조직하였던 사회 운동 단체. 3·1운동 때에 서울에서 유학하던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학생들은 여수향우회를 만들어 활약하였다. 3·1운동의 후유증으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하고 피신한 여수향우회 소속 학생들은 구심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 여수 지역에 은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이 모여 서로 맞잡고 돕자는 뜻으로 맞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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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주삼동 봉계마을에서 질병을 막기 위하여 명절과 세시 때 행해온 농악. 여수시 주삼동 봉계마을은 전봉산 아래 봉강(鳳崗)마을과 호랑산 아래 계원(溪原)마을이 1914년부터 합해져 형성되었다. 이 마을에서는 예부터 설·보름·추석 등 명절과 세시 때마다 매구를 쳤다. 1995년 10월 23일 김용린[남, 63세, 상쇠]과 김균두[남, 55세] 등의 제보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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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유송리에 있는 산. 확실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산 아래 마을 이름이 송고(松高)여서 송고마을의 뒷산이란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금오도에서는 매봉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산 정상을 중심으로 사방의 경사가 가파르며, 북쪽 송고와 남쪽 불무골 쪽으로는 하천과 취락, 그리고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기반암인 화강암이 차별 침식에 의해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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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개인이나 조직이 기계의 도움으로 익명의 집단 혹은 대중에게 음성과 영상을 통해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는 대중매체의 총칭.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하거나 시청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방송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2월 일제에 의해 경성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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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안고 살아가는 남해안 어촌 마을 대부분은 마을 살림살이가 넉넉한 편이다. 그렇다고 개개인의 소득이 높다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를 운영하는 마을 살림살이 이야기다. 육지 지역 마을들은 필요한 경비를 산출하여 그것을 마을 가구 수로 나누어 분담하지만, 바닷가 어촌들은 어촌계나 부녀회에서 패류 등을 공동으로 채취하여 마을 경비를 마련하고 나머지 소득은 개인별로 나누는 방식을 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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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상암동 당내마을에서 마지막 논매기를 끝내고 벌인 굿. 여수시 상암동 당내마을에서는 마지막 논매기를 ‘맹경’이라 했다. 맹경을 할 때는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풍물을 치면서 공동으로 논매기를 한다. 하지를 전후해서 모를 심고, 한달 정도 뒤부터 논을 매는데, 상암동에서는 3~4 차례에 걸쳐 논을 맸다. 흔히 그것을 초벌, 재벌, 중벌, 맘논으로 부르는데, 상암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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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에서 요즈음처럼 하루 세 끼 걱정 없이 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생존해 있는 노인들 말에 의하면 정말로 먹기 위해서 살았다고들 한다. 노인들이 기억하는 어려운 시기는, 물론 그 이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까지 거슬려 올라간다. 본래 한국 농촌 경제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소수의 지주들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었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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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젓새우 등을 잡는 데 쓰는 무동력 배. 멍텅구리배는 해선망 또는 부선저인망이라 부르는 젓새우잡이 무동력 선박이다. 그물의 설치에 따라 중선·꽁댕이배·옆치기배 등의 3종류로 나뉘는데, 중선이 가장 오래되고 널리 알려졌다.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여수 지역에서 새우잡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860년대 이전부터 중선을 이용한 어구 어법이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어민들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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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신기동에 있는 복합 영화 상영관 메가박스의 여수지점. 씨너스는 2004년 8월 설립된 복합 영화 상영관 체인이었다. 대부분의 복합 영화 상영관 체인들이 대기업의 자본력을 바탕으로 설립된 것과는 달리 씨너스는 대기업의 자본 없이 설립된 것이 특징이다. 씨너스 본사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에 있었고, 대표는 여환주가 맡고 있었다. 상호명인 씨너스는 라틴어로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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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의 치소가 그 지역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행정의 치소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그 지역의 발전과도 관련이 있게 마련이다. 1897년 5월 여수군이 설군되었을 당시에는 면 소재지가 덕양에서 남쪽 방향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는 지금의 관기리에 소재하고 있었다. 설군 당시 면 소재지였던 관기리에서 떨어져 있었던 지금의 덕양 일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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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연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바닷물고기. 멸치는 경골어류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멸치속 어류는 8종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종들은 연안에 서식한다. 사할린섬 남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연근해에 분포한다. 『우해이어보』에서는 멸아(鱴兒), 『자산어보』에서는 멸어(鱴魚)라 하였고, 한자어로는 추어(鰍魚)라고 하였다. 