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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2140
한자 五忠祠
영어의미역 Ochungsa Shrin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62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태균장여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당
양식 목조기와
건립시기/일시 1847년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3칸
소재지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 624 지도보기
소유자 창원정씨 문중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8월연표보기 - 오충사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95호 지정
문화재 지정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조선 후기 이순신과 압해정씨 창원맥의 4충신을 모신 사당.

[변천]

사충사는 원래 가곡사(佳谷祠)라 하였다. 가곡사는 1847년(헌종 13)에 정재선(丁載璿)이 유림의 지원을 받아 정철(丁哲)에게 충절공(忠節公)이란 시호가 내려진 것을 기리기 위해 가곡마을에 세웠다. 통훈대부 행 종부사주부 정창협(丁昌夾)[1798~1875]이 상량문과 예성축문을 지어 21년간 제향을 봉행하여 왔다. 1868년 조정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23년 이순신을 주벽으로 창원정씨정철(丁哲), 정춘(丁春), 정린(丁麟), 정대수(丁大水) 네 충신을 합사하여 오충사(五忠詞)로 복원되었다. 사우 건립이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순조 때부터였다. 오충사 건물은 1938년 일본 경찰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가 1962년 복원되었고, 1976년 중건이 이루어졌다. 2014년 여수시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되면서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1826년(순조 26) 4월, 성균관과 순천향교의 유림들 간에 통장(通章)이 오고가면서 사우 건립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 해 7, 8월에 광주향교, 남원향교, 전주향교가 순천향교에 통문을 보내오면서 사충사(四忠祠)의 건립 기반이 확립되었다. 1847년 전라도에 살고 있던 사림의 상언(上言)에 의해 가곡마을에 사충사가 건립되었으나 1868년의 사원 철폐령으로 인해 20여 년만에 훼철되고 말았다.

1856년(철종 7) 당시 의정부 우의정이었던 조두순(趙斗淳)에 의해 「정씨사충전」이 찬술되었고, 그 후 5년 뒤인 1861년(철종 12)에 충정공 정대수의 8세손 정재선(丁載璿)에 의해 『정씨사충실기(丁氏四忠實記)』가 편찬되었다. 또한 1869년(고종 6) 후손들에 의해 사충사 유허비(四忠祠 遺墟碑)가 세워졌다.

1977년 『오충사지(五忠祠誌)』가 편찬되어 전후의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2013년 압해정씨 창원맥 『월천공문중오백년사』가 편찬되었다.

[형태]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겹처마건물이다. 디딤돌을 각 문앞에 3개씩 놓고 낮은 죽담을 지나 디딤돌 3개를 각 문앞에 다시 장방형으로 놓았다. 이 외에 신당(神堂)인 오충사, 강당(講堂)인 월천재, 재실(齋室) 등의 건물이 있다. 신당에는 이순신을 비롯한 네 충신의 신위를 안치했다. 이순신을 중앙에, 나머지 4인을 좌우에 각 2위씩 모시고 있다. 여수시 문화재 지정 이후 대대적인 개보수을 단행하고 신위의 배치도 바뀌었다. 그동안 그림 영정으로 모시던 신위를 동판영정으로 제작하여 교체하였다. 가운데 이순신을 주신으로 모시고 향좌측에 영패를 그림으로 그려넣고 충절공 정철, 충숙공 정린순으로 배열하였다. 향우측에는 영패후를 그림으로 넣고 충의공 정춘, 충정공 정대수순으로 모셨다.

측면의 향 좌측에는 남소령기와 독전기를 그림으로 그려넣었다. 향우측에는 홍소령기와 곡나팔을 그려넣었다. 오충사의 외삼문은 충의문으로 솟을삼문으로 통판문이다. 내삼문은 필무문으로 맞배지붕에 통판문이다.

오충사 향우측에는 월천재(月川齋)가 있다. 월천재의 정문은 숭모문으로 맞배지붕이다. 건물 뒤쪽 언덕에는 월천공 후손들의 묘와 신도비등이 있다.

[현황]

2014년 여수시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매년 여수향교와 이충무공 유적 영구보존회에서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석채례를 올리고 있다.

2021년 8월 전라남도 지정문화재[문화재자료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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