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592 |
---|---|
한자 | 陽川崔氏 五賢世蹟碑 |
영어의미역 | Monumental Stone for Yangcheon Choe Clan's Five Sages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병선 |
성격 | 비석 |
---|---|
건립시기/일시 | 1940년 |
관련인물 | 박윤|박택|윤규|박정번|최여설 |
재질 | 화강암 |
높이 | 72㎝[이수]|170㎝[비신]|50㎝[귀부] |
너비 | 98㎝[이수]|62㎝[비신]|112㎝[귀부]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하거리에 있는 5현의 사적을 기록한 비석.
[개설]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는 박택(朴澤), 박정번(朴廷璠), 윤규(尹奎), 박윤(朴潤), 최여설(崔汝楔) 등 5현의 사적(事蹟)을 기록한 비석이다. 낙락당(樂樂堂) 박택은 고령인 박계조(朴継祖)[양산군수]의 아들로 남명(南冥) 조식(曺植), 배신(裴紳)과 교우하여 도의가 높고 효성과 덕행이 뛰어나며 학문이 넓었다.
학암(鶴巌) 박정번은 박계조의 손자이며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문인으로 대암(大庵) 박성(朴惺), 존재(存齋) 곽준(郭䞭), 여헌(旅軒) 장현광(張顕光) 등과 교우하여 도덕과 학문을 연마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곽재우, 김면 등과 창의하여 큰 공을 세웠으나 벼슬은 사양하였다.
월오(月塢) 윤규는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와 문장에 뛰어났으며, 박택·박윤 형제와는 사우(師友) 관계에 있었다.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시서(詩書)에 열중하였으며 조식, 신계성(申季誠) 등과 한 자리에서 시문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죽연(竹淵) 박윤은 박계조의 아들로 부모에 대한 효행이 극진했고 조식, 배신 등과 교우하여 도의와 학문이 뛰어났다.
매헌(梅軒) 최여설은 양천인 최원(崔源)의 아들로 정구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전공을 세워 여러 차례 요직에 추천되었으나 사양하고 초야에서 지냈다. 이러한 다섯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를 세우고 문연서원에 배향하여 매년 향사하였다.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는 1940년 협천(陜川) 이상호(李相鎬)가 비문을 썼다.
[위치]
쌍림면 소재지에서 거창 방면으로 국도 26호선을 따라 가다가 하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하거리마을 중간쯤 산기슭에 큰 소나무 두 그루가 좌우에 버티고 서 있는 가운데, 콘크리트 벽돌로 담장을 쌓아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비석 정면에 철제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녹이 슬어 흉하게 보인다.
양천최씨 오현세적비 좌측에는 양천최씨 가문에 시집와 열녀문을 세운 고령박씨 열녀비각(高霊朴氏烈女碑閣)이 있고, 앞쪽 논 가운데 조그마한 연못 안에는 송애 최호문 유허비(松溪崔先生遺墟碑)가 있으며, 건너편 언덕에는 학양(鶴陽) 박경가(朴慶家)를 배향하는 학음서당(鶴陰書堂)이 있다.
[형태]
양천최씨 오현세적비는 정교하게 새긴 귀부[비석 받침] 위에 화강암으로 된 비신[비석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비석 머릿돌]를 얹은 형태이다. 비신은 높이 170㎝, 너비 62㎝, 두께 30㎝, 이수는 높이 72㎝, 너비 98㎝, 두께 45㎝, 귀부는 높이 50㎝, 너비 112㎝, 앞뒤 길이 200㎝ 정도이며, 이수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