『재물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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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연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바닷물고기. 멸치는 경골어류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멸치속 어류는 8종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종들은 연안에 서식한다. 사할린섬 남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연근해에 분포한다. 『우해이어보』에서는 멸아(鱴兒), 『자산어보』에서는 멸어(鱴魚)라 하였고, 한자어로는 추어(鰍魚)라고 하였다. 『재물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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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연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바닷물고기. 멸치는 경골어류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멸치속 어류는 8종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종들은 연안에 서식한다. 사할린섬 남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연근해에 분포한다. 『우해이어보』에서는 멸아(鱴兒), 『자산어보』에서는 멸어(鱴魚)라 하였고, 한자어로는 추어(鰍魚)라고 하였다. 『재물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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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연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바닷물고기. 멸치는 경골어류 청어목 멸치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전 세계적으로 멸치속 어류는 8종이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의 종들은 연안에 서식한다. 사할린섬 남부, 일본, 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의 연근해에 분포한다. 『우해이어보』에서는 멸아(鱴兒), 『자산어보』에서는 멸어(鱴魚)라 하였고, 한자어로는 추어(鰍魚)라고 하였다. 『재물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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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남도 여수에서 선정을 베풀었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字)는 명서(鳴瑞), 호는 은봉(隱峯). 1640년 지평을 지낸 이완(李完)의 첫째아들이다. 이봉징은 1675년(숙종 1)에 증광시(增廣試)에 장원하여 수찬(修撰)·사인(舍人)을 거쳐 1688년(숙종 14)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제수받았다. 순천이나 여수가 전라좌도수군절도영이 율촌에 밤이 많다 하여 세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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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한국 고유의 명절에 특별히 만들어 먹는 음식. 우리 조상들은 계절에 따라 좋은 날을 택하여 명절이라 하였다. 명절에는 갖가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 간의 정을 나누어 왔다. 각 명절에 마련하는 음식은 다음과 같다. 여수의 차례 상에는 일반적으로 메(제삿밥)와 함께 굴비, 양태, 문어, 도다리, 상어 등 어물을 중심으로 올린다.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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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섬. 섬의 형상이 모기처럼 생긴 데서 유래되었다. 최고 지점은 73m이다. 정상부 북쪽 해안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남쪽 해안은 급사면을 이루며, 해안에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산면 거문도 동쪽 25㎞ 떨어진 곳에 있으며, 면적 0.0231㎢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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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의 어로 활동은 가두리 해상 양식과 어선 어업이 주종이다. 30여 호가 해상 가두리로 우럭과 돔을 양식하고 있다. 해상 가두리 양식면적은 6㏊ 정도이다. 가두리 양식 외에 ‘간여’ 안팎에서 고기를 잡는 어선 어업에 종사하는 어가도 있다. 작업 인원은 2~3명인데, 여수 시내에서 선원을 구해와 조업 후 6:4나 5:5로 나눠먹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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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오천동에 있는 해수욕장. 전라남도 여수시 오천동에 있는 해변 마을 이름인 모사금에서 유래한 해수욕장 명칭이다. 모사금은 모살과 기미가 합쳐진 말로 모살은 모래를 뜻하는 여수 지방 방언, 기미는 해안이란 뜻이다. 모사금해수욕장은 모래가 많은 해변을 지칭하기도 한다. 모사금해수욕장은 마을 주민들만 이용하던 곳이었으나, 오천동 지역의 도로가 포장되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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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원포리에 있는 섬. 본래 썰물이 되면 섬으로 건너다닐 수 있는 목이 생겨 목섬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로 표기하면서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하여 나무 목(木) 자로 쓴 데서 유래되었다. 최고 지점은 해발 20m이며, 해안 주변으로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토양은 신생대 제4기 과거 고온 다습한 기후 환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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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초도리 대동마을 뒷산에 있는 모자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초도는 임진왜란 당시 군마의 마초를 공급해 주던 지역으로 임진왜란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모자바위 전설」은 삼산면 초도리 대동마을 북동쪽 예미마을에서 북쪽 약 500m 지점에 있는 일명 수리망대라고도 하는 모자바위와 독수리에 관한 전설이다. 