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포만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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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 고내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 진성지(鎭城址). 고돌산성이 있던 돌산포만호진은 배후에 있는 수박등을 의지하여 산 위에서부터 바닷가의 완만한 경사진 곳을 이용하여 성곽을 두르고 서문, 북문, 수구문을 냈는데, 북쪽 고외마을로 통하는 길목에 북문을 내고, 남문과 수구문 밖이 바로 바다로 연결되어 그곳에 굴강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성(城)과 굴강의 옛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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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 용주리에 설치되었던 수군기지. 『문화유적총람』에는 1488년(성종 19)에 설진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무렵엔 이미 이곳에 진성이 축조되고 있었을 때이므로 성종조 설진설은 잘못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설진과 축성의 순서를 보면 고돌산진뿐만 아니라 어느 수군 기지든지 처음에는 진을 설치하고, 진을 설치할 때는 간단한 여사 정도만 만든다. 그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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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군내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석축성. 방답진성은 돌산도의 최남단에 자리하고 있다. 그 앞바다는 요형(凹形)의 만을 이루고 있다. 그 앞에 다시 송도가 가로막고 있어 천연의 양항을 이루고 있다. 왜구가 들어오는 길목이면서 왜구 방비의 요충지이다. 돌산포만호진(고돌산진)은 내륙과 접근되어 있어 왜구의 방비를 최전방으로 배치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돌산포만호진을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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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여수시 화양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주리라 하였다. 이 지역 포구의 이름이 예로부터 용진개 또는 용문포라고 한 데서 착안하여,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한다는 뜻을 담았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호구총수』에는 현재 용주리에 있는 마을로 호두·초말[화련]·고성내[고내]·고성외[고외]가 기록되어 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군 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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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 1392년 조선 개국시 여수현령 오흔인(吳欣仁)이 신왕조에 불복하였다 하여 1396년(태조 5)에 여수현과 돌산현이 폐지되고 순천도호부에 속한 여수면이 되었다. 소라포부곡은 소라포면, 율촌부곡은 율촌면이 되었으며 삼일포향은 삼일포면으로 개칭되었다. 또한 돌산현은 여수면으로 흡수되고, 인근 섬들은 낙안, 광양, 흥양[현 고흥] 등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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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선박은 민가의 어선뿐만 아니라 전함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이는 예부터 여수가 어항이면서 조선 초기에 설진된 진례만호진·돌산포만호진·내례만호진, 성종 때 설진된 전라좌수영, 중종 때 설진된 방답첨사진의 관방이 있었고, 여수 근해에 풍부한 어장과 수많은 섬들이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여수에서 본격적으로 여객선이 운행된 것은 1950년대부터이며,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