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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운등상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498
한자 吳應雲等上書
영어의미역 Memorials to the Throne by O Eungun, etc.
이칭/별칭 진구단목리담산고택소장 효행관련문헌 및 고문서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정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문서
관련인물 하진태
제작연도/일시 1837년(헌종 3)연표보기
용도 상서문
소장처 하택선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746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문화재 지정일 2004년 7월 1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개설]

「오응운등상서」는 효자 하진태의 포증을 건의하는 경상우도 유생들의 건의서이다. 하진태의 노모를 향한 지극한 효행을 기리고 정려를 받기 위한 상서문은 하진태의 생존시부터 시작하여 사후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오응운, 최상갑, 정운현 등 진주 일원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정서를 올린 일종의 등장형식의 문서이다.

장두(狀頭) 오응운의 본관은 고창이며, 자는 하우(夏遇)로 1801년 생원이 되었다. 최상갑(崔祥甲)의 본관은 전주, 자는 낙견(洛見)으로, 1825년 진사가 되었다. 정운현(鄭雲賢)의 본관은 해주, 농포 정문부의 7세손이다. 이들은 모두 창주가와 세연이 깊은 노론가의 자제들이다.

[제작발급경위]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해 거창과 산청 등 진주 일원을 중심으로 한 경상우도 유생들이 작성하였다.

[구성과 형태]

종이에 먹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50.5㎝×42㎝이다.

[내용]

하진태의 효행은 중소공지(衆所共知)의 사실이며, 송환기(宋煥箕)가 찬한 묘갈명과 『진양지』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 신속히 조정에 보고하여 포증의 은전을 입게 해 달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감사는 신중론에 입각하여 미온적인 답변을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서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거창 생원 오응운, 진주 진사 최상갑, 산청 진사 정운현 등이 삼가 재배하며 순상국합하께 상서합니다.

삼가 생각건대, 진주 고 효자 하진태의 효행에 관한 전말은 성담 송선생이 지은 묘갈문에 자세히 실려 있고, 또 본주의 주지(州誌)에 기록되어 있으니, 저희들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합하의 처분에, ‘하효자의 효행은 연명하여 올린 글뿐만 아니라 이미 익숙히 들었던 사실이니, 어찌 흠탄을 하지 않으리오. 응당 읍보를 기다려 더욱 사실을 모아 헤아려 처리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은 지극한 효행이 끝내 민멸되지 않고 오늘날을 기다려 천양(闡揚)되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읍보가 정중할 뿐만 아니라 여론이 흠송을 마지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또 우러러 하소연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공론을 널리 모아 계문하여 주소서. 천만 간절히 바랍니다. 삼가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순상국께서는 처분해 주소서.

정유년(1837, 헌종 3) 2월 일

겸사(兼使)[手決]’

[의의와 평가]

「오응운등상서」는 효를 백행의 근본으로 여긴 선조들의 효행사상을 엿볼 수 있고, 당시 조선왕조의 정려제도에 관한 행정계통을 잘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8.09 2011년 한자 재검토 작업 거창생원 오응운, 진주진사 최상갑, 산청진사 정운현 등이 ->거창 생원 오응운, 진주 진사 최상갑, 산청 진사 정운현 등이 〇 띄어 쓰고 지명 태깅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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