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
-
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에 설치되었던 수군기지. 『문화유적총람』에는 1488년(성종 19)에 설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렵엔 이미 이곳에 진성이 축조되고 있었을 때이므로 성종조 설진설은 잘못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설진과 축성의 순서를 보면 고돌산진뿐만 아니라 어느 수군 기지든지 처음에는 진을 설치하고, 진을 설치할 때는 간단한 여사 정도만 만든다. 그러다가...
-
936년 후백제 멸망 이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남도 여수시의 역사. 개성 지역의 호족 세력으로 발전한 왕건(王建)은 918년 고려를 건국하였다. 935년 신라의 투항을 받아들인 후, 936년 후백제를 멸망시켜 후삼국을 완전히 통합하였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행정 구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개편하였다. 이에 통일신라시대에 해...
-
전라남도 여수시 여천동에 있는 조선 중기 성지. 석창성지는 여수 지역에서는 여수석보(麗水石堡)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여수석보는 삼국시대 백제의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해읍현 이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여수 지역의 치소로 추정되고 있다. 여수석보에 대한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목책으로 진흙을 바른 성이며, 둘레는 143보”라 하였다. 그러나 『신증동국여...
-
고려시대 전라남도 여수 지역의 행정구역. 918년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940년(태조 23)에 전국을 주(州)·부(府)·군(郡)·현(縣)으로 행정구역을 개혁하였다. 따라서 신라시대에 해읍현(海邑縣)[여수]·여산현(廬山縣)[돌산]이라 불리던 여수 지방의 이름도, 여수현(麗水縣)·돌산현(突山縣)으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으로 ‘여수(麗水)’라는 이름이 나오게 되나, 모두 승평군(昇平郡)...
-
방답진을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왜구가 있다.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왜구가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선을 주요 노략질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왜구에 대한 방어 대책은 개경이나 한양의 길목인 서해안과 남해 서부 해안에 군사력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기틀이 정비되는 세종에서 성종 때를 기점으로 수군 기지가 전진 배치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왜구의 침략이 남해안을 중심...
-
여수의 선박은 민가의 어선뿐만 아니라 전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예부터 여수가 어항이면서 조선 초기에 설진된 진례만호진·돌산포만호진·내례만호진, 성종 때 설진된 전라좌수영, 중종 때 설진된 방답첨사진의 관방이 있었고, 여수 근해에 풍부한 어장과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본격적으로 여객선이 운행된 것은 1950년대부터이며,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