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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새가 알을 품은 집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300830
영어의미역 Folktale of the House Site Where the Poenix Hatched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준옥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설화|전설|풍수담
주요 등장인물 위효징|전주최씨
관련지명 봉두마을
모티프 유형 후손발복|지명유래담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위효징의 집터 이야기.

[개설]

위효징이 여수에 입향할 당시 지은 집에서 위효징의 후손들은 400년을 넘게 살아오다, 1982년 15대 종손 위상복에 이르러 집을 헐어 내고 새로 집을 짓게 되었다. 지금도 그 집 후원 한 복판에 반경 1m 정도의 원 안에는 아무리 눈이 와도 쌓이지 않고 그냥 녹아버린다고 한다. 그것은 봉황이 알을 품고 있어 따뜻한 기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봉황이 번식할 때는 봉황 수컷은 일정치 않지만 봉황 암컷은 1회에 한 마리씩만 태어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위효징의 후손은 현재 17대 손까지 내려 왔지만 여식은 모두 한 사람씩만 태어났다고 한다.

[채록/수집상황]

여수·여천향토지편찬위원회가 1992년 발간한 『여수·여천향토지』, 여천군이 1993년 발간한 『지명유래지』, 율촌면지편찬위원회가 1998년 발행한 『율촌면지』 등에 실려 있다.

[내용]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마을 위효징의 집터는 ‘봉황포란지혈(鳳凰抱卵之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의 명당)’이라는 명당에 관한 전설이 전해오는데 다음과 같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막하에서 참전하다 순절한 위대경(魏大經)은 원래 전라남도 장흥 사람이었다. 그의 부인 전주최씨(全州崔氏)는 아들 위효징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마침 봉황새 모양을 하고 있는 앵무산 봉우리 밑을 지나고 있었다.

그 때 오동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던 봉황이 놀라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최씨는 길조라 여기고 그 자리에 집을 지어 살기로 결심한다. 어린 위효징은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그 터에다 자기가 살 집을 짓고 그 마을의 광산김씨(光山金氏) 입향조 김명운(金命韻)의 여식과 혼인을 해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모티프 분석]

「봉황새가 알을 품은 집터」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에 양택(陽宅: 사람이 사는 집터 혹은 마을의 터)의 의미를 더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을 해석하려는 풍수 설화의 유형이다. 이와 같은 양택 설화에는 대체로 명당에 집을 짓고 살게 되면 먼 후손까지도 발복(發福)할 수 있다는 전통 사회의 기원이 담겨있다. 「봉황새가 알을 품은 집터」에도 아버지를 잃은 위효징의 행복 추구와 가문의 혈통을 잇고자 하는 심리가 깃들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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