「모자바위 전설」은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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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국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조선시대 국동과 봉산동 사이는 굴강 형태의 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목덕골, 목대 등으로 불러왔던 이곳은 만의 서쪽을 감싸는 반달 모양의 돌출형 지형이 시작되는 목에 해당되는 지역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1970년대 어항단지와 수산물 가공단지의 조성으로 매립되어 지금은 그 형태를 알기가 어렵게 변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인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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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국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조선시대 국동과 봉산동 사이는 굴강 형태의 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목덕골, 목대 등으로 불러왔던 이곳은 만의 서쪽을 감싸는 반달 모양의 돌출형 지형이 시작되는 목에 해당되는 지역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1970년대 어항단지와 수산물 가공단지의 조성으로 매립되어 지금은 그 형태를 알기가 어렵게 변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인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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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국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조선시대 국동과 봉산동 사이는 굴강 형태의 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목덕골, 목대 등으로 불러왔던 이곳은 만의 서쪽을 감싸는 반달 모양의 돌출형 지형이 시작되는 목에 해당되는 지역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1970년대 어항단지와 수산물 가공단지의 조성으로 매립되어 지금은 그 형태를 알기가 어렵게 변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인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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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원포리에 있는 섬. 본래 썰물이 되면 섬으로 건너다닐 수 있는 목이 생겨 목섬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로 표기하면서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하여 나무 목(木) 자로 쓴 데서 유래되었다. 최고 지점은 해발 20m이며, 해안 주변으로 간석지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토양은 신생대 제4기 과거 고온 다습한 기후 환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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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가축 사육을 목적으로 만든 목초지, 건물, 목책 등을 설비한 토지. 목장은 국방용·교통용·식용 등으로 일정 동물을 사육하는 곳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목장은 병조 사복시(司僕寺) 소관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별도로 감목관을 두었다가 후에는 지방 수령이 맡거나 도서 지방에 수군이 있는 경우에 해당 수군의 장이 겸하게 하였다. 감목관 아래에는 감목을 두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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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은 육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도 바다목장이라는 것이 있다.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안도에도 옛날 황금 어장을 형성했던 이야포만에 바다목장이 있다. 이 바다목장은 섬사람들의 어려운 경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며 안도의 미래이기도 하다. 인구 증가와 소득 향상으로 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으나 배타적 경제 수역(EEZ) 설정과 수산 자원 남획 등으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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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국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 조선시대 국동과 봉산동 사이는 굴강 형태의 만을 이루고 있었으며 목덕골, 목대 등으로 불러왔던 이곳은 만의 서쪽을 감싸는 반달 모양의 돌출형 지형이 시작되는 목에 해당되는 지역이어서 붙여진 지명이다. 1970년대 어항단지와 수산물 가공단지의 조성으로 매립되어 지금은 그 형태를 알기가 어렵게 변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광복 후인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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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빈을 시조로 하고 장관조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목천장씨의 시조는 고려조에서 공을 세워 목천군(木川君)에 봉해진 장빈(張彬)이다. 그 후 세계가 실전되어 그의 후손들은 장지(張池)를 일세조(一世祖)로 하고 목천(木川)을 본관으로 하였다 1790년대에 장관조(張寬祖)가 순천에서 옮겨 와 여수시 삼일동 상적마을에 정착했다. 장관조는 시조 장빈의 17세손이며 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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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관문동에 있던 옛 지명. 전라좌수영의 연못인 덕지(德池)가 있어서 유래된 지명이며, 덕지가 있던 동문 부근이 언덕형의 등성이를 이루고 있어 연못이 있는 등성이의 뜻으로 못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좌수영성을 허물게 되자 여수청년회 회원들이 이 연못을 사들여서 매립을 하여 여수청년회관이 만들어졌다. 이곳에서 여수청년회 활동인 맞돕회가 결성되어 활동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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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섬. 섬의 모양이 고양이처럼 생겼다 하여 묘도 또는 고양이섬이라 한다. 우리말 이름에 해당하는 섬 명칭은 ‘괴섬’으로 알려져 있다. 주변의 쥐섬인 서치도나 소섬인 우순도 등의 이름이 연상되어 지어진 풍수지리를 곁들인 믿음으로 이 섬에는 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전해 왔으며, 실제 이 믿음이 현실화되어 지금 서씨는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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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위치한 산.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섬 좌측 중앙에 위치한 산이다. 해발 246.4m의 육산으로 식생의 밀도가 높다. 경·위도의 절대적 위치는 북위 34°53′04″, 동경 127°42′12″에 해당된다. 묘도의 진산으로 임진왜란 당시 활용되었던 봉수대 터가 산정부에 남아 있다. 산 정상부에서는 광양만 일대가 잘 조망되어 주변 경관을 한 눈에 파악하기에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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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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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월내동 여수국가산업단지와 묘도동 묘도 사이를 잇는 사장교. 묘도대교 길이는 1,410m, 너비는 29.1m이며, 주탑과 주탑 사이 길이를 나타내는 주경간은 430m로 왕복 4차선 강합성 사장교이다. 국내 최초로 안전성이 뛰어난 정착 거더(定着 girder) 강합성 사장교로 설계되었다. 