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5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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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松崖崔虎文遺墟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Songae Choe Homun |
이칭/별칭 | 쌍림 하거리 최호문 유허비,송애 최호문 유허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39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김용만 |
성격 | 비석|유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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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857년 |
관련인물 | 최호문 |
재질 | 화강암 |
높이 | 200㎝[비신] |
너비 | 65㎝[비신]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395-1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호문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시대 비석.
[개설]
송애(松崖) 최호문(崔虎文)은 조선 헌종 때 문과 을방에 제2인자로 급제하여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봉화현감을 지냈다. 천성이 순박하여 가난하고 천한 것을 구별하지 않고 너그러웠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잘 도와주어서 인심이 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문적으로는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와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에게 배워 학덕을 쌓았다.
[건립경위]
후손들이 최호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857년(철종 5) 송애 최호문 유허비를 세우고, 1920년 송애 최호문 유허비가 있는 하거리 아랫마을에 증손들이 송애재(松崖齋)[하거리 507번지[학동길 72-4]]를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최근에 신축하였다. 입구에는 삼문을 두고 둘레에는 담장을 둘렀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가운데 6칸은 대청마루를 내었다.
[위치]
쌍림면 소재지에서 거창 방면으로 국도 26호선을 따라 가다가 하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학골마을 뒤쪽 좌측 논에 위치하고 있다. 논 가운데에 사각형 모양의 단을 쌓고 그 주변에 폭 3m 정도의 연못과 나무들로 조경한 후 단의 중앙에 비석을 세웠다. 해자(垓字)와 같은 연못에 긴 통나무를 하나 걸쳐 놓기는 하였으나 송애 최호문 유허비가 있는 곳까지 건너가기는 매우 어렵다.
주변 사적으로는 왼쪽 마을길 산자락에 고령박씨 열녀문(高霊朴氏烈女門)과 그 오른쪽으로 양천최씨 오현세적비(陽川崔氏五賢世蹟碑)가 세워져 있으며, 오른쪽 산등성에는 학양 박경가 유허비(鶴陽朴慶家遺墟碑)가 있는 학음서당(鶴陰書堂)이 위치하고 있다.
[형태]
최호문 유허비는 방형의 단을 쌓고 주변에 폭 3m 정도의 연못과 나무들로 조경한 후 단의 가운데에 세워진 비석이다. 정교하게 새긴 귀부[비석 받침]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신[비석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비석 머릿돌]를 얹은 형태이다. 비신은 높이 200㎝, 너비 65㎝, 두께 30㎝, 이수는 높이 70㎝, 너비 90㎝, 두께 45㎝, 귀부는 높이 50㎝, 너비 100㎝, 앞뒤 길이 200㎝ 정도이며, 이수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금석문]
비신의 정면 가운데에는 ‘조선 고 통훈대부 행사헌부지평 송애최공 유허비명 병서(朝鮮故通訓大夫行司憲府持平松崖崔公遺墟碑銘并序)’라 음각되어 있고, 정면과 뒷면 및 좌우 측면에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