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586 |
---|---|
한자 | 鶴陽朴慶家遺墟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 of Hakyang Park Gyeongga |
이칭/별칭 | 학양 박경가 강도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성격 | 비석|유허비 |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관련인물 | 박문국|정종로 |
재질 | 화강암 |
높이 | 157㎝[비신] |
너비 | 62㎝[비신]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박경가의 업적을 기록한 조선 후기 비석.
[개설]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는 조선시대 순조 때 사람으로 고령인 박문국(朴文国)의 아들이다. 7세 때 모친상을 당하였으나 장례를 잘 치렀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고기를 잡아 반찬을 장만하였고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께 피를 먹이는 등 병환을 잘 간호하여 관찰사와 고을 원님으로부터 포상을 받았다.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 문하에서 학문을 닦아 시문에 뛰어났고, 『동언고(東言考)』, 『동성고(東姓考)』, 『사칠(四七)』, 『정음운(正音韻)』 등을 편찬하였으며, 그의 문집을 남겼다.
[건립경위]
조선 순조 때 박경가의 후손과 문인들이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자를 건립하고 1810년에 학음서당(鶴陰書堂)을 열었으며 서당 경내에 학양 박경가 유허비를 세웠다.
[위치]
쌍림면 소재지에서 거창 방면으로 국도 26호선을 따라 가다가 하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하거리 좌덕골 뒤쪽으로 학골마을 오른쪽 산속에 학음서당(鶴陰書堂)이 있고 그 경내에 학양 박경가 유허비가 있다. 학음서당 앞뜰 왼쪽으로 숲이 우거져 있어 학골마을 쪽에서는 학음서당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학양 박경가 유허비가 있는 학골에는 많은 사적이 분포되어 있는데, 건너편 마을 산등성이 끝자락 길옆에 소나무 숲을 등지고 고령박씨 열녀각(高霊朴氏烈女閣)이 있고, 열녀각 바로 우측에는 양천최씨 오현세적비(陽川崔氏五賢世蹟碑)가 있으며, 앞쪽 논 가운데 조그만 연못 안에는 송계 최선생 유허비(松溪崔先生遺虚碑)가 있다.
[형태]
학양 박경가 유허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신[비석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비석 머릿돌을 얹은 형태인데 가첨석으로 팔작지붕 모양이다. 비신은 높이 157㎝, 너비 62㎝, 두께 28㎝, 머릿돌은 높이 50㎝, 너비 116㎝, 두께 83㎝, 받침돌은 높이 30㎝, 너비 100㎝, 앞뒤 길이 70㎝ 정도이다.
[현황]
학양 박경가 유허비가 있는 학음서당의 입구에는 3칸짜리 맞배지붕의 삼문이 있고 삼문을 이어서 담장이 둘러져 있다. 삼문을 들어서면 기단 위에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건물인 학음서당이 있다. 가운데 2칸짜리 대청을 두고 양쪽에 각각 1칸짜리 방을 만든 전형적인 구조이다.
관리가 허술해서 인지 건물이 많이 훼손되기는 하였으나 정원에는 좌·우에 향나무와 소나무 고목이 있어 건물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학음서당 건물 왼쪽 앞에 박경가를 추모하는 학양 박경가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학양박선생강도지소(鶴陽朴先生講道之所)’라 큰 글씨로 적어 놓고 그 아래 학음서당 비명을 적고 있다.
따라서 이 비석을 학양 박경가 강도비(鶴陽朴慶家講道碑)라 하기도 한다. 이 비문은 하산(夏山) 조긍섭(曺兢燮)이 짓고, 치성(治城) 송홍래(宋鴻来)가 새기고, 현손(玄孫) 박재룡(朴在竜)이 썼다. 비를 건립한 시기가 ‘중원갑병자삼월(中元甲丙子三月)’이라고 했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