여수국가산업단지와 광양국가산업단지 간 물류 비용 절감 및 2012여수세계박람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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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여수 지역 북쪽에 있는 섬인 묘도는 광양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으로 노량해전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임진왜란 유적지이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최 확정으로 여수 관광의 가장 큰 난제 중 하나인 도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하여 광양에서 묘도를 거쳐 여수시에 이르는 대교 건설이 확정되어 공사 중이다. 묘도(猫島)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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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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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수령이 250년 정도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의 낙엽 활엽 교목으로 우리나라 평안남도 및 함경남도 이남의 해발 500~1200m에 자생하며 일본, 중국, 타이완 등지에도 분포한다. 원대가 갈라지는 것이 많고 나무껍질은 오랫동안 평활하지만 비늘처럼 떨어지면 껍질눈이 옆으로 발달한다.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8m, 나무갓 너비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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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묘읍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묘도동 묘읍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0시부터 오전 6시 30분까지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마을 제의로, 이를 ‘당산제’라 부른다. 제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 자시(0시) 경에 마을 뒤편 밭 한 가운데에 있는 돌(입석)에서 모신다. 이를 ‘원당산’이라 한다. 원당산은 마을 뒤편 산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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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묘도리 유두산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묘도동 산성의 축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체성이 거의 무너져 있어서 성곽의 초축 시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다. 다만, 출토 유물 가운데 기와류가 고려시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 산성은 고려시대와 그 이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뿐이다. 이 산성에서는 『일본서기(日本書紀)』신공기 49년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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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온동마을에서 달집을 태우며 놀이를 벌이는 정월 대보름 행사. 1995년 1월 10일 마을회관 노인당에서 정영주[남, 85세]·방선주[남, 74세]·방화실[남, 71세] 등이 제보한 바에 의하면, 달집태우기는 정월 보름날 저녁에 달이 떠오르기 전에 미리 불을 붙이며 노는 큰 축제였다. 이 놀이의 참여자들은 주로 마을의 총각들이다. 준비부터 달집태우기까지 전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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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온동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묘도동 온동 당산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지내는 제의인데, 제를 지내는 시간은 자정경이다. 제주는 제를 모시기 사흘 전에 마을회의를 통해 선정한다. 선정하는 기준은 생기복덕을 맞춰서 좋은 사람으로 내외간을 선정한다. 예전에는 제주로 선정되면 제를 모시는 날까지 근신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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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온동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하던 줄다리기 놀이. 1995년 1월 10일 마을회관 노인당에서 정영주[남, 85세]·방선주[남, 74세]·방화실[남, 71세] 등이 제보한 바에 의하면, 묘도동 온동 줄다리기는 해방 직전까지 정월 보름날이면 했다. 줄다리기 줄은 쌍줄로 드린다. 동편이 암줄이 되고 서편이 수줄이 된다. 곁줄을 달며, 줄 하나의 길이는 약 50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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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읍동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하던 줄다리기 놀이. 1995년 1월 10일 마을회관 노인당에서 정영주[남, 85세]·방선주[남, 74세]·방화실[남, 71세] 등이 제보한 바에 의하면,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읍동마을에서 약 60여 년 전까지 정월대보름이면 줄다리기가 매우 성했다고 한다. 놀이에 쓸 줄은 정월 14일경에 드린다. 줄은 외줄로 드리는데, 아침부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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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돌무덤이다. 고인돌 상석은 대부분 무덤의 봉분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으나, 어떤 집단의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 또는 기념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여수 지역의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이 변화된 것으로, 넓고 판판한 1매의 상석을 지석이 받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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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묘도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돌산군 태인면 관할에서 여수군 삼일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여수군 삼일면 묘도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전라남도 여천군 삼일읍 묘도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1986년 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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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는 묘도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돌산군 태인면 관할에서 여수군 삼일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여수군 삼일면 묘도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1980년 12월 1일 전라남도 여천군 삼일읍 묘도리로 이름이 바뀌었고, 1986년 1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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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있었던 공립 중학교 분교장. 애국인·실력인·협동인·과학인·건강인 육성을 목표로 실력 있는 학생, 존경받는 교사, 인정받는 학교로서 세계화를 주도할 실력 삼일인(實力 三一人) 양성을 교육목표로 하였다. 1982년 1월 30일 3학급으로 삼일중학교 묘도분교장 설립 인가를 받아 4월 1일 학교 문을 열었으나 2010년 2월 졸업생 배출을 마지막으로 폐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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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 묘도리 유두산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묘도동 산성의 축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으며, 체성이 거의 무너져 있어서 성곽의 초축 시기를 알 수 있는 단서가 거의 없다. 다만, 출토 유물 가운데 기와류가 고려시대로 추정되기 때문에 이 산성은 고려시대와 그 이후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뿐이다. 이 산성에서는 『일본서기(日本書紀)』신공기 49년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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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묘도동에 전해 내려오는 명나라 장수 진린에 관한 이야기. 묘도는 광양만의 중앙에 자리 잡은 섬으로 정유재란 때 명나라 제독 진린(陳璘)[1543~1607]과 관련된 지명과 유적이 남아 있다. 묘도에서 광양항이 바라다보이는 평암산을 배산으로 서북으로 터져 있는 골에 터를 잡은 도독마을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나 『광동진씨족보』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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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선원동에 있는 산. 신선이 춤추는 것 같이 보이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가 되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 동쪽은 경사가 가파르나 서쪽은 완만한 편이다. 호남정맥이 지나는 순천 계족산에서 분기한 여수기맥이 이곳 무선산을 지나 백야곶까지 이어진다. 주요 식생은 동백나무와 소나무 등 혼합림이 분포한다. 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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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에 있는 궁도장. 망마산(望馬山)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기마병을 이끌고 활쏘기 훈련을 하던 장소로, 이순신 장군의 얼이 담긴 유서 깊은 곳이다. 이러한 지역에 궁도장이 없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강윤복은 1984년 8월 정상호·박화랑·신채식·김선섭·김종순·윤혁준 등과 함께 궁도 모임 총회를 열고 여수시 학동 43-9번지[시청로 52] 현 여수소방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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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에 있는 공립 중학교. 남을 배려하고 나눌 줄 아는 사람, 책임을 다하는 사람, 지식을 창의적으로 융합할 줄 아는 사람, 꿈을 가지고 잠재력을 키우는 사람, 조화로운 심신을 단련하는 사람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2000년 3월 1일 문을 열었다. 초대 교장은 정용인이다. 2021년 2월 4일 제19회 졸업식을 통해 163명이 졸업하여 총 5,757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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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장동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공공질서 존중으로 공동체에 협력하는 어린이, 기초·기본 다지기로 새 사고를 창출하는 어린이, 여러 가지 체험으로 재능을 찾아내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95년 3월 1일 여천북국민학교로 문을 열었다. 초대 교장은 박형관이다. 1996년 3월 1일 여천북초등학교, 1997년 3월 1일 여천무선초등학교로 학교 이름이 바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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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에 있는 육계사주. 이곳은 무실목·무술목 등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섬멸한 해가 무술년(戊戌年)이어서 전적을 기리고자 무술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왜군의 피로 붉게 물든 냇물이 피내로 되었다고 하며, 피내는 ‘무서운 목’이라는 뜻의 무술목이라고도 한다. 소나무와 몽돌 해안으로 이루어진 무슬해수욕장 주변의 대미산(大美山)과 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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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에 있는 육계사주. 이곳은 무실목·무술목 등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섬멸한 해가 무술년(戊戌年)이어서 전적을 기리고자 무술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왜군의 피로 붉게 물든 냇물이 피내로 되었다고 하며, 피내는 ‘무서운 목’이라는 뜻의 무술목이라고도 한다. 소나무와 몽돌 해안으로 이루어진 무슬해수욕장 주변의 대미산(大美山)과 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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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평사리에 있는 육계사주. 이곳은 무실목·무술목 등으로 불린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섬멸한 해가 무술년(戊戌年)이어서 전적을 기리고자 무술목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왜군의 피로 붉게 물든 냇물이 피내로 되었다고 하며, 피내는 ‘무서운 목’이라는 뜻의 무술목이라고도 한다. 소나무와 몽돌 해안으로 이루어진 무슬해수욕장 주변의 대미산(大美山)과 소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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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이루어지는 수출 및 수입 활동. 무역은 한 국가의 기업 또는 개인과 외국의 기업 또는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상거래 행위, 즉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경제적 거래를 총칭하는 말이다. 초창기의 무역은 주로 상품 거래만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현재에는 단순한 상품 교환과 같은 보이는 무역(visible trade)뿐만 아니라 기술, 용역 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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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음악에 맞추어 율동적인 동작으로 감정과 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분야.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대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1950~1960년대 여수의 무용계는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이 때문에 1949년과 1953년에 열렸던 조용자와 김미자의 무용발표회는 당시 여수 지역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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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무신. 본관은 전주. 자는 입부(立夫). 태종(太宗)의 아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진(李眞)이고, 어머니는 복주김씨(福州金氏)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판관(義州判官), 혜산진첨절제사(惠山鎭僉節制使), 강진현감(康津縣監)을 거쳐 온성도호판관(穩城都護判官)이 되었다. 이순신이 여수와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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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에 있는 조선 중기 돌다리. 흥국사에는 본래 일주문이 없었다. 사적기에 의하면 천황문 아래 영성문(迎聖門)이 정문(正門)의 역할을 해 왔다. 이 영성문은 수박다리[水薄다리: 나무로 시내를 건너질러 만든 다리]로서 성인(聖人)을 맞이한다는 의미가 있다. 즉, 여수 흥국사 홍교를 건넘으로써 세속을 떠나 영성문을 통과하면 사천왕의 보호를 받는 불법의 사계(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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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활동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원. 자는 사박(史博), 호는 묵암(黙庵). 성균관사성 정득우(丁得雨)의 7세손으로, 조부는 월천공 정계생(丁戒生)이고, 아버지는 통사랑 정순원(丁舜元)이다. 아들은 정언신(丁彦愼)이고, 임진왜란 당시 함께 참여했던 정철(丁哲)은 형이요, 정춘(丁春)은 종형(從兄), 정대수(丁大水)는 종질(從姪)이다. 15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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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양면의 입구에 있는 창무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도 ‘문꾸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문꾸지’는 ‘문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화양면 지역에 곡화목장이 설치되어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송소마을에서 오천마을에 걸쳐 성을 쌓고, 성문을 이 마을에 두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창무’란 이름도 ‘문꾸지’와 관련이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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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균(文均)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 동경 소재 동양대학 경제학부 학생이던 1928년 7월 12일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면의 청년동맹회관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여 ‘임시대회를 맞아’라고 하는 취지를 담은 문서를 제작하여 회원들에게 배부하였고, 7월 22일에는 동회관에서 개최한 청년동맹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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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양면의 입구에 있는 창무마을은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도 ‘문꾸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문꾸지’는 ‘문이 있는 곳’이란 뜻이다. 조선시대 화양면 지역에 곡화목장이 설치되어 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송소마을에서 오천마을에 걸쳐 성을 쌓고, 성문을 이 마을에 두었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이다. 지금의 ‘창무’란 이름도 ‘문꾸지’와 관련이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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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있는 섬. 섬의 형상이 모기처럼 생긴 데서 유래되었다. 최고 지점은 73m이다. 정상부 북쪽 해안 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남쪽 해안은 급사면을 이루며, 해안에 해식애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화성암인 중성화산암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삼산면 거문도 동쪽 25㎞ 떨어진 곳에 있으며, 면적 0.0231㎢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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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문균(文均)은 1930년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항일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일본 동경 소재 동양대학 경제학부 학생이던 1928년 7월 12일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면의 청년동맹회관에서 한국어를 사용하여 ‘임시대회를 맞아’라고 하는 취지를 담은 문서를 제작하여 회원들에게 배부하였고, 7월 22일에는 동회관에서 개최한 청년동맹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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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문관과 무관 혹은 이에 합당한 대접을 받은 인물. 흔히, 문무관인이라 할 때는 등과(登科)한 인물이거나 가자(加資), 증직(贈職), 수직(壽職)의 시혜를 받은 인물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여수 출신으로서 등과를 했거나 이에 합당한 대접을 받은 인물로는 다음과 같다. 과거는 크게 문과, 무과, 잡과로 나누어지고, 문과는 다시 소과와 대과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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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문수동은 허문마을과 소미마을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마을 이름이다. 허문마을은 허미 또는 허문쟁이라고 불렸는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허씨와 문씨가 마을을 이루어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가졌다고 한다. 여수 지역에서 마을 이름이 사는 사람의 성씨로 이루어진 경우는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이목리의 전동마을이나 여수시 돌산읍 금천마을의 옛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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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문수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돌산군 태인면 관할에서 여수군 삼일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여수시 승격에 따라 문수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시·여천군·여수시의 삼여통합으로 여수시 문수동사무소가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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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 1987년 여수시청이 관문동에서 여서동으로 이전하면서 신시가지 개발로 많은 인구가 유입되어 신자 수가 늘어나자 신앙 공동체 설립과 지역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설립되었다. 1987년 11월 광주대교구에서 1,652㎡ 대지를 매입하여 1988년 2월 5일 문수동성당을 설립하였다. 초대 신부로 동산동성당에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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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여수우체국 산하 우편·체신 금융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우체국을 관할하는 지방우정청과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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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문수동의 행정 업무를 맡아보는 기관. 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돌산군 태인면 관할에서 여수군 삼일면 관할이 되었고, 1949년 여수시 승격에 따라 문수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천시·여천군·여수시의 삼여통합으로 여수시 문수동사무소가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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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사회 복지 시설. 인간 생명의 절대성과 존엄성을 바탕으로 참다운 인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심신의 건강과 자립 기반을 이룩하고 문화 예술을 통해 정서 안정에 도움을 주며, 지역 문제를 생각하여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함으로써 개인과 가족 그리고 지역 복지 증진에 기어코자 한다. 1994년 3월 22일 여수시와 사회복지법인인 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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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문수동에 있는 사회 복지 시설. 인간 생명의 절대성과 존엄성을 바탕으로 참다운 인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심신의 건강과 자립 기반을 이룩하고 문화 예술을 통해 정서 안정에 도움을 주며, 지역 문제를 생각하여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함으로써 개인과 가족 그리고 지역 복지 증진에 기어코자 한다. 1994년 3월 22일 여수시와 사회복지법인인 대한불교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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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출입문에 있으면서 우환이 들지 못하게 지켜 준다는 신. 수문신은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신앙으로 집안을 드나드는 대문을 관장하기 때문에 ‘문신’이라고도 부른다. 수문신이 필요했던 것은 모든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대문을 잘 단속하여 부정한 것을 막음으로써 가정이 평화롭고 유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수에서는 신체가 따로 없다. 여수의 벅수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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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문어를 잡기 위해 단지를 이용해 만든 어구. 여러 개의 단지를 미끼 없이 일정 간격으로 밧줄에 묶어 해저에 투입해 두었다가, 일정한 시간 후에 인양하여 단지 속에 들어 있는 문어를 잡는 어구(漁具)이다. 문어가 은신처를 찾아 들어가서 상주하려는 성질을 이용한 것으로서, 단지를 해저에 투입해 두었다가 인양하여 단지 속의 문어를 어획한다. 단지를 인양할 때는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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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문어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음식. 문어는 다리가 8개 있는 연체동물의 일종이다. 바다 밑에 서식하며 연체동물과 갑각류 등을 먹고 산다. 위급할 때에는 검은 먹물을 뿜고 도망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몸이 큰 종류로서 몸길이 약 3m, 몸무게 약 41㎏에 달하는 것도 있다. 수명은 3~5년 정도이다. 몸 색깔은 일반적으로 붉은 갈색을 띠지만 상황에 따라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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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전승되는 소동패 놀이 중의 한 부분. 두레는 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공동 노동을 하기 위한 조직으로, 소동패와 대동패로 나눈다. 소동패는 16세부터 19세까지의 소년을, 대동패는 20세 이상의 청년을 가리킨다. 소동패가 생긴 까닭은 농사를 짓는 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으므로 어린 소년들의 노동력까지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소동패와 대동패는 조직의 규약대로 우두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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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 묘도 지역에서 시를 남긴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수가(粹可), 호는 교은(郊隱)·우곡(愚谷). 찬성사 정신중(鄭臣重)의 아들이다. 정이오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성품도 질박하고 겉치레가 없었다. 일찍이 목은(牧隱)과 포은(圃隱)의 문하(門下)에 들어 학문을 닦았는데 문장이 뛰어나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1374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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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학 동인회. 여수노을문학동인회는 문학의 생활화를 표방하고 지역 문학 활성화와 회원 상호간의 문예 창장력을 제고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89년 7월에 설립되었는데, 초기의 지도위원은 이용희, 회장은 박정래였다. 그 외에 주정섭, 김병민, 조현국 등이 창립을 주도하였다. 1989년 9월 동인지 『노을문학』을 창간하였으며, 2007년 10월에 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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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차달을 시조로 하고 유철신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여수시 세거 성씨. 시조 유차달(柳車達)은 고려 개국 공신으로 후삼국 통일 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8세손인 유경(柳璥)은 고려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 정권을 무너뜨림으로써 왕정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였다. 그 공으로 위사일등공신(衛社一等功臣)에 봉해졌으며, 유경(柳璥)의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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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姑蘇洞)에 있는 사적지. 전라좌수영 성체의 치성(雉城) 위에 세운 포루의 일종으로서 장대(將臺)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이 작전계획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여수 8경의 하나로, 옛날에는 고소정(姑蘇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에는 동문(東門) 좌포루(左鋪樓)가 5칸으로서 177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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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서 부녀자들이 물레질을 하면서 부르던 민요. 옷을 지어 입던 시절 물레질은 부녀자의 일과나 다름없었다. 물레를 잦을 때에는 노래를 하는데, 그 내용은 고달픈 노동에 관한 것, 사랑을 노래한 것, 여자의 한을 노래한 것 등이 대부분이다. 여수시에도 장단 없이 불렀던 「물레 노래」가 있다. 여수시 「물레 노래」는 순천대학교 남도문화연구소에서 1996년 발간한 『여수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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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을 비롯한 남해안에서 바다메기를 찐 음식. 바다메기는 학명이 아니라 어부들이 부르던 통칭이다. 민물메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바다메기라고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꼼치로, 쏨뱅이목 꼼치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지역에 따라 물메기, 물곰, 멍퉁이, 물텀벙이라고도 부른다. 최대 몸길이는 28㎝까지 성장하며 피부와 살이 연하여 일정한 모양을 갖추기가 어렵다. 몸과 머리는 옆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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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을 비롯한 남해안에서 바다메기를 탕으로 끓인 음식. 바다메기는 학명이 아니라 어부들이 부르던 통칭이다. 민물메기와 비슷하게 생겨서 바다메기라고 부르는데 정식 명칭은 꼼치로, 쏨뱅이목 꼼치과의 바닷물고기이다. 지역에 따라 물메기, 물곰, 멍퉁이, 물텀벙이라고도 부른다. 최대 몸길이는 28㎝까지 성장하며 피부와 살이 연하여 일정한 모양을 갖추기가 어렵다. 몸과 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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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갈치로 국을 끓인다면 “그 비린내 때문에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선입견을 갖는다. 갈치국은 거문도의 맛을 대표하는 갈치회와 함께 그 맛이 유명한 음식이다. 갈치의 싱싱함이 사라지면 조리를 할 수 없는 특성 때문에 재료의 신선도가 중요하여 갈치를 잡는 산지가 아니면 갈치국을 맛보기란 어려운 실정이다. 거문도 갈치국을 맛보는 데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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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병자호란 때 순절한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세신(世臣), 호는 미당(美堂). 낙촌공(駱村公) 박충원(朴忠元)의 후손이며, 증병조판서 박대복(朴大福)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때 참전하여 전공을 세운 아버지, 형 박홍주(朴弘冑)와 함께 일문삼충(一門三忠)으로 일컫는다. 박신충은 임진왜란이 이후 고돌산진장(古突山鎭將)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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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미평에는 양지(陽地), 소정(小亭), 평지(平地), 신죽(新竹), 죽림(竹林) 등의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가고 미평동의 이름만 불린다. 양지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마을이 자리 잡아 양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을 앞길 진터거리 중산 아래의 비탈을 빗골이라 하였다. 신죽마을은 신대밭골 또는 순대밭골이라 하였으며, 키가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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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 공간 및 시각의 미를 표현했거나 하는 행위 및 산물. 미술은 일정한 세계상이나 인간상을 미적·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그림·조각·건축·공예·서예 등을 총칭하는 말로 공간 예술 또는 조형 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전라남도 여수 지역에서의 미술은 주로 단체 및 협회 차원이나 개인 차원의 창작 활동의 형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1. 한국미술협회 여수지부 한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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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학동에 있는 미술 동호회. 미케네화우회는 그림이라는 동일한 취미 생활을 통하여 상호간 친목을 도모하고 삶의 질과 품격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미케네화실 이정자 화백을 주축으로 하여 1985년에 설립되었다. ‘미케네’라는 명칭은 ‘고대 문화‧예술양식’과 ‘미(美)를 캔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미케네화우회는 1987년에 창립전인 ‘제1회 미케네 화우전’을 미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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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미평에는 양지(陽地), 소정(小亭), 평지(平地), 신죽(新竹), 죽림(竹林) 등의 마을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가고 미평동의 이름만 불린다. 양지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마을이 자리 잡아 양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마을 앞길 진터거리 중산 아래의 비탈을 빗골이라 하였다. 신죽마을은 신대밭골 또는 순대밭골이라 하였으며, 키가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